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생의 절반 읻다 시인선 15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의 절반』을 처음 펼쳤을 때 장엄하고 크고 넓은 느낌에 붙들렸기 때문에 이 책은, 적어도 나에게는 간단한 마음으로 펼쳐서는 안 되는 책으로 남아 있다. 자연과 신들에 대한 언급이 굽이치듯 흐르고 있었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으며 대지에 홀로 선 남자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특히 1장은 신화적인 느낌이 강하고, 시 곳곳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시를 읊는 사람을 상상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왜인지 뮤지컬의 대본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신화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그저 만화 그로신 키드였던 나에게는 조금 어질어질했던 시선집이었고, 어떤 꼭지는 10페이지를 훌쩍 넘겨버려 장벽이 높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주석과 해제가 없었다면 어떻게 읽었을지… 읽는 중간중간 다른 독자는 『생의 절반』을 어떻게 읽었고 소화하고 있는지 너무너무너무 궁금해졌다. 눈으로 읽다 조금 버거워서 낭독해 봤는데 좀 더 집중되는 기분이었다. 


+박술 번역가님의 해제는 초급자도 감을 잡게끔 쓰여 있어서 휠덜린에게 다가가는 것이 조금 덜 난감했다. 해제 읽고 다시 통독하니 좀 더 새롭게 다가왔다.

+십여 년만의 낭독, 뜻밖에도 꽤 좋았다. 힘에 부칠 때는 묵독 대신 낭독을(?)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라이프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내 만들어진 영혼은 이미 잡아먹혀 사라졌고, 나는 가상에서만 존재하는 이미지 혹은 환영 어쩌면 귀신 혹은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

 

작년인가 김사과의 0 Zero 을 읽고서 거침없이 내달리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미쳤다라는 말을 육성으로 내뱉기도 했었고. 말도 안 되는, 고자극적 소설이 주는 이상한 시원함때문에 생에 진절머리가 날 때 읽으면 좋을 법한 작가구나,라고 받아들였는데 하이라이프를 읽으며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이라이프는 어그러질 대로 어그러지고 미칠 대로 미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사실주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 년 전의 나는 김사과의 소설을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효과 좋은 든든한 예방 주사로 읽었던 셈이다


하이라이프속 인물들은 전부 자신이 속한 세계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한다기보다 돌리지 않는 것에 가까운 듯했다. 그래서 세계를 파괴하거나 빠져나가지 않는 대신 점점 안으로 침몰하거나 미친 세상에 더 미친 방법으로 응수하는 듯했다. 그들은 도시를 배회하는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거나(하이라이프), 부를 향한 욕망의 열차에 올라타 좀더 복잡한 고난도의 게임”(137)을 시작하고 온갖 모순과 허영을 즐긴다(두 정원 이야기). ‘부모가 만든, 훌륭하게 가공된 껍데기에 지나지 아니한 상류층 친구의 마력에 10년간 도취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뒤 분노와 허탈감만 손에 쥔 채 그 자리에 눌어붙어 버리기도 한다(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또는 서울과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잇는다는 웜홀에 갇히거나(벌레 구멍), 이유 없는 의지”(249)로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몰보이).

 

하이라이프를 읽으면서 내 주변과 바깥을 떠올리자 다 섬뜩했고, 이런 생각도 했다. 어쩌다 투명하고 무한한 회전문의 방에 갇힌 건지, 내가 나를 가둔 건지. 어쩌다 멈춤이 없는 연극을 하는 것인지. 어쩌다 고통과 쾌락 사이에 다리를 놓고 우스워지기로 작정한 것인지. 날 때부터 죽었던 것인지. 책을 덮고 긴 긴 산책을 했다. 동네 산책은 모든 게 평소와 같아서 너무 낯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한 하늘, 물가에서 소란하게 움직이는 날벌레 떼, 이팝나무가 한 그루씩 줄지어 있는 산책로까지. 오후 6. 먹빛은 아직이었고, 평소보다 재바르게 걸어 보았다. 모든 게 무서우리만치 평화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 

어디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 데뷔 30주년 기념 초기단편집
듀나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읻다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 이산화 작가의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읽고 SF를 더 읽어 보려던 차에 이 책을 만났고 택했다. 이달 초 교보문고에서 실물을 먼저 보고 너무 예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조금 더 기운 것도 있다. 이지선 북디자이너님 표지면 끝난 거 아니냐며 내적 호들갑 떨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앞뒤 양옆 어딜 봐도, 누가 봐도 듀나 책. 책의 존재감을 일깨운 디자인이 참 멋지다. 듀나 팬이라면 소장 욕구 샘솟을 테다. 아니, 이미 샀으려나.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에는 단편 21편이 실려 있다. 무려 21편이다 보니 소재가 겹치는 작품도 꽤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 듀나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간 여행, 살인, 외계 관련 작품들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재미있었던 작품은 이러했다. 얼결에 제임스 크로버 교수의 타임머신에 붙은 나비가 과거에 고작 15분 머묾으로써 미래가 뒤바뀐 이야기(「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개척 행성 안케세나멘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 이야기(「렉스」), 지구 그리고 우주에서도 일을 벌이고 다니는 사고뭉치 삼촌 이야기(「새는 바가지」), 살인을 의심받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아세니안 로봇 이야기(「원칙주의자」),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별이 6개인 식당에 온갖 외계 생물들이 들이닥치며 벌어지는 이야기(「일곱 번째 별」), 본인이 죽인 아내를 집에서 다시 만난 전직 화학 교사의 이야기이자 소설 말미에 다다를수록 몸이 오스스해지고, 마음은 씁쓸해지는 이야기(「홍장표 씨의 경우」), 앨리스를 오마주한 듯한 이야기(「토끼굴」) 등등.


각 단편이 끝나면 현시점에서 쓴 듀나의 코멘터리(해설)가 나온다. 듀나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고, 특히 집필 30년 후 작품에 대한 생각의 변화 등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마지막에는 부록이 있는데, 이것 역시 볼만하다. 듀나가 어릴 적 읽었던 청소년 SF 소설, 가장 좋아하는 마블 영화, 듀나가 말하는 SF 계보에 대한 이야기, 듀나가 이야기꾼이 되는 데 영향을 준 책과 작가, 듀나 그리고 풋내기 SF 통신망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 『미래 세계에서 온 사나이』 이야기, 듀나가 처음 읽은 시간 여행 이야기 등. 소설뿐 아니라 소설 바깥에서 적은 작가의 말, 에세이 등도 좋아하는지라 즐거이 읽었다. 수십 편의 단편이 실리는 만큼 이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꾸려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서로 어떤 단편이 기억에 남았는지 이야기하면 책을 오래, 깊게, 다양하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추천 대상

미발표 데뷔작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까지 실린 초기 작품집을 읽고 듀나를 좀 더 알아 가고 싶은 듀나의 찐 팬


표4, 본문에 온전히 담아낸 하이텔 감성을 만끽하며 듀나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가 보려는 독자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내가 가질게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 _「밤은 내가 가질게」, 249쪽



『밤은 내가 가질게』에는 폭력을 겪은 사람들이 폭력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 준다. 그들은 폭력에 침묵으로 대응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타인에게 가해를 저지른다. 혹은 폭력에서 벗어나 타인을 구하는 데 힘을 쏟거나, 가해와 피해의 갈림길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여기, 오빠의 범죄로 신상이 노출되어 직장을 그만둔 ‘나’가 있다. 돈가스집 아르바이트생으로, 동급생에게 괴롭힘당하는 초등학생 ‘동주’의 하교 도우미로 생계를 유지하는 나는 남들처럼 오빠를 욕하지도 엄마처럼 오빠를 감싸지도 못한다. 오빠가 동생 “도윤의 갈비뼈를 부러뜨렸을 때 나는 화장실에 있었”으니까. 무서움에 압도되어 그저 “뻑뻑하고 차분한 굉음”(70쪽)이 지나가길 숨어서 기다렸으니까. 그래서일까 나의 바람은 “최선을 다해 생존하고 최선을 다해 쓸모없어지는 것”(41쪽)이 되었다. 자신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분노할 수 있는 입장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태로 살아가는 삶. 죄책감과 분노가 범벅 된 복잡한 덩어리를 가슴에 지고 사는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흐를까.


탄원서 따윈 쓰고 싶지 않다. 쓸 수 없다. 사과하러 왔다고 말해도 비명만 질러대는 여자에게 돈을 건네러 가고 싶지도 않다. 치료비, 위로금, 합의금,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건 그냥 돈이다. 그땐 그걸 몰랐다. 내가 자꾸 벨을 누르자 여자는 베란다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했다. 여자는 십일층에 살았고 내 사과가 그녀를 또 한번 죽일 뻔했다. _「완전한 사과」, 44쪽


각각의 진심은 한계에 부닥쳐 만나지 못할 수 있고, 훼손된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미도’에게서 배웠다. 그래서 아이, 반려견, 다리를 잃은 미도에게 나는 오빠를 대신해 사과할 수 없다. 진심이어서 미도에게 갈 수가 없다. 진심은 누군가를 해할 수 있고, 무섭고, 무겁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근데 이모.

 응?

 한 번은 왜 안 돼요?

 동주가 도토리 이마를 손등으로 문지른다. 땀이 흘러 간지러운 모양이다. 얼마나 힘껏 문지르는지 손등 아래로 살갗이 밀려 눈썹이 웃기는 모양으로 일렁인다.

 승규 정강이 까는 거, 그거 딱 한 번이면 되는데. 그거면 나는 더 안 괴로울 자신 있는데. 그건 왜 안 돼요?

 동주 눈썹이 점점 더 거세게 일렁인다.

 그것도 안 되면, 그럼 난 뭘 해요? _「완전한 사과」, 65-66쪽


수선한 내 앞에 나타난 동주는 순수하고 순진해서 또 무력해서 나의 마음 한구석을 자꾸만 건드린다. 나는 동주의 등에 업힌 ‘승규’의 팔을 잡아떼거나, 게임에서 이기도록 욕설이 담긴 음성 메시지를 보내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동주를 돕지만, 승규는 더 세게, 더 악랄하게 나온다. 승규의 지독함과 동주의 무구함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결국 무력으로 승규를 제압한다. “너무 작고 볼품없는”(71쪽) 어린애를 바닥으로 내던지고, 즉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그렇게 나의 진심은 슬프게도 온전히 닿지 못한다. 나는 다시 번뇌한다.


이런 인간이었구나. 나는 망설임 없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구나. 이렇게 습하고 비열한 눈으로 사실은 아무 상관 없는 어린애를 바닥으로 내던지는, 이런 짓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었구나. 그런데 그 두 가지뿐인가? 약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상대를 힘껏 내던지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나? _「완전한 사과」, 71쪽


「완전한 사과」는 폭력의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의 난처함을 함께 보여 주면서 우리가 폭력에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또한 완전한 사과는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진심이 어긋나지 않으려면 어떤 태도로 타인에게 접근해야 할까. 누군가를 돕는 것, 마음을 온전히 전하는 것은 정녕 가능할까… 안보윤은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새로운 방향을, 더 나은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학과 조교에게 스토킹을 당한 ‘하진’. 엄마도, 아빠도, 경찰도 하진을 돕지 않는다. 이번이 “딱 한 번”이었다는 스토커는 하진이 아닌 경찰과 하진 부모에게 사과를 건네고, 하진의 엄마는 이번에도 “딱 한 번”뿐이었으니 용서해 주자고 말한다. “딱 한 번” 어린 하진의 목을 조른 뒤 사랑한다며 상황을 무마했던 엄마는 하진이 느꼈을 섬뜩함을, “딱 한 번”(106쪽)뿐이라는 핑계의 잔혹함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을까.


옆집 사람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좋다는 듯 하진과의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벌려둔 상태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자기 집 현관문을 가리켰다.

 —우리집으로 올래요? _「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112쪽


기댈 곳 없는 하진에게 문을 열어 보이는 사람은 옆집 여자이자 잊고 지냈던 중학교 동창 ‘유영’이다. 그녀는 먼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답답하다 싶을 만큼 느리게 움직”(112쪽)이고, 따뜻한 맹물 한 잔과 구운 귤을 내어 주며 자신과 자신의 공간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상대의 속도에 맞추어 빗장을 하나씩 풀 줄 아는 사람이다. 유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쌓은 신뢰 속에서 하진은 차츰 마음을 열고, 회복의 단계를 밟는다.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경계심을 거두어도 된다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당신 곁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몸소 내보이는 누군가의 세심함을 하진은 기다렸을 테다.


 —나는 그때, 매일매일 기다렸어. 

 —누가 나를 도와주기를, 누가 딱 반 뼘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봐주기를. 제발 누구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나를 숨겨달라고. _「바늘 끝에서 몇 명의 천사가」, 137-138쪽


하진에게 몸에 든 멍을 보여 주고, 폭력의 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오다기리 조의 엉덩이”(123쪽)를 떠올린다던 중학생 유영은 특유의 엉뚱함을 유지한 채로 성장해 세상을 자기 방식대로 헤쳐 나가는 중이다. 어두운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면서 말이다. 문에 경보기를 설치하지 않으려는 하진에게 “왜 소용이 없어. 경보음이 울리면 내가 바로 뛰어갈 텐데”라고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위층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곧바로 달려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곁에서 “가만히 그저 잡고만 있”(129쪽)는 행동이 어떻게 위로와 위안이 되고, 상대를 안심시키는지 아는 존재로 성장했다.


상처 파먹기를 거부하고, 피해자를 도우면서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는 모습. 그토록 자신에게 찾아오길 바랐던 어른이 되어 누군가를 돕는 삶. 작은 관심이 서로를, 우리를 구할 거라는 너무나 견고한 믿음. 비난하지도 불안을 조성하지도 않으며 조심스럽고 은근하게 또 다정하고 따스하게 다가가는 자세. 나는 이 이야기가 진부할 수 있을지언정 기실, 우리가 오랫동안 상상했고, 여전히 바랄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마음과 용기가 우리를 구할 거라는 믿음에 나의 믿음을 걸어 보기로 했다. 희망은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은 용기를 줄 것이기에. 아직은, 희망을 상상하고, 돌보고 돌봄 받을 자리를 남겨 두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에 관한 연구
이소진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수 있다. 아니,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힘겹게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자유가 있다. (...) 우리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모든 건 당신의 탓이 아니다. 당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그 모든 것 중에서 아주 조금만 당신의 몫이다.” _185-186쪽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은 청년여성의 자살 생각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범주로 확대해 바라보는 책이다. 제목만 읽었을 때는 ‘자살’에 초점을 맞추었을 거로 생각했으나, 책을 읽으면서 ‘왜’ 자살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년여성들이 자살 생각을 하는 이유는 3가지로 수렴된다. 노동 문제, 돌봄 문제 그리고 가족. 세 가지 키워드를 좀 더 깊숙이 파고들었을 때 겹치는 지점에는 성차별이 있었다. 같은 전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남성만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경우, 아픈 할머니를 6개월 동안 돌보며 가사 노동까지 도맡는 손녀, “성별화된 일터”에서 다양한 괴롭힘에 시달리는 캐디, 사무직원 등등. 책에는 드라마에서 볼 법한 실례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연구 참여자들 중 성차별 문제를 겪고 있는 대부분은 고등학교 졸업자 혹은 전문대학 졸업자였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성차별이 아닌 참여자의 학력이나 능력이 문제라고 운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노력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한국의) 능력주의는 때때로 성차별을 수용하며, 능력만 고려한다고 할지언정 정말 ‘능력’만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책 속의 ‘대졸’ 여성들은 경험으로 증거한다. 면접을 잘 봤다고 생각했으나, 남성을 채용하길 바랐던 팀장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듣게 된 경우, 남성 후배와 사수인 여성 직원의 평가 등급을 임의로 교체해 여성 직원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연봉 협상 기간이 종료되었다는 이유로 “부서 사람들 연봉 1만원 2만원 씩 떼”서 몰아주는 임시 조치로 갈음하는 경우 등등. 여성들은 예의 불합리한 상황에 체념하거나 퇴사를 택하는데, 이는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현시함과 동시에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사회적 경고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는 능력주의를 말하기 전 먼저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고정된 이념을 인정하고, 이를 뒤흔들려는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더하여 저자는 노동 문제 등이 야기하는 우울, 불안의 감정을 개인 내부의 문제로 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로 바라본다.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나, 한편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스스로를 의심했(한)다. 과거에는 결승점 앞에서 넘어질 때마다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고, 지금은 나 자신이 상황을 핑계 삼고, 그 뒤에 숨어 버린 겁쟁이가 아닐까, 하는 억측과 싸우길 반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와 타인에 대한 실망이 나에 대한 미움으로도 자주 전이됐다. ‘내가 더 노력했더라면’이라는 가정(假定)에 좀 먹히는 것이다. 나를 통제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는 믿음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으나, 슬프게도 아직 불안을, 노력 부족을, 자기 비하를 완전히 멈추진 못하겠다. 언제 움틀지 모르는 작은 불안의 씨앗을 평생 품고 다녔으니까. 결과적으로 이 책은 나의 불안을 종식시켜 주지는 못했다. 다만 불안의 파고는 낮춰 주어, 책을 완독한 후에 꽤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21명의 전우가 생긴 기분이랄까. 21명의 청년 여성들이 풀어놓은 진솔한 이야기는 우리가 공감하는 ‘우리’의 것이 되었으니까. 혼자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더 큰 우리가 되는 미래를 상상해 보고 무수하고 반짝이는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