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낙태 반대는 ‘무고한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반면 사형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힌 중범죄자의 생명은 정당하게 박탈될 수 있다’라는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개인의 행위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달리 평가하는 관점과 연결됩니다. 태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무고한 존재이지만, 사형수는 자신의 선택과 행위로 인해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책임이 다르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낙태에 관한 의문은 언제나 이런 것입니다. 만약 태아의 삶이 산모의 삶을 희생하도록 예정되어 있다면 어느 쪽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 선택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태어나지 않은 태아보다 먼저 존재했던 자기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성의 입장은 비난받아 마땅한가? 국가나 사회가 선택을 강요해도 되는가. - P239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노력도 타고나는 거다’라는 게 아니라, 노력과 만능주의가 저성과자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할 여지를 준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 닥친 문제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오직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아무리 음치라도 노래방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이제는 그 정도쯤 해 줄 만한 충분한 능력이 됩니다. - P212
진보가, 남들 열심히 공부하는 학창시절ㅇ레 탱자탱자 놀고 사회에 나와 남들 열심히 일할 때 탱자탱자 논 나태 씨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게 아닙니다. 타고난 환경ㄹ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같은 출발선에 세워 놓았다고 다 같은 게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성실 씨가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많은 노력을 해도 현실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붙처 성실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진보는 기회의 평등 뿐 아니라, 실질적인 평등으로 가기 위한 ‘조건의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불평등이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개선하려고 합니다. 성실 씨가 저 무거운 쇳덩어리를 두어 개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 빈곤, 건강, 교육 격차 같은 요인이 출발선에서의 평등을 방해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조건을 맞춰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본적인 주거, 의료, 교육 등의 서비스를 보장해서 사람들이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게하고 성실 씨의 불평등이 대대로 세습되는 것을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P187
진보가 주목하는 ‘상대적 가난’의 문제사람은 모두 다른 배경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출신 배경이 삶의 기회를 크게 제한할 수 있습니다.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상류층이나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할 기회가 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하려면 특별한 기호나 외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성취와 실패는 그 사람이 가진 외부적인 자원과 기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난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간주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의 격차가 커지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다음 세대에게 가난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가정이 놓여있는 경제적, 문화적 환경 때문입니다.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도 가난을 만들어 내는 요인입니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