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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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전쟁의 결과 4개의 나라가 새로 생겼다.
이를 ‘십자군 국가’라고 한다.

에데사 백작령의 보두앵 백작(후에 예루살렘  
2대 왕이 된다),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공작,
트리폴리 백작령의 레몽 백작,  그리고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통치자 고드프루아 등 4개 국이다.


 


[예루살렘 초대왕 고드프루아 1세와 예루살렘 문장]

고드프루아는 오랜 타향 만리에서의 원정이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1100년 7월 18일 사망하게 된다.
그의 뒤를 노리는 자들이 많았는데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 1세가
교황의 특사 다임베르트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십자군 귀족들은 그를 예루살렘 왕국의 2대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아르메니아 인들을 접견하는 보두앵 1세]

보두앵 1세는 훗날 예루살렘 왕국의 3대 국왕이 되는 자신의 조카
보두앵 2세에게
에데사 백작의 지위를 물려주고 예루살렘을
장악함으로써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모든 세력을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보두앵 1세는 1118년 4월 2일 이집트 원정길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중혼죄를 지을만큼 여러번 결혼을 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었던 보두앵 1세를 대신하여
예루살렘 귀족들은 회의 결과 보두앵 2세를 3대왕으로 추대한다.
 



[영주를 접견하는 보두앵 2세]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은 보두앵 2세가 집권 중이었던
1126년 부터 시작된다.


2권과 3권사이의 빈 시간은 예루살렘 왕국의 생성기에 해당되므로
책의 구성에서 제외하고 있다.

보두앵 2세는 딸이 4명 있었는데 책에서는 장녀 멜리장드
(Melisende)
둘째 딸 엘리스(Alice)가 나온다.

당시 중세 유럽에서는 여왕의 존재가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두앵 2세는
후계자로써의 멜리장드 배필을 찾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유럽의 강력한 군주들 중에서 고르던 그는 프랑스의 앙주 백작인
풀크 5세(Fulk V)를 선택한다. 




[풀크 5세와 멜리장드의 결혼]

풀크 5세는 1차 십자군 전쟁에도 참여한 전력도 있고
당시
서유럽의 강력한 군주였다.
군사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큰일이 있을때마다
유럽에 손을 벌리는 처지였던 예루살렘 왕국으로서는
중요한 결혼이 아닐수 없었다.
둘째 딸은 안티오크 공국의 주인인 보에몽 1세의 아들
보에몽 2세와 맺어졌다.

책에는 안나오지만 셋째 딸은 트리폴리의 레몽백작 아들 레몽 2세와
결혼함으로 인해서 트리폴리와도 동맹을 맺게 된다.


혼인으로 인한 동맹으로 왕국의 방위를 튼튼히 하려는
보두앵 2세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보에몽 2세의 영토에 대한 야욕은 생각보다 더 컸다.

장인의 뜻대로 동맹을 맺어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의 영토를
확장하려다 끝내 전장터에서 목숨을 잃고,
그의 부인이자
보두
앵 2세의 딸 앨리스(Alice)는 남편처럼 거대한 꿈을 꾼다.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주인으로 나서려는 계획을 세운다.

편 보두앵 2세의 장녀 멜리장드의 배필인 풀크 5세도
안장에서 떨어지는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녀도 새로운 왕국을 꿈꾸게 되는 것으로 3권은 마무리 된다.

바로 제2차 십자군 원정을 앞두고 있던 예루살렘
왕국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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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서 언급하기를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추천의 글에서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로
"로마네스크 양식" 그림체를 꼽았는데,
잠시 "로
마네스크"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10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서양 각지에서 발전한 미술형태로,
19세기 초 막연히 중세미술을 뜻하려는 프랑스 고고학자가
로마에서
유래된 로망(roman)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
시초가 되었다 한다. 특히 건축에 관하여 쓰여졌으나
점차 분야가 확대되고 시대가 명확
히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건축의 특징은 아치형의 석조 천장과 이것을 받쳐주는 창문없는
두꺼운 벽,
그리고 굵은 기둥을 지닌 양식이다.

따라서 내부는 어둡지만 중후하고 신비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조각으로서는 교회 출입문 정면이나 좌우에 있는
기둥에 성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을 새긴 것이었다.
창이 작고 벽이 넓은 로마네스크 교회의 실내는 거의 모두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다.
성서, 종교서의 수사본 삽화인 미니어처가
발달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
 




[장엄의 그리스도]
로마네스크 미술(뷰리 성전 중), 12세기 중엽, 케임브리지 코퍼스 크리스티 대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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