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폭력을 은폐시키는 데 능란한 환경이 자리 잡기까지 그 건물을 실제로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건물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때,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으로 어떤 종류의 일을 존재하게 만드는지를 추적한다.
우리가 짓고 있는 게 무엇인지 우리 자신이 재대로 안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으며,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 분투하는 편보다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편이 따르기 쉬운 삶의 관성에 가까울 것이다. 소설은 후자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이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조명함으로써 역으로 인간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짓는지, 무엇을 위해 짓는지를 알기 위해 노력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편에 힘을 싣는다.
구보승의 면모는 이들이 참여하는 국가 기밀사업, 즉 ‘고문실’ 설계 과정에서 오히려 "이상을 뺀 지독한 합리주의"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이는 짓는 행위의 향방을 결정하는 ‘목적’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이 없을 때,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식으로 말하자면 그에 대해 사유하기를 고의적으로 미룸으로써 자신이 택한 길을 상투적으로 걸으려 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거대한 폭력에 열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