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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개정판 ㅣ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평점 :

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보내진 최초의 십자군으로 서방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은자 피에르가 이끌던 군중 십자군이 멸망한 얼마 후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툴루즈의 백작 레몽, 바이킹의 후예 보에몽과 총사령관으로는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이끄는 본대가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였다.
이후 동로마 지원을 얻어낸 십자군은 보스포로스 해협 너머 무슬림의 땅으로 진격하여 결국 수도 ‘니케아’를 함락하였다.

[십자군 기사]
그러나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관용정책을 일관함으로써 십자군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파괴와 약탈이 적었다 한다.
이 즈음 다시 은자 피에르가 등장하는데 종종 성배와 더불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주제로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다는 병사의 창, 즉 성창이라 불리우는 ‘롱기누스의 창’을 그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은자 피에르는 군중들의 신임을 다시금 받게 되었고, 그는 ‘안티오키아’의 함락도 성창의 신통력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반대편도 많았고 이에 분노한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악명 높은 중세의 3대 재판 중 하나인 [불의 심판]을 받겠다고 자청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는 자신의 영감을 확신하고 있던 것 같았으나 불구덩이 속에서 끔찍이 데었고 12일 동안 고통 속에서 연명하다 결국 화상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두 개의 불기둥 사이를 걸어들어가는 피에르 바르톨로뮤 - Gustave Dore (1832-3)]
중세의 3대 재판은 무기를 들고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결투 재판, 혐의자를 밧줄로 묶어 물통에 넣고 가라앉는지 살펴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무죄, 가라앉지 못하면 유죄로 판명하는 물의 심판, 숯을 깔아 숯불을 만든 뒤 혐의자가 그 위로 걸어간 뒤 정해진 시간에 죽으면 유죄, 살면 무죄가 되는 불의 심판이 있다.
결투 재판에서 죽은 자는 유죄이므로 죽었어도 목에 밧줄을 걸어 교수대에 매달았다.
물의 심판에서 유죄로 판명되면 불에 달군 부지깽이로 눈알을 파버렸고, 불의 심판에서 혐의자가 불의 심판을 거부하면 확실한 유죄로 여겨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즉, 결과는 신이 정해준다는 신명 재판 (神命 裁判)인 것이었다.
은자 피에르의 죽음으로 그의 편에 있었던 레몽 백작은 타격을 입었다.
함락한 ‘안티오키아’를 약속대로 동로마에 돌려주어야 한다던 그의 의견은 무시되었고, ‘안티오키아’는 보에몽의 손에 들어갔다.

[1099, jerusalem}

[1099년 6월 15일 십자군의 예루살렘 탈환]
걷잡을 수 없는 십자군 지휘관들의 내분과 바닥난 식량으로 ‘안티오키아’ 근교에 있는 ‘마라트안누만’을 침략했다.
바닥에 떨어진 십자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라트안누만’을 철저히 파괴하고 유린하였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드디어 1099년 6월 15일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된다.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