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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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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pinkwassabi/223390636312







"세계서사"는 내겐 낯선 단어였다. 긴 기간을 문창과에서 지내면서, 또 시를 쓰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여성서사나 성장서사는 익히 들어봤지만 세계서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주제 "세계서사, 어떻게 쓸 것인가"를 보고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단 신청을 하고, 책이 도착할 때까지, 이번 『창작과비평』 2024년 봄호에서 보여줄 내용은 무엇인지 설레였다. 세계서사는 여기서, '시적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 혹은 말 그대로 전세계(global)의미일까? 어떤 문학작품들은 세계를 허물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도 하니까, 신 세계적인 논의가 들어있을까? 그런 기대 속에서 『창작과비평』을 읽었다.

서동진 선생님의 〈지구화 이후의 세계 그리고 서사〉는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책의 시작을 열고 있었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세계변화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기후정의운동이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를 통해 '세계'를 기후로, 기후위기는 곧 '생존과 생활'의 영역과 직관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읽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세계서사에 대해 각각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서평에서는 서동진선생님의 기후위기와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려고 한다.

현실에서 허물어지는 자연공간이나 지금도 세워지는 중인 골프장, 고층 건물 등,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한 자연 훼손과 오염은 결국 기후위기를 불러온다. 이는 미래의 우리에게 또 후손들에게 치명적이기도 하다. 글에서는 기후위기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서사화할 것인지를 말한다. 자본주의라는 곤란한 (현 생활의 경제적인 면과 연결되는) 문제를 아예 베재할 수는 없을 것이며, 기후위기가 인간 개인 혼자서 감당하고, 지각하고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문학작품은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는 단순 한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고민이다.


글에서는 도식적인 주장임을 언급하며 편의로 기후를 세가지 관점으로 다룰 수 있음을 말한다.

나는 기상, 기후, 날씨 중에서도 날씨가 가장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단순 기후위기를 자각하지 않고도 날씨는 많은 작품 속에서 장치로써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동료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어색한 사이일 때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날씨 이야기를 시작한다. 날이 너무 추워졌죠? 혹은 날이 더워서~ 로 대화의 문고를 트기도 하니까. 날씨는 그만큼 생활과 밀접하고 가깝고, 개인이 체감하기 가장 쉽고 빠른 것이기도 하다. 비가 오고 있으니 우산을 챙기라는 말도 누군가에 대한 배려이며 (내가 보고 경험한 것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체질에 따라 추위를 많이 타는 누군가에게 외투를 두텁게 입고나갈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날씨는 공약 불가능한 개인의 경험 속에 수수께끼처럼 저만치 물러나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는 공공 캠페인은 대개 이러한 날씨 감각에 호소한다. 이는 기후위기에 대한 자각을 위해 끔찍하게 요동치는 이례적인 날씨와 그를 둘러싼 우리의 충격과 불안을 끝없이 상기 시킨다. 그런 상징화가 공감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는 수사적 전략이기 때문이다.

『창작과비평』, 지구화 이후의 세계 그리고 서사, 서동진, 19페이지

그만큼 날씨는 뭔가를 드러내고, 전달하기에 좋은 수단이자 가깝고 쉽게 느껴진다.

글에서는 '개인이 겪는 날씨에 심리적으로 호소하는 접근은 기후위기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을 막아선다고 말한다. 최근 기후인문학자들이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는데,

책의 내용 중 언급 된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논의를 덧붙인다.

기후 위기란 곧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역설하며 인류세 시대의 기후위기를 재현하는데 비롯되는 곤란을 근심한다. 그가 기후 위기가 곧 문화위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의 문화(여기서 문화는 문학과 예술이다) 가 기후위기를 재현하는 데 있어, 다시 말하면 상징적으로 서사화하는 데 있어 무능력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근대의 서사시라고 할 만큼 근대문학의 형태로 자리 잡아왔던 소설이 과연 기후위기를 서사화할 수 있을까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생략) 소설에 대한 기왕의 이해를 따르자면 기후 위기는 결코 소설이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

같은 책, 19페이지

읽으면서 나 역시 시를 쓰는 과정에서 날씨 혹은 기후위기를 쉽게 활용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또 이번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시에서는

날씨 혹은 세계서사가 어떻게 등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물론 이번 특집에서 언급한 '세계서사'는 아무래도 서사 이다보니, 시와는 다소 거리가 멀 수 있다. 소설의 기능과 비교했을 때 시의 한게점이 있을 것이며, 시에서는 서사라는 면이 덜 두드러진다는 점 역시 염두해야한다. 또한 시에서는 앞선 논의와는 다르게 날씨와 기후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이야기하는 시도 있음도 고려해야한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 소개할 시는

날씨와 기후가 등장하며도

또 읽으면서 좋았던 시를 뽑았다.


부처 핸섭

고명재

크리스마스 날 뉴스에 조계사가 나왔다. 스님들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있었다. 꼭대기엔 십자가도 환하게 걸었다 눈이 왔다 연등에 불이 켜졌다 아기 예수님을 본뜬 눈사람도 있었다 머리가 없는 산타가 튀어나왔다 동자승들이 우르르 달려와 선물을 집었다 그 아이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반들반들한 머리 위에 첫 눈이 닿았다.

고명재 시인

1987년 대구 출생,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등이 있음.


블랙 아이스

김이듬

눈밭은 눈이었을 때 아름답다

쌓인 눈이 눈석임물이 되었다가 얼어붙으면 가장 위험하다

눈이 그쳤는지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본다.

설원이 녹고 있다.

도로와와 개펄이 드러난다

항구 기능을 상실한 저 월곶포구에는 아침 어시장이 열릴 것이다

아침, 눈, 엄마

제니스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도 좋아한다

엄마 빼고는 여기 다 있다

제니스는 기재개 켜다 말고 베개를 껴안으며 말한다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나랑 닮았겠지?

죽진 않았겠지?"

이 친구는 포틀랜드에서 입양 기록을 들고

엄마를 찾으러 한국에 왔다

어제는 제니스가 내민 구주소를 들고 그의 부모 집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사십여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난생처음 한국에 온 제니스는 생전 처음 시흥에 온 나는

을씨년스러운 시내를 온종일 돌아다녔다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마전저수지 사거리에서

제니스가 양팔을 벌린 채 돌다가 웃다가 넘어진 건 해가 질 무렵

"히죽거리며 말하지마, 제니스!"

"그럼 울어야 되겠어?"

뜨거운 물을 빨아 널어둔 장갑은 수축되어 작고

어제 입었던 스웨터는 여태 촉촉하다

작년에 룸메이트가 던진 말이 떠오른다

실수로 놓고 가는 줄 알고 챙겨준 물건들이었다

버리기는 그렇고…… 너 가져

갖기 싫으면 버려줘

사람 마음만큼 잘 변하는 게 있을까

희고 부드러운 눈발 같았다가 녹으면서 성질이 변한다

철이 들어 나의 엄마를 찾아갔을 때

엄마는 새엄마보다 낯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면 원래 그런사람이었을까

딸을 버리고도 그리움이나 죄책감이라곤 찾아볼 순 없는

차갑고 미끄러운 길이 펼쳐져 있다

"눈이 그쳐서 더 추울 거야

장갑도 껴

눈길보다 살얼음판이 더 위험해"

제니스가 태어난 곳을 향해 간다

생후 팔개월 동안 살았던 곳을 향해 춤을 추듯 걷는다

어딘지도 모르면서

모텔 주차장에서 나오던 검은 승용차가

반바퀴 돌며 벗어난다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

왜 그랬는지 물어봐서 뭐 할까

범인을 잡는 데 회의적인 소설 속 형사는 이해가 되지만

확신 없는 가이드이자 친구로서의 나는 우리의 행방을 모르겠다

실제로 가긴 간다 미끄럽고 거무스레한 길로

태어나려면 가져야 하는 통로 같다

만나봐야 좋을 게 없을지라도

한번 더 버려질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까마득히 모를 곳으로

김이듬 시인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량하라 팜 파탈』 …… 『투명한 것과 없는 것』 등 많은 시집이 있음.


계속해서 겨울 이야기

최지은

불을 끄고 이불을 덮는 사이

아홉번의 겨울이 지나갔다고 했다

불을 끄고

이불을 덮으면

더 또렷해지는 지난 일 때문에

자야지, 불을 꺼야지,

이불을 덮어야지,

여기까지 오는 데

아홉번의 겨울을 버내야 했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다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열린 창문으로 부드럽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깨어

여기까지 오는 데

아홉 번의 겨울이 지나갔네

여린 바람을 맞으며

혼자 말했다

꿈이 꿈으로 남을 때까지

꿈이 꿈인 줄 알 때까지

꿈을 꾸고 다시

꿈을 거기 두고

아홉번의 아흔아홉번이라 해도

겨울을 보내고 다시 보내기

문득 내가 기다리던 것이 이게 아닐까

계속해서 나는

내가 계속하기를

음악 같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겨울을 모르지만

계속해 혼자

말했다

아홉 번의 겨울을

지나왔다고

최지은 시인

1986년 서울 출생,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등이 있음.





재미있는 점은 고명재 시인의 〈부처 핸섭〉과 김이듬 시인의 〈블랙 아이스〉, 최지은 시인의 〈계속해서 겨울 이이기〉는 모두 겨울의 날씨와 온도, 그 추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자승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첫 눈과,

한 번 더 버려질 지 몰라도

태어난 고장을 다시 가봤을 때의 내리는 눈과 살얼음길,

음악같은 바람을 맞으며

아홉 번의 겨울 속에서 견뎌내고 단단해지는 나의 이야기.

어쩌면

추위와 겨울은 많은 이들에게 차가우면서도

살아있는 것을 재현하게 해주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서동진 선생님의 〈지구화 이후의 세계 그리고 서사〉에서처럼 세계서사를 통해 기후위기와 그것이 문학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야하는지, 읽히고 쓰여야하는지도 앞으로 주목하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벌써 봄이다. 3월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날이 풀리고 기온이 오르며 사람들의 여몄던 옷차림이 풀어지는 봄이다. 앞으로 나 혹은 우리는 계속해서 읽고, 쓰고 생활할 것이다. 개인이 세계를 관통하고 바꾸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번 『창작과비평』 특집에서 소개한 논의들을 자각하고 염두에 두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그랬을 때 언젠가는 또 다른 서사가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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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 1호 나란 무엇인가?
김대식 외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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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분야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
다음호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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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문학동네 시인선 69
박은정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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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과 행 사이에 비약이 있는 시집이었다. 읽는 내내 화자들의 슬픈이야기가 아름다웠다. 슬퍼서 아름다웠던 걸까. 

나는 무서워서 자꾸 사랑을 합니다라는 부제의 3부는 사랑에 대한 시편들이 실려있었다. 대부분의 시가 행복한 사랑시라기 보다는 이별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들이었다. 읽는 내내 그 깊이에 빠져드는 기분.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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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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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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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방통 독서감상문 쓰기 신통방통 국어 1
주미 그림, 유지은 글 / 좋은책어린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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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쓰기는 아이들도 엄마들도 부담스러운 숙제이다.

아이들은 쓰기 싫고 부담스러운 것을 써야 해서 부담 스럽고

엄마들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면 되는데 왜 그걸 못쓰냐고 엄마랑 아이랑 실랑이를 벌인다.

이런한 고민을 신통하게 해결 해주는 책이있다.

바로 <신통방통 독서감상문 쓰기> 이다.

줄거리 한 줄 쓰근 것도 힘든 힘찬이가 독서감상문을 쓰는 비법을 알게 도니다.

그것은 힘찬이가 악당들에게 독서감상문 3단계 기차 작전을 배우면서 숙제로 내야 하는 독서감상문 하나를 완성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독서감상문 쓸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고민을 신통하게 해결해주는 책이다.

 

 

 

 

 

위 책은 좋은책 어린이에서 무류로 증정받은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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