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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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역개루 카페와 믹스커피 출판사 사이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범죄’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흔히 떠오를 것은 무엇이 있을까? 저마다의 기준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전쟁, 제노사이드, 국가폭력, 테러리즘과 같은 현대사의 굴곡을 바꾼 정치적 개념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제프리 다머, 조디악 킬러와 같은 연쇄살인마들의 자극적인 이야기다. 『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의 서평을 의뢰받았을 때 처음에는 후자에 관련된 책으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책장을 펼쳐 구성을 살펴보았을 때는 적잖게 당황했다.


이 책의 성격을 말할 때는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머리를 싸매면서 갖은 문서고의 기록과 국내외 연구들로부터 단서와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 씨름할 이유가 없이 평이하게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양서들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 특정 분야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읽기 쉬운 문체와 구성으로 조금 얕게나마 더 넓은 맥락을 파악하는데 더 수월할 수 있다. 하지만 통일성 없는 여러 사건들을 묶어 놓은 이 책은 그러한 성격보다는 ‘가십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역시 그러한 가십집 역시 의미가 없지 않다. 필자는 과거에도 『하룻밤에 읽는 숨겨진 세계사』에 대해서 호의적인 서평을 남긴 바가 있다.


본격적인 평가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분명히 밝혀둘 것이 있다. 필자는 과거 수차례 책을 집필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권의 책을 완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이해하고 있으며, 실제로 책을 써낸 작가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집필의 고통을 아는 입장이 되면서 남의 책을 비판하고 폄훼하는 것에 대해서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이 책의 책장을 넘길수록 필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우선 기본적인 사실 관계 오류가 많다. 가령, 홍콩의 염정공서 설립 계기가 된 피터 고드버 사건에선 영국령 홍콩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홍콩섬과 카오룽반도는 반환할 필요가 없었지만”(p. 24)라는 내용이 나오지만, 인터넷에 퍼진 낭설에 불과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영국에 할양하기로 한 청나라의 조약에 대해서 처음부터 그 유효성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1997년 반환’에 대해서도 중국은 큰 의미를 둔 적이 없었다.(김옥준: 2013) 99년 뒤의 일이라는 이유로 영국인들이 ‘범연히 넘겼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영국은 1920년대부터 이미 신계의 존재가 홍콩의 존망에 핵심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대응에 나섰다.(Steve Tsang: 2004, 96-106) 고드버의 범행에 대해서도 근거 없이 아마 억울했을 것이다(p. 28)라고 쓰지만 당시 홍콩 경찰에 만연한 부패 관행이 일선 조직에 국한한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며 고드버와 같은 고위 행정관조차도 부패로 얼룩져 있었다는 것은 대다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Steve Tsang: 110-111)


필자는 이 책에서 고드버의 정식 직함을 적지 않고 그저 ‘카오룽반도 지역 경찰의 NO.2’라고만 적은 것에 의문을 품고, 고드버 단락의 출처로 제시된 것에 의문을 품고 (참고로 고드버의 정식 직함은 총경(Police Chief Superintendent)이었다.) 출처로 제시된 주간조선 기사 “홍콩 염정공서와 공수처는 뿌리부터 다르다”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여기에는 고드버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 필자는 처음에 이 책의 서평을 쓸 때 참고문헌이 충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려 하지 않았다. 아예 적지 않는 소위 ‘교양서’들이 많은 현실에 비춘다면 적은 것이 어디란 말인가? 하지만 출처로 제시된 기사 어디에도 관련 내용이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부실한 출처 때문에 이 책에 제시된 상당수 내용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책의 구성 역시 매우 혼란스럽다. 사건들의 선정 기준은 정치적 사건, 잡범, 연쇄살인마, 문화재 절도, 심지어 여자 해적까지 종잡을 수 없다. 여자 해적 메리 리드와 앤 보니의 존재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이들이 ‘역사의 변곡점’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책에 적힌 내용들이 출처를 추적하기 위해서 검색하던 중에 이 책이 시사IN에 연재되었던 칼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서문과 작가 소개에도 적혀 있다. 필자의 게으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받은 충격과 의문은 대다수 해소되었다. 대개 칼럼을 쓰면서 열심히 출처를 기록하는 경우는 잘 없으며, 다시 책으로 편집하기 위해서 출처를 찾는 것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러나 책으로 내려고 결정했다면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이 책이 칼럼 모음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당혹감도 줄어들었고, 뒤로 갈수록 다소 평이하게 읽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과거에 중국 현대사에 대해서 탐독했던 필자의 지식이 다른 분야에는 깊지 않기 때문으로 생각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더 지적해야 할 것은 ‘딸에게 들려줄’ 이야기치고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물론 어린이들에게 정치 주제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일부 사건을 가지고 본서와 같이 단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건을 가져오는 것은 극도로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가령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대해서 복합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과거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대조선주의를 부르짖지 않았으니 오늘날의 친일몰이는 떨떠름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의 결론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사라예보 사건을 보면서 나올 결론인지는 의아스럽다. 조선의 독립운동과 범슬라브주의는 애초에 비교 대상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공자도 깜짝 놀라는 역사지식’이란 말은 함부로 쓰는 말이 아니다.


참고문헌

김옥준, "홍콩반환협상에서의 쟁점과 중국의 협상전략", 한국사회과학연구 32(1)

Steve Tsang, A Modern History of Hong Kong(Bloomsbury Academic, 2004)

Steve Tsang, Governing Hong Kong: Administrative Officers from the Nineteenth Century to the Handover(Bloomsbury Academi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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