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어사 2 - 각성
설민석.원더스 지음 / 단꿈아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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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어사2-각성》이란 책에 관심이 갔다. 작가가 뜻밖에도 ‘설민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강의하는 그 설민석이 소설을 써? 그래서 ‘역사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놀랍게도 ‘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 정조 시대이다. 책 표지에 “만백성을 보살피려는 정조대왕, 뜻을 함께하는 어사대의 활약!”이라고 쓰여 있어서, 왠지 정조의 친위대 중 하나로 ‘어사대’가 창설되었고 그들의 활약상이 전개되는 소설인가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정조의 친위대는 ‘장용영’이다. 그리고 찾아보니 ‘어사대’라는 것은 고려 시대에 있던 감찰기구의 명칭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의구심은 소설을 읽다가 바로 알게 되었다. 정식 명칭은 ‘요괴어사대’이고 그들의 본거지는 목멱 기지이다. ‘목멱’은 목멱산, 즉 지금의 남산이다. 조선 시대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였을 때 남산은 풍수지리설상으로 안산(案山) 겸 주작(朱雀)에 해당되는 중요한 산이었고, 그로 인해 성신(星辰)에게 지내는 제사인 초제(醮祭)를 지내던 국사당(國師堂)이 남산에 있었다.


《요괴어사2-각성》의 공간적 배경으로 목멱산 국사당이 있고, 소설 속 인물로 국무당(國巫堂)이 나온다. 여기에 더하여 정조, 무사 백동수 등 실존했던 인물이 등장한다. 특히 백동수는 정조 친위대인 장용영의 장교로 있을 때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군사 무예 훈련서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정조의 어명으로 편찬(p228)한 인물로, 《요괴어사2-각성》 속 인물 중 정조와 더불어 요괴어사대를 창설하고 훈련하며 성장시키는 중심적 인물로 나온다.




이 소설은 실존 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전혀 뜻밖의 소재가 결합되었다. 바로 ‘요괴 퇴치’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로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망자천도(亡者薦度)를 꿈꾸는 임금, 정조.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결성된 조직, 요괴어사대! 그들의 특별한 여정.”(표3)

또한 소설 본문 중에도 ‘무령이 이토록 흐느끼는 것은 달빛 아래 이루어졌던 요괴어사대의 창단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달이 곳곳에 흐르는 모든 물을 비추듯, 정조는 조선에서 나고 죽은 백성을 돌보고자 했다.’(p39)라는 문구가 있다.

이처럼 《요괴어사2-각성》은, 스스로를 ‘군사(君師)’로 자처하면서 갖가지 개혁 정책 및 탕평을 통한 대통합을 추진하여 백성들의 생업이 편안해지고 질서가 잡힌 세계를 꿈꾸었던 정조의 이상(理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망자천도까지 상상력을 넓힌 것이다!


요괴어사대의 리더 ‘백원’이 요괴 만인사(萬人蛇)와의 결전에서 부상을 입고 전투력과 무기인 청룡언월도를 모두 상실해 버렸다.(p217) 그때 정조는 사도세자가 남긴 비기(祕記)를 백원에게 건내며 “백원아. 이제는 과인뿐 아니라, 하늘의 달과 별, 신수와 짐승까지 모든 만물을 네 스승으로 모시거라.”(p228)라는 말을 남겼다.

이 책은 백원에게 매우 익숙한 《무예도보통지》였는데, 이 책을 수없이 읽으며 무예에 전념하던 어느날 배접지가 벌어졌고, 우연히 그 속에 적힌 글을 발견하여 일일이 배접지를 다 떼어내어 확인해보니 사도세자가 남긴 《무예신보(武藝神譜)》였다.




이 책에 사도세자가 직접 쓴 서문이 있다.

「………절절하게 맺힌 한과 설움으로 구천을 맴돌고 있는 백성들이 너무 불쌍하여 견딜 수 없었다………. 훗날 사악한 것들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나의 병법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다해 이 책에 담는다. 부디 익히고 닦기를 쉬지 않고 노력할지어다.」(p234)


‘훗날을 내다보신 거였어! … 죽은 요괴들을 대비하기 위한 《무예신보》. 행여나 남들 눈에 띌까, 전하께서 이 비급(祕笈)을 배접지로 만들어 교묘하게 감춰 보관하셨던 거로구나….’(p235)

백원은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되고, 이 비급의 내용을 익혀나갔다. 종국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올랐다.


이상(以上)과 같은 제 5부 '백원' 편에 등장하는 백원의 각성 이야기처럼, 《요괴어사2-각성》에는 요괴어사대로 모여들게 된 비형랑(鼻荊郞)의 후손들인 ‘무령’, ‘벼리’, ‘광탈’, 그리고 요괴를 퇴치한다는 뜻이 맞아 요괴어사대에 합류한 ‘요괴를 심판하는 천계의 신수(神獸)’인 ‘해치(獬豸)’에 얽힌 뒷이야기와 각성, 그리고 새로운 요괴들과의 결전 내용이 펼쳐진다.




제 1부 '무령의 재판' 편에서 무령이 당했던 치욕스러운 사건과 요괴가 되어 나타난 홍련으로 인하여 무령이 재판에 얽혀든 이야기, 재판 과정에서 무령의 죄상을 두고 증언하고 변호하는 과정에서 엎치락 뒤치락하는 상황 묘사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해치가 재판장이 되어 열린 재판 과정에서 무령이 언제부터 염력을 사용하게 되었고 신기가 생겼는지가 나오고, 어사대에 들어간 후부터 결계를 쳐서 공간을 분리하여 그 사이를 이동하게 되고, 무기로 사용하는 금줄은 추후 목멱 기지에 들어와서 국무당에게 신공을 배운 후부터였음이 드러난다.(p23-25)


제 2부 '인신공양' 편에서 요괴 만인사가 등장하고, 전 이조판서 서지원과 그 가족에 얽힌 사건이 발생한다. 서지원은 청렴하고 올곧은 사람으로 평판이 좋았으나, 인삼 무역 관련 뇌물 사건으로 귀향살이 중이다. 부인 박정임은 집안에 만인사 사당을 두고 인신공양(人身供養)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만인사 인신공양 사건의 피해자는 거지, 백정, 약초꾼, 보부상 등 주로 신분이 낮은 자들이었는데, 벼리의 아버지인 유해득도 끼어 있었다.


제 3부 '광탈' 편에서 광탈이 만인사에게 당하여 혼이 육신에서 떨어져 나와 만인사에 삼켜졌는데, 이때 광탈이 부모에게 버려지고 남사당패에서 혼나면서 광대짓을 했어야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사이 다른 어사대 대원들이 만인사와 결전을 벌이고, 끝내는 해치가 정조에게서 받은 여의주를 사용하여 만인사를 소멸시킨다.


제 4부 '송장벌레' 편에서 광탈의 부모와 벼리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이 등장하고, 제 6부 '불가사리' 편에서 1,000년 전 수라(修羅)에게 잃은 해치의 잘려나간 뿔의 행방, 백원의 형이 죽게 된 사연, 요괴 불가사리의 사연 등이 나온다. 그리고 제 7부 '해치의 뿔' 편에서 해치가 각성하게 되고,  제 8부 '수라', 제 9부 '인당수'로 이어지며 이 다음에 나올 《요괴어사3》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 책 《요괴어사2-각성》에서 몇 가지 특장점이 눈에 띈다.


첫째, 역사를 전공한 한국사 강사가 저술한, K-역사 판타지 소설이다.

한동안 한국 드라마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던 적이 있다. 바로 역사 판타지 드라마이다. 킹덤, 구가의 서, 태왕사신기 등을 비롯한 작품들이다. 소설류, 웹툰 등도 한 축이다. 이들과 《요괴어사2-각성》의 차이점은, 글쓴이의 정체이다. 여타 작품은 드라마 작가, 소설 작가, 웹툰 작가가 창조한 작품들인데, 《요괴어사2-각성》은 한국사 강사인 ‘설민석’과 작가 ‘원더스’가 공저로 만들어 낸 K-역사 판타지 장편소설이다.




둘째, 역사적 사실과 인물이 사실적 개연성을 더해준다.

정조, 무사 백동수, 사도세자, 국무당 등 실존 인물과 사도세자사건, 《무예도보통지》의 존재, 정조 시대를 살았던 이덕무와 박제가의 이름, 신성시했던 목멱산 등이 사실성을 더하여, 이 소설이 판타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요괴어사대가 있었을 거 같다.’는 개연성마저 들게 한다.


셋째, 소설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중적으로 전개된다.

우선 큰 줄기는 정조가 창단한 요괴어사대의 활동상이다. 다양한 요괴의 출현으로 사건이 발생하면 요괴어사대가 대항하여 결전을 벌이고 해결한다.

그 사이사이에 정조와 요괴어사대 대원들에 얽힌 각자의 이야기들-벼리와 부친 유해득, 무령의 과거, 백원의 어린 시절, 광탈의 지난한 과거와 부모에 얽힌 사연-이 지속적으로 깔려 있다.

그 와중에 매 이야기마다 새로 등장하는 조연급 인물과 요괴들에 얽힌 이야기들도 펼쳐지면서, 《요괴어사2-각성》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으면서도 이야기 전개는 마치 밀도차가 있는 액체들이 섞여 흐르는 듯하다.




넷째, 이야기 짜임새의 밀도가 높다.

예를 들어, 광탈의 혼이 만인사에 먹혔을 때 지난날 남사당패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꼭두쇠와 자신을 보듬던 용석이 광탈 앞에 환영으로 나타났다. 꼭두쇠는 용석을 가리키며 웅얼거렸다. “쟤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 줄 알아? 나? 아니거든. 저놈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광탈이 네가 진실을 알게 되는 거야. 그거 때문에 평생 전전긍긍하며 살았지.”(p131)

여기에서 광탈에 얽힌 복선이 등장한다.

이후 광탈이 만인사에 홀려 거의 실신할 무렵에 해치가 참고 참았던 천기를 누설해 버렸다. “요괴가 지껄이는 헛소리에 넘어가지 마라. 너를 낳아 준 진짜 부모는 목숨뿐 아니라 혼까지 걸고 너를 찾아다녔어!”(p151)

여기에서 2차 복선이 등장한다.

그리고 페이지 193~195에 걸쳐 광탈의 출생과 남사당패에 가게 된 진실이 드러난다.


다섯째, 다양한 요괴들이 출현하여 흥미를 더한다.

《요괴어사2-각성》에 출현하거나 이름이 거론된 요괴를 나열하면, 요괴 홍련, 만인사, 수라, 강철이(強鐵이), 길달(吉達), 장자마리, 불가사리, 토어(土魚), 원귀 심청, 신수 귀수산(龜首山) 등 다양한데, 작가가 창조해낸 것들이 아니라 실제 우리 역사 기록이나 문헌 등에 등장하는 이름들이라는 게 놀라웠다.




여섯째, 역사 판타지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상당한 판타지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

애초에 요괴들의 출몰부터 판타지이고, 그들과의 결투 과정, 이들에 대항하는 요괴어사대의 존재와 그들의 능력, 각성 등 또한 판타지 요소들로 가득하다.

백원의 경우를 한 예로 들어보면, 실의에 빠진 백원이 정조가 하사한 《무예신보》의 내용을 익히면서 수련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져, 청룡언월도를 들어 올려 땅을 내리 쳤을 때 ‘굉음과 함께 천지가 흔들렸(고) …… 날카로운 번개가 지나간 것처럼 거대한 연무장 바닥은 두 동강이 나 있었(다).’(p240-241)

그리고 이 과정에서 오랜 잠을 자던 불가사리를 깨워낸 연유로 불가사리가 백원을 시험에 들게 하였으나,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낸 백원에게 “불가사리, 귀인을 뵈옵니다. 알아뵙지 못하고 시험하려 했던 점, 용서해 주시길 비나이다.”(p284)라고 말하고는 불가사리 스스로 백원의 내면으로 흡수되었다. 그후 백원의 몸은 불가사리의 힘으로 강철갑옷이 감싸는 신통력이 발휘된다. 이는 판타지 요소로써 인물의 능력치 향상과 더불어 이를 통한 극적 재미를 한층 끌어올려준다.




일곱째,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구간 구간들이 박혀 있다.

한 예를 들면, 페이지 7~186에 걸쳐 조연급 인물로 등장하는 전 이조판서 서지원이란 인물을 통해 권세 있는 일부 양반네의 파렴치함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우리에게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그(서지원)가 딸(무령)을 버린 것도 모자라, 딸을 해친 자의 허물을 덮는 파렴치한이었다니.’(p75)

‘집은 한눈에 봐도 -임금이 사는 궁궐보다 조금 작은 정도로- 거대했다. “이런 집에 살면서 청렴결백? 웃기시네.” 서지원은 선비라 일컫는 자들의 실체라 할 수 있었다. ……… 입으로는 청렴하다 말하지만, 고리대금으로 백성들의 피 같은 돈을 빨아먹었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좇는다지만, 실상은 노비를 부리고 소작농이 애쓴 수확을 긁어 갔다. 간혹 흉년이 들면 곳간을 푸는 부자도 있었지만, 그중 단 한 톨도 그들이 키운 건 없었다. 분명 선행은 맞지만, 이는 다음 수확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p91-92)

‘어명으로 장 20대를 맞고 무기한 유배형에 처해진 서지원 부자는 무인도에 유배당했다. 석 달 먹을 곡식 자루에는 겨만 날리고 벌레 먹은 곡식이다. 이를 보고 서지원은 흉년에 양민들에게 꿔 준 곡식이 딱 이랬다는 게 떠올라 자업자득(自業自得)인가 싶었다.’(p181-183)




나는 K-역사 판타지 장편소설인 《요괴어사》시리즈 중에서 제 1권을 읽지 않은 채로 제 2권인 《요괴어사2-각성》(2023.12.18.발행)을 읽었는데, 상당한 몰입감을 느꼈다. 흥미로운 소재와 개연성, 짜임새가 한 몫을 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소설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중적으로 전개’된다는 특징 덕분인지 제 1권에 해당하는 《요괴어사1-지옥에서 온 심판자》(2023.04.24.발행)를 읽지 않았음에도, 정조의 뜻으로 비형랑의 후손들을 찾아다녔고 각각의 사연이 있는 이들이 요괴어사대로 모였으며, 요괴 강철이 사건에 이어 요괴가 된 홍련과 얽힌 연리도(蓮鯉圖)를 이용한 살인사건 등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다음에 발행될 《요괴어사3》은 원귀가 된 심청과 얽힌 사건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 예상되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무척 궁금하다.


뿐만 아니라, 해치는 이후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가. 요괴들의 수장 격인 수라와 그 무리들은 어떤 식으로 세상을 어지럽힐 것이며, 정조와 요괴어사대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며 활약할 것인가. 또 어떤 새로운 요괴가 등장할 것인가. 또 어떤 비기나 비밀 등이 드러날까. 너무도 많은 호기심이 증폭된다.


K-역사 판타지 장편소설 시리즈 《요괴어사》의 다음 권이 두구두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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