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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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말’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정감 넘치고 글맛 당기는 카피를 쓰기 위해 우리말 단어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안다미로’, ‘시나브로’, ‘소소리바람’, ‘띠앗’, ‘너나들이’, ‘희나리’ 등의 단어를 그때 알게 되었다. 나름 꽤 공부를 했다고 자부(?)했음에도, 이 책 <우리말의 발견>을 읽으면서 겸손(?)해져야만 했다. 내가 알던 우리말의 단어 수는 새발의 피였다.


<우리말의 발견>은 점차 잊혀지고 있는 우리말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끌고 ‘훗날 우리말인데도 번역해야 할 상황이 올까 우려된다’(p5)는 저자 박영수 원장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노력이 담긴 책으로,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말에 대한 정감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 잊혀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공감하며 우리말 단어에 관심도가 높아져 그 ‘쓸모’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정감 넘치고 쓸모 있는 우리말 공부’라는 부제처럼 말이다.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여는 글’에 기재되어 있는 문장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머드러기 사 오라고 했는데 잔챙이를 가져와도 애오라지 받아들이고, 아기똥하고 반지빠른 사람의 불행에 잘코사니 하다가, 슬금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룽구니가 될 수도 있으며, 글을 쓸 때 불퉁가지와 행짜의 뜻을 몰라 연신 붓방아 찧을지도 모를 일이다.”(p5)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



이 책의 저자인 박영수 테마역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우리말 단어 어원과 문화 관습 유래를 필생의 목표로 삼아 꾸준히 근원을 추적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매 페이지 구성이 여타 우리말 관련 서적들에 비해 세세하고 치밀하며 신뢰감이 느껴질 정도여서 미뻤다.


대개 단어와 관련된 책은, 표제 단어 아래 그 단어의 유래, 뜻, 용례 등을 다는 정도의 구성이 흔했다. 그런데 이 책 <우리말의 발견>은 우리말 단어 아래 문학작품 속에서 쓰인 용례를 선보이고는 주로 예문을 기반으로 표제 단어의 뜻, 유래 등을 해설하고 여타 비교할 단어나 참고할 단어가 있다면 이에 대한 설명도 추가하였으며, 맨 아래에 표제 단어에 대한 뜻풀이를 사전식으로 가첨해두었다.


특히 이 책의 구성 면에서 주목할 점이 2가지 있다.


하나는, 고대시가나 근현대소설 등 문학작품 속에서 우리말 단어의 사용 예시를 따온 점이다.

모르긴 몰라도 수백 아니 수천 편 이상의 작품들을 읽고 우리말 단어가 쓰인 갖은 문장들을 수집하여 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지 않았다면, 이렇듯 적재적소에 마침맞게 용례를 활용하며 우리말 단어를 풀어내는 작업은 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에 들인 저자 박영수 원장의 공력(功力)과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애정(愛情)이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우리말 단어 하나에 대해 일종의 ‘가지 치기’식의 풍부한 해설을 담아낸 점이다.

예를 들어 22페이지에 ‘물비늘’을 설명하면서 유의어 ‘윤슬’을 같이 풀어내었고, 62페이지 ‘미쁘다’ 편에서는 ‘미덥다’, ‘못 미덥다’, ‘믿음직하다’ 등의 유사 및 반의 단어도 포함하여 설명하고 있다. 265페이지에서도 새 옷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인 ‘새물내’와 ‘진솔’의 의미상 어감상 차이점과 아울러 이들의 반대말인 ‘자릿내’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75페이지 ‘찹찹하다(마음이 가라앉아서 차분하다)’ 편에서는 발음이 유사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착잡하다’와 비교 설명하기도 하였고, 177페이지에 나오는 ‘잡도리’를 설명하기 위해 각기 다른 단어 뜻이 포함된 용례를 가져다가 ‘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단속하는 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 족치는 일’이라는 2가지 뜻풀이를 해주고 있으며, 181페이지 ‘진대’를 설명하기 위해 따온 예문 “이것봐, 양씨! 거 윷진아비처럼 부득부득 생떼를 쓰며 진대 붙지 좀 마쇼 잉.” 속에 등장하는 ‘윷진아비’를 추가적으로 의미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106페이지 ‘호주머니’는 ‘만주 북쪽에 사는 오랑캐 옷에 달린 주머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라든가 112페이지 ‘억척스럽다’에서 ‘억척’은 ‘작은 이가 꽉 맞물린 상태를 가리키는 악착(齷齪)에서 나왔다’라고 하는 등 단어의 유래 설명도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또한 164페이지에서는 용례 이외에도 본문 상에 “예컨대 놀이공원에서 어쩌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아이를 찾을 때까지 공원 곳곳을 ‘발서슴’한다.”와 같은 일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예시문을 소개하기도 하고, 163페이지 ‘베돌다’편에서처럼 “베돌던 닭도 때가 되면 홰 안에 찾아든다”와 같은 속담 등도 종종 나온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관용구 문장도 꽤 많다. 157페이지 ‘동곳을 빼다’를 예로 들면 그 뜻이 ‘힘이 모자라서 복종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다’라는데 언뜻 봐서는 왜 이런 뜻이 나타내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동곳’이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해설해줌으로써 완전 이해를 도모한다.



이렇듯 각 표제 단어를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저자는 문학 속 용례, 단어 뜻풀이, 유래, 유의어, 반의어, 비교어,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 설명, 참고내용, 추가 단어 설명, 관용구 소개, 추가 예시, 속담 소개 등 갖가지 풀이 방식을 총동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기의 2가지 주목할 점을 놓고 볼 때,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저자 박영수 원장님은 정말 우리말에 진심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탐독하고 연구하며 우리말에 관한 것이라면 거스러미에서부터 머드러기에 이르기까지 그러모아 여툰 것들을 세심하게 갈무리하여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이리라.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금, 초반에 나를 당황케 만들었던 ‘여는 글’에 소개된 문장을 되새김하며 읽어보았다.


“알이 굵고 좋은 것을 사 오라고 했는데 가장 작고 품이 낮은 것을 가져와도 마음에 부족하나마 겨우 받아들이고, 교만 앙큼하고 얄밉게 약삭빨라 인간미 없어보이는 사람의 불행에 고소하게 여기다가, 겉보기에 미련해보이나 속으로는 슬기롭고 너그러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며, 글을 쓸 때 불퉁가지(순하지 않고 퉁명스러운 성질)와 행짜(심술을 부려 남을 해롭게 하는 행위)의 뜻을 몰라 연신 고심만 하면서 붓대만 자꾸 위아래로 움직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 이런 뜻을 지닌 문장이었구나!


솔직히 저자가 우려했던 대로 ‘우리말인데도 번역해야 할 상황’이나 마찬가지로 뜻풀이하며 문장을 읽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이 문장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어 나름 작은 보람을 느꼈다.



이 책을 읽어보았다면, 아니 이 책을 가지고 있기만 해도 의미 파악이 가능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우리말 단어 328개를 표제어로써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풍부한 우리말 단어가 담겨 있기에, 어느 정도 이상 ‘우리말 사전’으로써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요즘 잘 쓰지 않으나 여전히 쓸모 있는 우리말을 다뤘”다고 강조하였다.(p5)



저자의 말대로, 내가 책을 보면서 “오~ 이거 괜찮은데.”하며 밑줄 그은 ‘여전히 쓸모 있는 우리말’ 단어들을 짚고 넘어가볼까 한다.


사회생활 하면서 ‘더치페이’라는 외국어 조어를 흔히 사용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단어로 ‘갹출(醵出)’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발음도 어려운 한자어여서 잘 쓰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각자내기’로 순화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이 책에는 쓸모 있는 우리말 단어를 소개한다. 바로 ‘추렴’이다.(p41)


흔히 요리방송이나 레시피 등에서 ‘소금 한 꼬집’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사전에 등재될 것 같기는 한데, 이 책은 엄연한 사전 등재 단어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밤’을 소개하고 있다.(p48) ‘손가락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라고 한다.



‘너울가지’라는 우리말도 눈길이 갔다.(p89) 요즘은 사교성(社交性)이라는 한자어를 많이 쓰는데, ‘너울가지’는 사교성 외에 붙임성, 포용성까지 담고 있는 순 우리말이다.


‘어떤 방면에 대해 통달할 정도로 훤한 사람’이란 뜻의 ‘빠꼼이’라는 단어도 재밌는 표현이다.(p103) 이 방면으로는 도사(道士)네 팔방미인(八方美人)이네 전문가(專門家)네 하는 한자어보다 더 정감가고 재밌는 단어이니, 실생활에서 틈틈이 활용해보면 말맛이 날 것이다.


첫인상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태도를 반성하게 만드는 단어도 있다. 바로 ‘슬금하다’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지만 속마음은 슬기롭고 너그럽다.’는 다소 길고 복잡한 의미를 단지 4음절만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단어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활용해봄 직하다.


브랜드 이름 ‘앙팡’이 느껴지는 ‘암팡지다’(p131)라는 단어, ‘근심 걱정이 많아 사소한 일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신청부’(p109), ‘꼭 집어 말하지 않고 헛되이 마구 큰소리로 떠드는 짓’이라는 ‘왜장질’(p114), 유명 캐릭터의 이름과도 같은 우리말 단어 ‘뽀로로’(p170), ‘완벽(完璧)하다’와 의미가 같은 우리말 ‘오롯하다’(p229), ‘저축(貯蓄)하다’에 해당되는 우리말 ‘여투다’(p338) 등 기억에 남는 단어들이 있었다.



이외에도 ‘메모(memo)’ 대신에 ‘적바림’(p179)을, ‘포스트잇(post-it)’ 대신에 ‘찌’(p180)를, ‘스펙(spec)쌓기’ 대신에 ‘깜냥쌓기’(p330)를 제안하는 저자의 소소한 바람도 눈길이 갔다.


이상으로 소개한 우리말 단어들 이외에도 이 책은 숱한 단어들로 풍성하다. 앞서 말했듯이 총 328개의 표제 단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말미에는 ‘찾아보기’ 부록이 추가되어 있어서 ‘우리말 사전’으로도 활용하기 좋다.



사실 이 책 <우리말의 발견> 속에는 328개의 단어 이외에 약 200여개 내외의 단어가 본문 갈피갈피에 더 들어있는데, 표제어가 아니어서인지 ‘찾아보기’ 부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단어를 이 책에서 찾아보고 싶어도 표제 단어가 아닌 이상 ‘찾아보기’ 부록을 통해 찾아내기는 어렵다. 만약 이 책에서 그 단어를 찾으려면 이 책 전체를 되작거려야 할 것이다. 책 본문에 추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단어들도 ‘찾아보기’ 부록에 담겨져 있다면 <우리말의 발견>이 보다 더 ‘우리말 사전’으로서도 그 드레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책 <우리말의 발견>은 가치가 있다.

저자 박영수 원장의 오랜 연구와 노력 덕분에, 엄선된 우리말 단어의 수와 잘 정돈된 분류 및 구성방식, 해설 및 용례의 풍부함이 살아있어 우리는 잊혀질 수도 있었던 우리말 단어를 새삼 챙겨 볼 수 있고 우리말 공부를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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