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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ㅣ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평점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라는 시집 제목이 이상하리만치 눈에 들었다. 우선 동요 〈도깨비 나라〉가 떠올랐고, 《혹부리영감》과 같이 ‘도깨비’가 등장하는 전래동화가 떠올랐으며,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집’과 ‘도깨비’가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들고, 그래서 눈에 들었던 것이다.
시집 제목만으로 추측하건대 시어(詩語)가 풍겨낼 수 있는 은유와 활유, 의인, 대유, 중의 등을 비롯하여 시(詩)가 품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 거칠 것 없는 표현력 등이 판타지를 이루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느낌의 현대적인 ‘도깨비 나라’를 구축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책 제목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에, 톺아볼 요량으로 시집 책장을 열었다.
시집의 목차는 총 4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 제목이 가히 수상하다.
Ⅰ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Ⅱ 장미의 팔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이었다
Ⅲ 팔을 비틀어 던지고 더 먼 공중에서 솟아나기를
Ⅳ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
하~! 목차만으로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냄새가 풍겼다.
자~ 이어진 시인의 시를 보러 가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였다. Ⅰ장 표지를 넘겨 시 〈수선화〉의 첫 줄을 보자마자, 이거 Ⅰ장 제목이잖아?! 싶었다.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를 수 있게”(p13) - 〈수선화〉中에서
혹시나 하고 다른 장 제목도 시구(詩句)를 따온 것인지 찾아보았다.
Ⅱ장 : “그것은 장미들이 소풍을 와서 떠들어대던 음악 소리였는데 / 내 귀가 자꾸만 흘러내려 장미의 팔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이었다”(p50) - 〈장미 이후의 산책〉中에서
Ⅲ장 : “팔을 비틀어 던지고 더 먼 공중에서 솟아나기를, 오독은 존재하겠지요”(p92) - 〈공중의 새〉中에서
Ⅳ장 :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 돌아서면 새벽, 보다 더 선명한 동물원의 바깥이, 밀담을 나누며 저물었네”(p139) -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中에서
4개의 장 제목은 그냥 만들어서 써 붙인 게 아니었던 거다. 실제 이어진 시인의 시 속 구절을 따와서 붙인 제목이었다. 이게 이어진 시인의 뜻인지, 편집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이 시집의 분위기를 잘 연출(?)해내는 장 제목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만큼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속의 시들에 관심과 흥미가 더욱 증폭되었다.
시를 다 읽고 잠시 멍하였다. 시들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일까.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의 저자 이어진 시인의 시세계는 뭐라 표현해야 할까. 뭔가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지만, 왠지 어색하고 기괴하며 환상적이기도 하여 상식선에서 해석해 내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속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는 ‘감’은 느껴졌다!
다시금 시들을 차근차근 읽고 또 질근질근 씹으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시의 이미지들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나만의 자의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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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 눈꽃 나라의 부츠를 신겨 줘 / 성냥의 입술이 필요해 / 내 뿌리의 근원을 깨물어 줘 / 생애 첫 꽃봉오리를 내밀 수 있게 내게 구두를 신겨 줘 / 하얗고 순한 발톱이 필요해 / 붉은 바지가 필요해 / 붉은 모자가 필요해 / 냉정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화창한 얼굴의 파리한 감각이 필요해”(p13-14) - 〈수선화〉中에서 발췌
〈수선화〉는 알뿌리식물인 수선화가 봄을 향해 움트고 꽃피우려는 소망을 노래한 시이다. 첫 시부터 당혹스러웠던 것은 마침표 하나 없이 한 행으로 엮인 형식 때문이었다.
〈창문의 각도〉는 시인의 무의식을 자동기술한 듯한 창작기법으로 인해 언뜻 이해가 안 되었다. 어스름했던 밤이 새벽을 거쳐 아침이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과 바깥 풍경, 동튼 해의 움직임에 따라 창문에 스미는 빛의 각도에 맞춰 생활하는 현실 사람. 그 사이의 간극을 자연스레 이분화(二分化)해서 묘사한 것 같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인간의 조건이 연상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계단의 깊이〉는 100층 계단이 있는 산길을 오르는 고된 여정과 흰구름 어린 정상에서 느끼는 환희, 시인이 시를 쓰는 고충과 그 과정의 서사... 이중 묘사가 어우러진 시 같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심금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물속에서〉는 추억인지 아픈 기억인지 모를 회상 신(scene)을, 내가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물속에서’ 일렁이는 여러 가지 모습과 현상들에 비추어 묘사하는 듯하였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도깨비 나라에 빗대어 쓴 현실 이야기일까. 그저 책을 읽다가 도깨비 나라에 들어선 상상 혹은 꿈 이야기일까.
〈나를 수집하는 방식〉은 나의 일상과 글쓰기를 소재로 쓴 시로 무심결에 읽으면 그림 같고 시어와 시구를 음미하며 읽으면 에세이 같은 정녕 ‘시인을 수집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서 보내 온 황매화〉는 식탁에서 빵을 먹다가 지난밤 꿈속에 나타난 동생을 떠올리는 상황 묘사인 듯하다.
〈구름의 시〉는 ‘구름’과 ‘액체’를 가지고 ‘연애 중’과 ‘결혼 후’를 비유하여 대비시킨다. 기체와도 같은 창공의 무한히 자유로운 질감의 ‘구름’과도 같은 ‘연애의 시기(혹은 열정)’와 대비되는 잔이나 병에 담겨 있어야만 하는 ‘액체’와도 같은 ‘결혼 이후(혹은 이별)’의 그와 나의 상반된 모습. 그 두 시기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흐른다.
〈장미 이후의 산책〉은 장미를 참 좋아하던 화자가 말하는, 소풍과도 같았던 ‘장미 이전의 삶’과 낯설고 익숙지 않은 ‘장미 이후의 삶’을 당신, 나, 눈사람, 빙수, 바닷속, 장미 등의 소재를 가져다가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장미의 전설〉은 아이의 잉태와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장미’에 비유한 듯하다.
〈어떤 사과의 여행〉을 읽으니, 어쩌면 동요 사과 같은 내 얼굴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는 ‘아이’와,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교감하는 ‘엄마’가 느껴졌다.
〈강은 슬픔이 창백한 악기〉에는 감염, 병, 파리한 입술, 창백한 악기 등의 소재가 ‘어떤 슬픔’을 드러내는 것 같다. 화자는 봄 어느날 밤 음악을 들으며 강물과도 같은 ‘어떤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 같다.
〈피아니스트〉는 상당히 몽환적이다. 여름날 그를 생각하며 피아노를 친다. 쇼팽의 이별 노래.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얼음 같은 눈물. 그 눈물이 살살 녹아 집이 젖고 물에 잠길 정도라고 그득한 슬픔을 표현한 듯하다.
〈우리라는 이름의 거울〉 또한 거울 속에 거울이 있고 내 모습이 그 속에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의미 해석을 하기엔 담긴 의미가 너무 다중적이다. 거울 속 인물이 나를 비추는 나이며, 현실의 나와 거울 속 나가 ‘우리’인 것인지. 거울을 통해 비추고 싶은 내 마음속의 당신이며, 나와 당신이 ‘우리’인 것인지. 거울 그 자체가 당신이며, 나와 거울이 ‘우리’인 것인지. 거울에 투영된 현실의 당신이며, 깨지기 쉬운 거울의 속성을 매개로 한 현실의 ‘우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지…. 왠지 이상(李箱) 시인의 시 거울이 떠올랐다.
〈의자와 복숭아〉를 읽다보니,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중략)”으로 이어지는 이상 시인의 오감도 烏瞰圖가 떠올랐다.
“오래 앉아 있어서 의자에 복숭아가 생겼습니다/복숭아는 붉습니다 복숭아는 부드럽습니다/복숭아는 아름답습니다(중략)”(p106)
의자 위 엉덩이 자국에서 복숭아를 연상하고, 과수원, 복숭아꽃, 복숭아밭 등 그 의자에 앉아 뭉게뭉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유목의 습관〉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시 소재는 사뭇 기묘하다. ‘입술 이지러진 곳에 해당화’,‘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건 염소들의 짧은 다리’,‘양의 피’,‘어린 정령들’,‘빛의 처녀들’,‘핏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풀의 잘린 손’,‘유령의 발소리’,‘비릿한 체취’ 등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속엣말을 도무지 모르겠더라. 자의적 의미 해석 또한 어려워 다시금 곱씹어 읽으며 시구들을 이미지화하다보니, 이건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 같았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 기억의 지속 같달까?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에서 마치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아기 코끼리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이를 흐뭇하게 보고 아이의 코를 어루만지며 교감하는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특히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p139)라는 시구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이라는 작품 이미지가 느껴졌다.
〈달의 수화〉에 등장하는 ‘숲’은 그냥 숲일까? 아니면 닳고 닳을 정도로 오랜 연인일까? ‘숲의 신호음’이란 것은 ‘달이 뜬 밤’을 뜻하는 시간을 뜻하는 단순한 알람이어서, 숲으로 산책 나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달의 수화’라 이름 붙여준 연인이 보고 싶다는 무언의 자각일까? ‘달의 수화’란 것은 어쩌면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가 아닐까?
〈동백을 사랑하는 손〉은 도화지에 연필로, 물감으로 ‘동백’을 그려내는 과정이 청각적, 시각적으로 표현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동백’은 그냥 꽃일까? 아니면 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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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서 보이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간추려본다.
첫째,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시
이어진 시인의 시는, 마침표 하나 없이 죽 이어진 한 행(行)으로 표현되었거나 연(聯) 나눔 없이 몇 개의 행을 열로 이어낸 자유산문시가 대부분이다.
물론 개중에는 연을 나눈 시도 있다. 〈웃지 않는 나무들〉, 〈장미의 전설〉, 〈목련의 詩〉, 〈달을 위한 소나타〉, 〈웃지 않는 나무들〉, 〈첫눈 오는 날의 몽상〉, 〈검은 피아노의 흰 파도〉, 〈기린이 자라는 꿈〉, 〈눈사람〉, 〈봄의 왈츠〉, 〈가로수〉, 〈열애 중〉,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동백을 사랑하는 손〉 등이 그러한데, 14편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의 형식과 함께, 시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다소 어렵다. 한 번 두 번 읽어서는 언뜻 의미 해석이 안 된다. 이유가 있다.
시 형식의 파괴와, 꿈인 듯 몽상인 듯한 기묘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시 내용의 표현... 이어진 시인의 시들이 바로 ‘초현실주의적인 시’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surrealism 超現實主義)’는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이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ealisme)》을 발표한 1924년부터 그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브르통은 ‘무의식과 꿈이 인간정신의 자유로운 발로이며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 규정하였다.
우리나라에도 1920~1930년대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오감도 烏瞰圖,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거울 등의 시와 소설 날개 등으로 유명한 이상(李箱) 시인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어진 시인도 이상 시인에 버금갈 정도 되지 않을까?
둘째, ‘자동기술 기법’이 적용된 시
초현실주의 작품에 주로 쓰이는 기법인데, ‘의식의 흐름 기법’과 비슷하다보니 혼용하는 우(愚)를 범하기도 한다.
‘자동기술 기법’은 작가가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직접 작가의 내면을 그려 보이며, 주로 ‘시’에서 많이 쓰인다. 이 기법이 적용된 이상의 시를 예로 들어 본다.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 이상 詩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Ⅻ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중략)
‘의식의 흐름 기법’은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자유 연상,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기법으로, 주로 ‘소설’에서 내적 독백, 무의식적 기억 등에 쓰이곤 한다. 이 기법이 적용된 이상의 소설을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날개 - 이상 作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半)—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領受)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쯤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중략)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는 〈잠의 나뭇가지〉, 〈벚꽃 크로키〉, 〈내 귓속을 한동안 응시〉, 〈심장의 여행〉, 〈독감〉, 〈남애리 바닷가〉, 〈날마다, 장미〉, 〈질주하는 계절〉, 〈내 안의 물소리〉, 〈달의 수화〉 등등 ‘자동기술 기법’이 적용된 초현실적인 시들이 죽 들어차 있다. 이어진 시인의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그대로가 표현되어 있어서 꿈인 듯 몽환적인, 시인의 내면이 시어로 얽혀 있어서 너무도 주관적인 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시를 읽어내고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진 않다.
셋째, ‘판타지’가 펼쳐지는 시
이어진 시인의 시를 읽어내고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진 않더라도, 여러 번 곱씹어 시어와 시구, 행과 행을 음미하며 머릿속 도화지에 하나하나 갖다 붙이고 이미지화하면 뜻하지 않게 한 편의 그림 작품과도 같은 화면이 현상되곤 한다.
이미 내 경우 그런 현상을 경험하였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창문의 각도〉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이, 〈계단의 깊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심금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유목의 습관〉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이,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시들 속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호안 미로(Joan Miro) 등이 연상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시(詩)가 그림(畵)으로 보이는 경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 판타지 세계를 묘사한 듯한데, 이어진 시인의 시들을 통해 연상되는 그림 또한 판타지 그 자체였다.
이 외에도 〈질주하는 계절〉에서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이상한 기분〉을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영화 록키 Rocky (1977)에서 주인공 ‘록키 발보아’와 친구의 여동생인 ‘에이드리언 페니노’와의 첫 데이트 때 첫 키스 장면을 에이드리언의 시선에서 묘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검은 피아노의 흰 파도〉는 영화 피아노 The Piano (1993)의 한 장면 느낌이, 〈비를 추모하는 방식〉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떠올리게 하였다.
넷째, ‘매력적인 표현’이 인상 깊은 시구
이어진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시구 표현들이 눈에 띈다.
“내게 나뭇잎을 떨구어 주는 나무들, 네가 건넨 백지 수표에는 거리의 음악들이 쏟아졌다”(p16) - <창문의 각도>中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계절엔 나뭇잎이 무심결에 허공을 응시한다”(p52) - 〈심장의 여행〉中에서
“내 몸에 살고 있는 책의 갈피를 넘겨 보았다 갈피마다 묻어 있는 빨간 단풍잎, 가을의 손가락을 닮아서 들여다 보았다 파란 잎을 보냈는데 붉은 태양의 손가락을 닮은 뒷면을 보내왔다”(p76) - 〈첫눈 오는 날의 몽상〉中에서
“가슴께에서 단풍잎이 바스락거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줍고 있는 손, 몇 해 전에 떨어뜨리고 간 파란 꿈들이 붉게 물든 문장이겠지”(p76) - 〈첫눈 오는 날의 몽상〉中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입안에 넣고 지구를 굴리고 있다 지구는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아이들을 살살 녹여 먹고 있다”(p131) - 〈사탕〉中에서
“빗줄기가 여름 내내 쏟아졌다 천둥 번개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안녕? 하는 날씨로, 내 웃음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죽죽 금을 그었다”(p137) - 〈전주곡〉中에서
우리나라에 ‘첫 문장’으로 유명한 시들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노천명 사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서시 序詩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원태연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이어진 시인의 시 중에서도 첫 문장이 인상 깊은 시구가 눈에 띈다.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를 수 있게”(p13) - 〈수선화〉中에서
“나는 실어증에 걸린 커피를 즐겨 마시는 습관이 있다”(p24) - 〈나를 수집하는 방식〉中에서
“폭설 안에 감기 기운이 앉아 있다”(p60) - 〈독감〉中에서
“내가 너의 악보를 건드리자 너는 화들짝 꽃을 피운다”(p62) - 〈어떤 사과의 여행〉中에서
“음악에 감염된 오후다”(p85) - 〈강은 슬픔이 창백한 악기〉中에서
“온몸에 바람을 팽팽하게 채워 넣고 네 궤도를 공전한다”(p103) - 〈별의 눈물〉中에서
“당신은 나의 어항 속에서 지느러미를 흔들며 건너편 숲을 향해 헤엄쳐 갑니다”(p108) - 〈어항 속 당신〉中에서
다섯째, 친근하게 다가오는 ‘의외의 시’도 존재
이어진 시인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초현실적인 시만 쓴 건 아니다. 예상 밖에 다소 쉽게(?) 읽히거나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오는 시도 있다.
〈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 같은 경우, 사과와 토마토를 즐겨 먹다보니 ‘점점 젊어진다’면서 이들의 유익성을 유머스럽게 표현하여 재미졌다.
“나의 얼굴이 없어진다고 한다/내가 사라진 자리에/한 알의 사과가/한 알의 토마토가/생겨난다고 한다 … 누구세요 당신/점점 젊어져서 죄송합니다/사과와 토마토의 탓이라고”(p34)
〈가로수〉라는 시는 장욱진 화백의 작품 가로수를 모티브로 쓴 것이다. 이 시는 여러 다른 초현실적인 시들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한 편의 ‘동시’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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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읽고 또 읽고 다시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내 뇌리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우선,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내 심상에 ‘시어’와 ‘시 표현’ 등이 알알이 맺히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아무래도 이어진 시인의 시들이 초현실적이다 보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이 시집은 한 두 가지 정도로 의미 해석이 되는 게 아니라 다의적 다중적 해석이 가능한 시들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보니 이성적 머리로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시를 읽을 때마다 그때 그때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느껴지는 감성으로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다행히(?) 책 말미에 이성혁 문학평론가의 사랑의 씨앗을 대지에 심기 위한 여정이라는 ‘해설’ 꼭지(p151-175)가 있으니, 이어진 시인의 시 세계를 좀 더 심도있게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상당히 압축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서사인 것 같으면서도 서정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자동기술이고, 그에 따른 탁월한 입체적 묘사력과 심리의 회화적 형상화가 돋보인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 시를 쓰고자 하는 지망생이나 시인을 꿈꾸는 시 입문자분들이 읽으면 좋은 시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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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어진 시인께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마치 “글(시어)로 그린 초현실주의 그림 작품”과도 같은 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추후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작품과 콜라보로 시화집을 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한 예로 《시가 지나간 자리에 명화가 남아-윤동주×김소월이 노래하고, 반고흐×모네가 그리다》(2020, 뮤즈MUSE), 김소월×천경자 콜라보 《진달래꽃》(2023, 문예출판사) 등의 시화집이 선보인 적이 있다. 꽤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된다.
저작권 조약인 「베른 조약」에 따르면 작가 사후 50년까지, 미국 「저작권기한연장법」에 따르면 작가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이 보장된다. 예를 들어 르네 마그리트(1898.11.21.~1976.8.15.)의 경우 최장 사후 70년(~2046.8.15.) 이후에 저작권이 풀릴 것이니, 이때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재출간하려 한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매칭하여 시화집 출간을 기획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참고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의 시 중에서 〈수선화〉와 〈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 같은 시는 왠지 유명해질 거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