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나르는 지하철 - 지하철 택배 할아버지가 전하는 '가슴 따뜻한 세상 이야기'
조용문 지음, 이경숙 그림 / 리스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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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람들에게서 보고 듣게 되는 다양한 일상 이야기는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내가 살면서 숨쉬는 현실에서 실제 일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년간 KBS2에서 방영된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라든가, SBS 파워FM 장수프로그램 《두시탈출 컬투쇼》와 같은 사연 이야기를 읽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많은 공감을 샀을 것이다.

‘아침편지’로 유명한 고도원 작가의 책 《고도원의 따뜻한 이야기 아흔아홉 가지》라든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각 작가의 책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만화가 김동화 화백이 집필한 《빨간 자전거》 만화책 시리즈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책도 야화리라는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보고 겪는 여러 일상 속 따뜻한 이야기들을 다룬 만화이다.


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에세이책을 오랜만에 발견하였다. 그 책은 《꿈을 나르는 지하철》로, 지은이는 조용문 님이다. 이분은 전문 작가도, 문필가도, 문학 관계자도 아니다. 다름 아닌 ‘지하철 택배 할아버지’이다.


생각해보니 어떤 ‘직업군’에 속한 분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겪은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어 책으로 엮은 경우가 꽤 있다. 예를 들어, 김완 님이 쓴 특수청소부의 이야기 《죽은 자의 집 청소》, 국내 1호 디지털장의사 김호진 님이 쓴 《디지털 장의사, 잊(히)고 싶은 기억을 지웁니다》, 청소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N잡러로 살아가는 김예지 님이 쓴 《저 청소일 하는데요?》, 택시기사 서홍 님이 쓴 《길 위의 인생 – 나는 서울의 택시기사다》, 경비원 최훈 님이 쓴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 요양보호사 이은주 님이 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등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출간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 책 《꿈을 나르는 지하철》은 지하철 택배일을 하는 할아버지 택배원이 전하는 ‘가슴 따뜻한 세상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준다.


조용문 작가 이력은 다음과 같다.


『‘지하철 택배 할아버지’로 알려진 파워블로거. 30년간 근무한 한국조폐공사를 퇴직한 후 노인 일자리 알선 프로그램을 통해 2010년부터 지하철 택배 일을 시작했다. 배송일을 하면서 경험한 일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일 블로그에 써나갔다. 그의 글을 읽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늘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한 여러 방송에 출연하고, 프랑스와 일본의 다큐멘터리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듯 조용문 님은 2010년부터 지난 14년 간 지하철 택배일을 하면서 일상 속 사진을 찍기도 하고, 보고 듣고 느낀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하였는데, 어느덧 공감하는 이웃이 늘어서 ‘파워블로거’가 되었고, 방송출연에 이어 책 출간을 하게 된 것이다.


조용문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의 주인공은 길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거운 것도 마다 않고 이고 지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어머니,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남을 도와주는 시민들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p5)


작가는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배송 속도가 느려 하루에 3건 정도만 소화한다고 하는데, 택배 초보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 업무루틴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지하철 안팎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고 일을 하며 보고 겪은 경험담을 기록으로 남기다보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 일이 언제부턴가 나의 소명이 되었다.’(p4)라고 밝혔듯 정녕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이 일을 즐기는 것 같다.


첫 이야기로 택배 초보시절 겪은 〈할아버지 별꼴이에요〉 일화를 소개한다.

전화로 배송지를 파악하고 이동하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벨코리아’라는 상호가 눈에 띄지 않아서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가 하는 말은 뜻밖이었다. “할아버지, 별꼴이에요.”(p14)

‘나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길 하나 못 찾는 노인이 답답해서였을까…… 온갖 생각이 그 짧은 찰나에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아이의 다음 말을 듣고서야 오해가 풀렸다.

“할아버지가 별꼴이 아니라 가게 이름이 ‘별.꼴.이.야.’라고요.”(p15)

전화로 소통하다 보니 비슷하게 들리는 말에 혼선이 생겨…… 당연히 ‘벨코리아’가 상호일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이었다.(p15)

지하철 택배원의 초보 시절 최고의 선생님은 그 아이다.(p16)




또 다른 에피소드 〈이름은 모르지만 동료입니다〉는 지하철 미화원과 인사를 주고받게 된 사연(p18-22)인데, 우리에게 작은 깨달음을 얹어준다.

흔히 지하철을 탈 때, 특히 비슷한 시간대에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항상 그 시각 지하철에서 일하는 근무자들(미화원, 공익근무요원, 역무원 등)을 마주칠 것이다. 친한 사이도 아니고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지만, 매번 같은 얼굴을 마주치다보니 얼굴은 무척 낯이 익다. 그 분들께 알은척해보거나 가볍게라도 인사 한번 건네 본 적 있나? 모르긴 몰라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덕분에 아침이 깨끗해졌네요?’ 등 인사 한 마디로도 하루의 시작이 무척 청명하지 않을까? 시작이 어렵지, 막상 물꼬가 터지기만 하면 매일 아침이 밝아질 것이다.


비슷한 에피소드로 〈시니어 핸드폰 일타 강사〉도 우리를 각성하게 해준다.

매일 마주치지만 얼굴은 익숙한 사람들과는 달리, 어느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길 안내 등 도움을 청할 때가 있다. 모르는 척 지나친다고 해도 어쩔 수는 없지만, 작은 관심을 가져본다면 어떨까? 내가 아는 것이라면 도움이 되어보자. 이 또한 우리의 하루를 청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화는, 배려나 도움의 관점뿐만 아니라 ‘늦은 나이라도 배움은 있다. 부끄러울 것 없다.’는 관점으로도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 하나 보내지 못했던 한 노인에게 작가가 차근차근 시범을 보이며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는 일화인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 직접 가르쳐주지 않으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공원이나 대합실에 앉아서 내 또래들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핸드폰 사용법을 가르쳐준다.”(p32)

‘어린이든 노인이든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날개를 달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p33)


이 외에도 하루도 어김없이 자기 몫의 삶을 성실히 살아낸 〈강남역 껌 파는 할머니〉(p44) 이야기, 무더운 여름날 택배를 전하는 아파트 세대 앞에 놓인 아이스박스에 ‘택배원분들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십니다. 시원한 물이나 간식 챙겨 가세요.’라고 적혀있던 문구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친절’을 몸소 경험했던 이야기(p64), 코로나 시즌 때 공모전 대상 상패를 택배로 전달 받게 된 수령인과 그 친구들에게서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 시대의 올바른 소통법”(p143)임을 깨닫게 된 사연, 〈서울역, 고향 가는 길〉(p178)에서 미스터리한 청년과의 만남과 진심어린 대화,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쓰인 시 〈엄마의 인생 예보〉를 보고 눈물이 났다는 젊은 여성 이야기(p212), 종로3가역 추억의 풀빵 이야기(p184), 당산역에서 발생한 배송 중 택배물품 분실사건(p120) 등을 비롯한 총 37편의 이야기들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책 속에서 내 마음에 와 닿는 문구를 소개해본다.


‘살아온 세월이 깊을수록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은 법이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손주가 태어나면 더 큰 사랑이 이해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생의 모습이 아닐지. 겪어보기 전까지 모르는 것투성이라는 사실이 하나의 깨달음처럼 다가오지만, 배우고 이해하는 데 늦을 때란 없다. 깨닫고 나서도 하지 않는다면 후회만 남는다.’(p55) - 〈내 자식 같은 남의 자식〉편


‘길 위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모든 걸 대가 없이 내주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게 와 닿는다. 기억 속 그리운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 비로소 내가 받고 자란 사랑의 크기가 온전히 느껴진다.’(p83) -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편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희 열차의 왼편으로 한강에 예쁜 노을이 물들었습니다. 근심과 걱정은 지하철에 두고 내리시고, 지금 보이는 자연의 예쁜 풍경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p203) - 〈아름다운 한강을 만나는 행운〉편, 당산철교를 지나는 순간 울려 퍼진 기관사의 안내방송


‘역시 글은 지은이가 누구인지, 작가가 유명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읽는 사람에게 공감이 되는 게 가장 좋은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p216) - 〈남몰래 흐르는 눈물〉편


지금 마음속이 아프거나 차갑다면, 혹시 이 사회는 삭막하다는 생각이 엄습한다면, 이 책 《꿈을 나르는 지하철》은 약이 되고 온기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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