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읽을 때마다 내 뇌리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내 심상에 ‘시어’와 ‘시 표현’ 등이 알알이 맺히는 특이한 경험!
이어진 시인의 내면이 자유로이 펼쳐져 있는 초현실적 시 세계!
시를 곱씹어 읽으면, 마음의 도화지에 판타지가 펼쳐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청색지시선 7
이어진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라는 시집 제목이 이상하리만치 눈에 들었다. 우선 동요 도깨비 나라가 떠올랐고, 혹부리영감과 같이 도깨비가 등장하는 전래동화가 떠올랐으며,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 도깨비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집도깨비가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그래서 호기심이 들고, 그래서 눈에 들었던 것이다.

 

시집 제목만으로 추측하건대 시어(詩語)가 풍겨낼 수 있는 은유와 활유, 의인, 대유, 중의 등을 비롯하여 시()가 품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상상력, 거칠 것 없는 표현력 등이 판타지를 이루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느낌의 현대적인 도깨비 나라를 구축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책 제목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기에, 톺아볼 요량으로 시집 책장을 열었다.


 

시집의 목차는 총 4()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 제목이 가히 수상하다.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장미의 팔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이었다

팔을 비틀어 던지고 더 먼 공중에서 솟아나기를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

 

~! 목차만으로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냄새가 풍겼다.

 

~ 이어진 시인의 시를 보러 가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였다. 장 표지를 넘겨 시 수선화의 첫 줄을 보자마자, 이거 장 제목이잖아?! 싶었다.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를 수 있게(p13) - 수선화에서


혹시나 하고 다른 장 제목도 시구(詩句)를 따온 것인지 찾아보았다.

: 그것은 장미들이 소풍을 와서 떠들어대던 음악 소리였는데 / 내 귀가 자꾸만 흘러내려 장미의 팔을 잘라먹는다는 소문이었다(p50) - 장미 이후의 산책에서

: 팔을 비틀어 던지고 더 먼 공중에서 솟아나기를, 오독은 존재하겠지요(p92) - 공중의 새에서

: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 돌아서면 새벽, 보다 더 선명한 동물원의 바깥이, 밀담을 나누며 저물었네(p139) -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에서

 

4개의 장 제목은 그냥 만들어서 써 붙인 게 아니었던 거다. 실제 이어진 시인의 시 속 구절을 따와서 붙인 제목이었다. 이게 이어진 시인의 뜻인지, 편집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이 시집의 분위기를 잘 연출(?)해내는 장 제목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만큼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속의 시들에 관심과 흥미가 더욱 증폭되었다.

 

시를 다 읽고 잠시 멍하였다. 시들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일까.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의 저자 이어진 시인의 시세계는 뭐라 표현해야 할까. 뭔가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지만, 왠지 어색하고 기괴하며 환상적이기도 하여 상식선에서 해석해 내는 게 어려웠다. 그래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속에는 분명 뭔가가 있다는 은 느껴졌다!

 

다시금 시들을 차근차근 읽고 또 질근질근 씹으면서, 내 머리에 떠오른 시의 이미지들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를 나만의 자의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 눈꽃 나라의 부츠를 신겨 줘 / 성냥의 입술이 필요해 / 내 뿌리의 근원을 깨물어 줘 / 생애 첫 꽃봉오리를 내밀 수 있게 내게 구두를 신겨 줘 / 하얗고 순한 발톱이 필요해 / 붉은 바지가 필요해 / 붉은 모자가 필요해 / 냉정한 마음을 감출 수 있는 화창한 얼굴의 파리한 감각이 필요해(p13-14) - 수선화에서 발췌


수선화는 알뿌리식물인 수선화가 봄을 향해 움트고 꽃피우려는 소망을 노래한 시이다. 첫 시부터 당혹스러웠던 것은 마침표 하나 없이 한 행으로 엮인 형식 때문이었다.

 


창문의 각도는 시인의 무의식을 자동기술한 듯한 창작기법으로 인해 언뜻 이해가 안 되었다. 어스름했던 밤이 새벽을 거쳐 아침이 되어가는 시간의 흐름과 바깥 풍경, 동튼 해의 움직임에 따라 창문에 스미는 빛의 각도에 맞춰 생활하는 현실 사람. 그 사이의 간극을 자연스레 이분화(二分化)해서 묘사한 것 같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작품 󰡔인간의 조건󰡕이 연상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계단의 깊이100층 계단이 있는 산길을 오르는 고된 여정과 흰구름 어린 정상에서 느끼는 환희, 시인이 시를 쓰는 고충과 그 과정의 서사... 이중 묘사가 어우러진 시 같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심금󰡕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물속에서는 추억인지 아픈 기억인지 모를 회상 신(scene), 내가 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 물속에서일렁이는 여러 가지 모습과 현상들에 비추어 묘사하는 듯하였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도깨비 나라에 빗대어 쓴 현실 이야기일까. 그저 책을 읽다가 도깨비 나라에 들어선 상상 혹은 꿈 이야기일까.

 

나를 수집하는 방식은 나의 일상과 글쓰기를 소재로 쓴 시로 무심결에 읽으면 그림 같고 시어와 시구를 음미하며 읽으면 에세이 같은 정녕 시인을 수집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서 보내 온 황매화는 식탁에서 빵을 먹다가 지난밤 꿈속에 나타난 동생을 떠올리는 상황 묘사인 듯하다.

 

구름의 시구름액체를 가지고 연애 중결혼 후를 비유하여 대비시킨다. 기체와도 같은 창공의 무한히 자유로운 질감의 구름과도 같은 연애의 시기(혹은 열정)’와 대비되는 잔이나 병에 담겨 있어야만 하는 액체와도 같은 결혼 이후(혹은 이별)’의 그와 나의 상반된 모습. 그 두 시기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흐른다.

 

장미 이후의 산책은 장미를 참 좋아하던 화자가 말하는, 소풍과도 같았던 장미 이전의 삶과 낯설고 익숙지 않은 장미 이후의 삶을 당신, , 눈사람, 빙수, 바닷속, 장미 등의 소재를 가져다가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장미의 전설은 아이의 잉태와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장미에 비유한 듯하다.

 

어떤 사과의 여행을 읽으니, 어쩌면 동요 󰡔사과 같은 내 얼굴󰡕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는 아이,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교감하는 엄마가 느껴졌다.

 

강은 슬픔이 창백한 악기에는 감염, , 파리한 입술, 창백한 악기 등의 소재가 어떤 슬픔을 드러내는 것 같다. 화자는 봄 어느날 밤 음악을 들으며 강물과도 같은 어떤 슬픔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 같다.

 

피아니스트는 상당히 몽환적이다. 여름날 그를 생각하며 피아노를 친다. 쇼팽의 이별 노래.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얼음 같은 눈물. 그 눈물이 살살 녹아 집이 젖고 물에 잠길 정도라고 그득한 슬픔을 표현한 듯하다.

 

우리라는 이름의 거울또한 거울 속에 거울이 있고 내 모습이 그 속에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의미 해석을 하기엔 담긴 의미가 너무 다중적이다. 거울 속 인물이 나를 비추는 나이며, 현실의 나와 거울 속 나가 우리인 것인지. 거울을 통해 비추고 싶은 내 마음속의 당신이며, 나와 당신이 우리인 것인지. 거울 그 자체가 당신이며, 나와 거울이 우리인 것인지. 거울에 투영된 현실의 당신이며, 깨지기 쉬운 거울의 속성을 매개로 한 현실의 우리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지. 왠지 이상(李箱) 시인의 시 󰡔거울󰡕이 떠올랐다.

 

의자와 복숭아를 읽다보니, 第一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第二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중략)”으로 이어지는 이상 시인의 󰡔오감도 烏瞰圖󰡕가 떠올랐다.

오래 앉아 있어서 의자에 복숭아가 생겼습니다/복숭아는 붉습니다 복숭아는 부드럽습니다/복숭아는 아름답습니다(중략)”(p106)

의자 위 엉덩이 자국에서 복숭아를 연상하고, 과수원, 복숭아꽃, 복숭아밭 등 그 의자에 앉아 뭉게뭉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유목의 습관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시 소재는 사뭇 기묘하다. ‘입술 이지러진 곳에 해당화’,‘식도를 타고 내려오는 건 염소들의 짧은 다리’,‘양의 피’,‘어린 정령들’,‘빛의 처녀들’,‘핏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풀의 잘린 손’,‘유령의 발소리’,‘비릿한 체취등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속엣말을 도무지 모르겠더라. 자의적 의미 해석 또한 어려워 다시금 곱씹어 읽으며 시구들을 이미지화하다보니, 이건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같았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작품 󰡔기억의 지속󰡕 같달까?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에서 마치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아기 코끼리 그림을 그리는 아이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이를 흐뭇하게 보고 아이의 코를 어루만지며 교감하는 엄마의 모습도 떠올랐다. 특히 하늘의 동공 안에 코끼리 한 마리 앉아 있었고(p139)라는 시구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이라는 작품 이미지가 느껴졌다.

 

달의 수화에 등장하는 은 그냥 숲일까? 아니면 닳고 닳을 정도로 오랜 연인일까? ‘숲의 신호음이란 것은 달이 뜬 밤을 뜻하는 시간을 뜻하는 단순한 알람이어서, 숲으로 산책 나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달의 수화라 이름 붙여준 연인이 보고 싶다는 무언의 자각일까? ‘달의 수화란 것은 어쩌면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의 매개가 아닐까?

 

동백을 사랑하는 손은 도화지에 연필로, 물감으로 동백을 그려내는 과정이 청각적, 시각적으로 표현된 묘사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동백은 그냥 꽃일까? 아니면 님일까?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서 보이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간추려본다.


 

첫째, ‘초현실주의를 표방한 시

이어진 시인의 시는, 마침표 하나 없이 죽 이어진 한 행()으로 표현되었거나 연() 나눔 없이 몇 개의 행을 열로 이어낸 자유산문시가 대부분이다.

물론 개중에는 연을 나눈 시도 있다. 웃지 않는 나무들, 장미의 전설, 목련의 , 달을 위한 소나타, 웃지 않는 나무들, 첫눈 오는 날의 몽상, 검은 피아노의 흰 파도, 기린이 자라는 꿈, 눈사람, 봄의 왈츠, 가로수, 열애 중,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 동백을 사랑하는 손등이 그러한데, 14편에 불과하다.

이러한 시의 형식과 함께, 시의 내용을 파악하기가 다소 어렵다. 한 번 두 번 읽어서는 언뜻 의미 해석이 안 된다. 이유가 있다.

시 형식의 파괴와, 꿈인 듯 몽상인 듯한 기묘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시 내용의 표현... 이어진 시인의 시들이 바로 초현실주의적인 시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surrealism 超現實主義)’는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이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ealisme)을 발표한 1924년부터 그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브르통은 무의식과 꿈이 인간정신의 자유로운 발로이며 경이로운 아름다움이라 규정하였다.

우리나라에도 1920~1930년대 초현실주의 시인으로, 󰡔오감도 烏瞰圖󰡕,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거울󰡕 등의 시와 소설 󰡔날개󰡕 등으로 유명한 이상(李箱) 시인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어진 시인도 이상 시인에 버금갈 정도 되지 않을까?


둘째, ‘자동기술 기법이 적용된 시

초현실주의 작품에 주로 쓰이는 기법인데, ‘의식의 흐름 기법과 비슷하다보니 혼용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자동기술 기법은 작가가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그대로 표현하는 기법으로, 직접 작가의 내면을 그려 보이며, 주로 에서 많이 쓰인다. 이 기법이 적용된 이상의 시를 예로 들어 본다.

 

󰡔건축무한육면각체 建築無限六面角體󰡕 - 이상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의향수의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공중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씌어져있다

옥상정원.원후를흉내내이고있는마드모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에내리워진일개의침수된황혼 (중략)

 

의식의 흐름 기법은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자유 연상,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적는 기법으로, 주로 소설에서 내적 독백, 무의식적 기억 등에 쓰이곤 한다. 이 기법이 적용된 이상의 소설을 예로 들면 아래와 같다.

 

󰡔날개󰡕 - 이상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精神奔逸者)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만을 영수(領受)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쯤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중략)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에는 잠의 나뭇가지, 벚꽃 크로키, 내 귓속을 한동안 응시, 심장의 여행, 독감, 남애리 바닷가, 날마다, 장미, 질주하는 계절, 내 안의 물소리, 달의 수화등등 자동기술 기법이 적용된 초현실적인 시들이 죽 들어차 있다. 이어진 시인의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그대로가 표현되어 있어서 꿈인 듯 몽환적인, 시인의 내면이 시어로 얽혀 있어서 너무도 주관적인 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시를 읽어내고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진 않다.

 

셋째, ‘판타지가 펼쳐지는 시

이어진 시인의 시를 읽어내고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진 않더라도, 여러 번 곱씹어 시어와 시구, 행과 행을 음미하며 머릿속 도화지에 하나하나 갖다 붙이고 이미지화하면 뜻하지 않게 한 편의 그림 작품과도 같은 화면이 현상되곤 한다.

이미 내 경우 그런 현상을 경험하였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창문의 각도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 계단의 깊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심금󰡕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유목의 습관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 코끼리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시들 속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호안 미로(Joan Miro) 등이 연상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마치 시()가 그림()으로 보이는 경험.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면 판타지 세계를 묘사한 듯한데, 이어진 시인의 시들을 통해 연상되는 그림 또한 판타지 그 자체였다.

 

이 외에도 질주하는 계절에서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이상한 기분을 읽을 때는 왠지 모르게 영화 󰡔록키 Rocky (1977)󰡕에서 주인공 록키 발보아와 친구의 여동생인 에이드리언 페니노와의 첫 데이트 때 첫 키스 장면을 에이드리언의 시선에서 묘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검은 피아노의 흰 파도는 영화 󰡔피아노 The Piano (1993)󰡕의 한 장면 느낌이, 비를 추모하는 방식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를 떠올리게 하였다.

 


넷째, ‘매력적인 표현이 인상 깊은 시구

이어진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시구 표현들이 눈에 띈다.

 

내게 나뭇잎을 떨구어 주는 나무들, 네가 건넨 백지 수표에는 거리의 음악들이 쏟아졌다(p16) - <창문의 각도>에서

내가 나를 사랑하는 계절엔 나뭇잎이 무심결에 허공을 응시한다(p52) - 심장의 여행에서

내 몸에 살고 있는 책의 갈피를 넘겨 보았다 갈피마다 묻어 있는 빨간 단풍잎, 가을의 손가락을 닮아서 들여다 보았다 파란 잎을 보냈는데 붉은 태양의 손가락을 닮은 뒷면을 보내왔다(p76) - 첫눈 오는 날의 몽상에서

가슴께에서 단풍잎이 바스락거렸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줍고 있는 손, 몇 해 전에 떨어뜨리고 간 파란 꿈들이 붉게 물든 문장이겠지(p76) - 첫눈 오는 날의 몽상에서

아이들이 사탕을 입안에 넣고 지구를 굴리고 있다 지구는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아이들을 살살 녹여 먹고 있다(p131) - 사탕에서

빗줄기가 여름 내내 쏟아졌다 천둥 번개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안녕? 하는 날씨로, 내 웃음을 바라보며 유리창에 죽죽 금을 그었다(p137) - 전주곡에서

 

우리나라에 첫 문장으로 유명한 시들이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유치환 󰡔깃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노천명 󰡔사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서시 序詩󰡕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원태연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이어진 시인의 시 중에서도 첫 문장이 인상 깊은 시구가 눈에 띈다.

 

내 차가운 심장에 기름을 부어 줘 풍선을 타고 하늘을 오를 수 있게(p13) - 수선화에서

나는 실어증에 걸린 커피를 즐겨 마시는 습관이 있다(p24) - 나를 수집하는 방식에서

폭설 안에 감기 기운이 앉아 있다(p60) - 독감에서

내가 너의 악보를 건드리자 너는 화들짝 꽃을 피운다(p62) - 어떤 사과의 여행에서

음악에 감염된 오후다(p85) - 강은 슬픔이 창백한 악기에서

온몸에 바람을 팽팽하게 채워 넣고 네 궤도를 공전한다(p103) - 별의 눈물에서

당신은 나의 어항 속에서 지느러미를 흔들며 건너편 숲을 향해 헤엄쳐 갑니다(p108) - 어항 속 당신에서


 

다섯째, 친근하게 다가오는 의외의 시도 존재

이어진 시인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초현실적인 시만 쓴 건 아니다. 예상 밖에 다소 쉽게(?) 읽히거나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오는 시도 있다.

 

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같은 경우, 사과와 토마토를 즐겨 먹다보니 점점 젊어진다면서 이들의 유익성을 유머스럽게 표현하여 재미졌다.

나의 얼굴이 없어진다고 한다/내가 사라진 자리에/한 알의 사과가/한 알의 토마토가/생겨난다고 한다 누구세요 당신/점점 젊어져서 죄송합니다/사과와 토마토의 탓이라고(p34)

 

가로수라는 시는 장욱진 화백의 작품 󰡔가로수󰡕를 모티브로 쓴 것이다. 이 시는 여러 다른 초현실적인 시들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한 편의 동시같은 느낌을 준다.

 

-----------------------------------------------------------------------------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읽고 또 읽고 다시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내 뇌리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

우선,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내 심상에 시어시 표현등이 알알이 맺히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아무래도 이어진 시인의 시들이 초현실적이다 보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이 시집은 한 두 가지 정도로 의미 해석이 되는 게 아니라 다의적 다중적 해석이 가능한 시들의 집합체이다. 그렇다보니 이성적 머리로 해석하려고 하기보다는, 시를 읽을 때마다 그때 그때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로, 느껴지는 감성으로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

 


다행(?) 책 말미에 이성혁 문학평론가의 󰡔사랑의 씨앗을 대지에 심기 위한 여정󰡕이라는 해설꼭지(p151-175)가 있으니, 이어진 시인의 시 세계를 좀 더 심도있게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상당히 압축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서사인 것 같으면서도 서정적이며, 서정적이면서도 자동기술이고, 그에 따른 탁월한 입체적 묘사력과 심리의 회화적 형상화가 돋보인다.

시를 공부하는 학생, 시를 쓰고자 하는 지망생이나 시인을 꿈꾸는 시 입문자분들이 읽으면 좋은 시집이라고 믿는다.

 

-----------------------------------------------------------------------------

 

마지막으로 이어진 시인께 제안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는 마치 (시어)로 그린 초현실주의 그림 작품과도 같은 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추후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 작품과 콜라보로 시화집을 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한 예로 시가 지나간 자리에 명화가 남아-윤동주×김소월이 노래하고, 반고흐×모네가 그리다(2020, 뮤즈MUSE), 김소월×천경자 콜라보 진달래꽃(2023, 문예출판사) 등의 시화집이 선보인 적이 있다. 꽤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된다.

저작권 조약인 베른 조약에 따르면 작가 사후 50년까지, 미국 저작권기한연장법에 따르면 작가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이 보장된다. 예를 들어 르네 마그리트(1898.11.21.~1976.8.15.)의 경우 최장 사후 70(~2046.8.15.) 이후에 저작권이 풀릴 것이니, 이때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재출간하려 한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매칭하여 시화집 출간을 기획해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참고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의 시 중에서 수선화사과와 토마토를 위한 노래같은 시는 왠지 유명해질 거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 - 쓰면서 생각을 키우는 스토리의 힘 사춘기 수업 시리즈
정명섭.이지현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쓰기 노하우와 경험이 담긴《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춘기 청소년, 글쓰기를 좀 더 잘 하고 싶은 사람, 늦깎이 신진 작가를 꿈꾸는 성인, 글쓰기 수업을 위해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학교 선생님 등에게 더없이 좋은 노하우집이자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 - 쓰면서 생각을 키우는 스토리의 힘 사춘기 수업 시리즈
정명섭.이지현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를 벗어나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의 관심사가 ‘가족’에서 ‘친구’나 ‘외부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다. 아빠, 엄마, 형제자매의 생각, 행동, 관계 등 그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가족 외부로 확장되어 친구A, 친구B, 쌤, 이성, 게임, 독서, 운동, 놀이, 연예, 취미, 특기 등으로 다변화된다.

내 아들도 중학 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오르내리는 감정의 불안정안 기복(起伏)이라든가 신체의 성장 속도 등 사춘기의 심신 변화에 제 스스로 깜짝 놀라 무언가 ‘집중할 것을 찾아 몰입하면 그런 변화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는데, 그 당시 아이가 찾은 몰입 대상은 ‘독서’와 ‘게임’ 2가지였다.

‘게임’은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 차원에서 하루 2시간 이내로 정신없이 몰입하여 하였고, ‘독서’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던 습관을 이때까지도 이어서 하는 것이었다.

특히 ‘독서’의 경우 청소년소설을 비롯하여 장르문학, 고전문학, 추리 역사물 등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 이에 몰입하면 여타의 사춘기 심신 변화나 환경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집중하기 좋았다고 했다. 또한 아이 말에 의하면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어졌다.”라고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노벨피아'에 옴니버스 형식의 웹소설을 써서 올렸다고 하더라.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을 처음 보았을 때, 내 아들의 경우처럼 ‘글을 쓰고 싶은 사춘기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책의 저자인 정명섭 작가는 이 책을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소설 쓰기) 첫걸음 안내서』라고 언급하면서 출판하게 된 이유를 다음처럼 밝혔다.

“(저는) 전국의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소설 쓰기 강의를 해요. 그들을 만나서 고민을 듣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씨앗을 함께 싹틔워 가는 시간이 참 좋거든요. 글감을 어떻게 찾을지 몰라 헤매는 학생부터, 일단 쓰고 싶은 대로 썼다가 주변에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여 속상해 하는 학생까지. 저마다 다른 고민을 안고 끙끙대는 모습. 글 쓰면서 어려움에 부딪혀 헤매는 … (학생들을 위해) … 책으로라도 여러분과 만나려고 … 준비해 보았습니다.”(p6)


이 책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은 전체적인 구성을 『기-승-전-결』로 꾸몄다.

목차 구성은 다음과 같다.


• 기 : 소설쓰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 승 :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 전 :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 결 : 어떻게 마무리할까?


책을 구성에 따라 흐름대로 차근차근 읽다보면 ‘본격 소설 쓰는 스킬’이 눈에 확 들어온다.




[기 : 소설쓰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정의, 분량, 종류 등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소설을 왜 쓰나’, ‘소설 쓰기와 친해지는 법’ 등 ‘소설 쓰기’의 시동을 걸어 주는 부분이다.


우린 ‘소설’이라고 하면, ‘허구의 이야기’라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삶 속에서 소설이 과연 필요할까? 이 책에서 소설의 필요성을 말한다.

“소설은 지어낸 것이지만 동시에 삶에 관련된 현실성을 가지기도 하죠. 그래서 흔히 소설을 인간의 서사시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소설은 우리가 겪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소설이 필요한 것이죠.”(p20)


소설이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기승전결을 갖춘 허구의 이야기’(p27)이긴 하지만, ‘삶에 관련된 현실성’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가 있다.

“소설은 서사의 집약체”(p18)

즉, 어떤 이야기에 사건과 인과관계 등을 덧붙여 서사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에 비유하자면, ‘구슬’은 ‘이야기’이고 ‘보배’는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가 소설이나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서사로 엮어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p19)


작가는 소설 쓰기를 하면 좋은 ‘강력한 장점 2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소설 쓰기는 문장력, 어휘력 그리고 상상력을 높여준다.(p20)

둘째, 소설 쓰기를 통해 ‘자기 이름이 박힌 책’을 출간한 저자로서 익명의 대중 속에서 ‘나’를 온전히 식별한다는 큰 장점입니다.(p24-25)


특히 『소설 쓰기와 친해지는 법』이 눈길을 끌었는데, 2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습관과 습작 : ‘글쓰기 습관을 들이기 위해 꾸준히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데, 실천하느냐 못 하느냐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낸다고 강조하였다.(p39-41)

둘째, 독서 : ‘반드시 많은 양의 책을 읽는 것’의 중요성도 지적하였다.(p41-43)



[승 :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는 글쓰기 첫걸음에 해당하는 ‘소재 찾기’와 주인공이나 빌런 등 ‘등장인물’ 구상, ‘세계관과 배경’의 부여, ‘사건’의 설정 등에 관하여 설명하는 부분이다.


소재는 내 주변에서 탐색하고,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같은 매력적인 인물 캐릭터를 구상하는 것과 세계관 및 배경의 중요성 등이 언급되어 있는데, 특히 ‘사건의 설정’이 관심을 끌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독자가 ‘다음 상황이 궁금해서 독자가 빨리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p75)들을 만날 때, 기분이 너무 좋을 것이다. 이런 작품을 일명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하는데, 그런 책을 만나게 되면 읽다가 책 속으로 빠져들어 버린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예전에 일본 소설가 ‘스즈키 코지’(鈴木光司/すずき こうじ)의 소설 《링(Ring)》 시리즈를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아마 1997년에 읽었을 것이다.(영화 〈링〉은 1999년 개봉) 이 책을 우연히 접하고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을 다 읽어버렸고, 이내 다음 권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나에게 소설 《링》이 페이지 터너였다.


“이야기가 ‘페이지 터너’라는 반응을 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 바로 ‘사건’입니다. 글이 재밌으려면 반드시 사건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사건을 등장인물(주인공)이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줘야 해요.”(p75)


소설 《링》의 경우, 보고 나면 1주일 후 본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게 되는 의문의 비디오테이프의 존재와 그에 얽힌 비밀, 연속된 죽음, 주인공 류지가 살기 위해 비디오테이프에 담긴 비밀을 풀기 위한 추리와 추적, 사다코의 등장 등 일련의 사건들이 재미 요소로 작용하여 읽는 내내 책을 놓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야기는 물론 창작해야 하지만 ‘사건’은 찾는 게 좋아요. … 현실에서 벌어졌던 일이나 실제 일어나는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뜻이죠.”(p76)


소설 《링》의 경우, ‘생각만으로 건판이나 필름을 감광시켜 풍경이나 사진을 찍는 능력’인 염사(念寫) 초능력을 지녔던 영능력자 미후네 치즈코와 타카하시 사다코 등을 모델로 하였고, 1910년 도쿄대학 후쿠라이 도모키치 박사가 진행한 심리학 최면술 연구 실화 등 실제 있었던 사건을 찾아 소설 소재로 다뤘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독자를 집중하게 만들었던가 보다.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하면 독자들은 더 집중합니다. 어딘가에서 봤거나 혹은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사건의 소재는 항상 가까이서 현실적인 것으로 찾아보세요.”(p77)



[전 :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는 소설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탈고까지의 과정 중에 필요한 ‘실제 소설 쓰기’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우선 ‘시놉시스(synopsis)’를 언급한다.

“아이디어는 형상화 되어 있지 않고, 기승전결을 갖추지 못했어요. 그러니 떠오른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어요.”(p87)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 ‘시놉시스’가 필요합니다.”(p87-88)

시놉시스는 ‘줄거리(핵심 서사)를 정리해 놓은 것’으로써, ‘제목/한 줄 줄거리(=로그 라인 log line)/시놉시스 본문’으로 시놉시스가 구성되며, 그 분량은 장편소설은 A4 3장, 단편은 A4 0.5~1장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첫 문장은 독자를 작품 속으로 이끄는 길라잡이이자 등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p96) 반면, 첫 문장을 잘 쓰려고 거기에 너무 매달려 버리면 … ‘첫 문장의 함정’(에 빠질 수 있으므로) 얼른 벗어나야 합니다.(p97) 그러므로 ‘첫 문장’은 ‘대충’ 쓰는 게 좋습니다.(p96) 어차피 (초고가 완성된 뒤) (다듬어지는 과정에서 …) 첫 문장은 나중에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 부담감은 버리세요.”(p97)


소설의 첫 문장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사건이 발생한다면, 독자들은 수긍하기 어렵고 이야기에 빠져 들기 힘들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빌드업(build-up :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야기의 초반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은 ‘이유’입니다. … 사건 발생에도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사건 발생의 이유가 곧 인물의 서사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유, 그러니까 절박함이 필요해요. … 그런 전제를 앞에 깔면(서 빌드업 시키면) 주인공의 행동이 이해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수긍하고 다음으로 넘어 갑니다. … 독자들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하지 못하면 이야기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요.”(p101)



저자는 ‘빌드업’의 또 다른 방법들을 제시한다.

(1) 시작이 막막할 땐, 클리셰 활용하기(p102)

-‘클리셰(cliché)’는 프랑스어로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것’을 의미하는데, 문학에서는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는 달리 말하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이 낯설어하지 않고 공감하는 내용’이라는 의미이므로, 클리셰를 잘 활용하면 이야기의 빌드업이 마치 에스켈레이터처럼 빠르게 전개되도록 하거나 기대감과 긴장감을 고조시켜 주는 역할을 해서 유용하고 한다.(p104)

(2) 시작 부분에 주인공이 등장하는 몇몇 장면을 그려 넣어 보기(p104)

(3) 우연히 발생한 일이나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에서 도입부를 시작하는 것도 추천(p105)

(4) 초반에 ‘떡밥’을 잘 뿌리는 것도 중요(p105)

(5) 소설 도입부를 짧게 쓰는 것도 추천(p106)

-최근 소설의 도입부를 짧게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사람들이 빠른 전개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입부가 길어지면 독자들은 금방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이 외에 ‘소설에 단순한 재미뿐 아니라 주제까지 담는 법’(p110-112)을 서술하였고, ‘작품의 재미를 살리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해를 높이는 방법’으로써 ‘묘사’(p115)와 ‘대사와 지문’(p116)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며, ‘소설 시점 체크’도 잊지 않도록 설명한다.



[결 : 어떻게 마무리 할까?]는 소설을 완성하는 마무리-결말 내기, 서사 완결, 떡밥 회수, 퇴고 등-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인데, 소설 쓰기 마지막 단계의 중요성을 매우 강하게 설파하였다.


기성 작가도 글쓰기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하는데, 하물며 사춘기 학생이나 막 입문하려는 작가 지망생의 경우 그런 충동이 더할 수도 있겠다. 저자는 이에 대해 언급한다.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병은 ‘내 글 구려병’입니다. 막상 쓰기는 했는데, 쓰면 쓸수록 불안해서 걸리는 병이죠. 쓴 글이 재미없고 별로라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중단할 명분을 찾는 것이 그 증상입니다. 이 병은 ‘설정병’과 더불어서 작가들이 잘 걸리는 대표적인 질병입니다.”(p136-137)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글쓰기를 왜 끝까지 해야 할까요?

그냥 접고 다른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수 있는데 말이죠.(p138)


위의 내용이 바로 ‘내 글 구려병’의 치명적인 증상이라는데, 저자는 이에 대한 ‘효과 빠른 치료제’를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을 통해 세심하게 알려준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정명섭 작가와 이지현 사서교사가 함께 정리해 놓은 [부록]이 있다.


• 부록1 : 작가라는 직업이 궁금해요!

• 부록2 : 책 출간, 이렇게 하세요!

• 부록3 : 선생님을 위한 책 쓰기 활동 지도법 A-Z

• 부록4 : 사서 선생님이 알려주는 글쓰기 십계명


‘부록’ 내용은 책의 본문 내용에 못지않게 상당히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특히 작가라는 직업을 희망하거나 책을 실제 출간하고 싶다면 ‘부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록’처럼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의 뒷심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포인트는 또 있다.


첫째, 소설을 쓸 때 고려해야할 것들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

소설 쓰기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첫 문장을 시작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전 과정이 이 책에 순서대로 담겨져 있다. 실제 글쓰기를 하다가 막히거나 궁금한 내용이 생긴다면, 그 부분을 찾아보면 손쉽다.


둘째, 총 17가지의 질문(Question)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소설 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17가지 뽑아내어 Q1부터 Q17까지 정열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내용을 꾸몄다.



셋째, 매 장(章)마다 말미에 ‘미션’이 주어져 있다.

총 14가지 미션인데, 실제 글쓰기를 습작하려 한다면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을 차근차근 읽고 말미의 미션 수행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글쓰기 습작을 습관화하도록 돕고 실력을 쌓도록 이끌 것이다.


넷째, 정명섭 작가의 ‘작가 데뷔 스토리’는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명섭 작가는 여타 전문 작가들처럼 ‘문학’을 전공했다거나 처음부터 글쓰기를 했던 작가가 아니라고 한다. 비문학 전공자이고 카페 바리스타 등 타 직업 종사자였다. 이후 다소 늦게 글쓰기를 시작하여 30대 중반인 2006년에 소설 《적패》로 작가 데뷔하였다. 추리소설과 역사소설을 읽던 독자였다가 2003년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p40-41) 그리고 3년 여 동안 약 20편 정도의 장편(미출간)을 쓰면서 ‘습작’의 시기를 거친 후 정식 작가가 된 것이다. 이처럼 늦게 글쓰기를 시작하여 소설가가 된 정명섭 작가의 사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춘기 청소년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크나큰 자신감을 얻게 해줄 것이다.



다섯째, 정명섭 작가가 현업에서 쌓은 소설 쓰기 노하우와 경험이 담겨 있다.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은 작가의 노하우와 경험을 손쉽게 체득할 수 있는 ‘소설 쓰기 노하우집’이자,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단계별 소설 쓰기 특강 A-Z’라고 할 수 있다.



정명섭 작가도 책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제가 소설을 쓰면서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최대한 많이 알려줄 테니 편하게 재밌게 읽어주세요.”(p6)


마지막으로, 이 책 《사춘기를 위한 짧은 소설 쓰기 수업》은 소설가를 지망하는 사춘기 청소년, 글쓰기를 좀 더 잘 하고 싶은 사람, 늦깎이 신진 작가를 꿈꾸는 성인, 글쓰기 수업을 위해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학교 선생님 등에게 더없이 좋은 노하우집이자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나르는 지하철 - 지하철 택배 할아버지가 전하는 '가슴 따뜻한 세상 이야기'
조용문 지음, 이경숙 그림 / 리스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 마음속이 아프거나 차갑다면, 혹시 이 사회는 삭막하다는 생각이 엄습한다면, 이 책 《꿈을 나르는 지하철》은 약이 되고 온기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