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없는 나라 - 서열화된 대학, 경쟁력 없는 교육, 불행한 사회
이승섭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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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흔히 ‘교육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이라는 자랑거리가 있다.

6.25 한국전쟁으로 건질 것 없이 무너져버린 이 나라는 못 살고 모두가 어려웠으나, 열심히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과 더불어 외국 유학을 떠났던 학생들도 있었다.(p23) 그들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역군이 되었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1971년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 소득이 300달러 미만(p25)이었으나, 2022년 기준으로는 30,000달러 이상이 되어 무려 100배 이상 증가하였다. 6.25 한국전쟁 이후(일인당 국민 소득 67달러)로는 500배 증가한 수치이다!

이런 수치만 놓고 보면, 정말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가 맞는 것 같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교육으로 일어서고자 노력하던 1970년대 말, 영국에서는 영국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가 뜨고 있었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1979년 발매한 음반인 <The Wall>의 타이틀곡이다. ‘벽(Wall)’이라는 주제를 통해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한 인간 부재, 소통 부재와 단절을 표현한 곡이다.


1970~1980년 동시대에, 우리나라는 교육이 자랑거리였으나 영국은 교육문제를 거론하며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 과감히 ‘교육문제’를 꺼내든 책이 있다. 바로 <교육이 없는 나라>이다.


“잘못된 교육 제도와 그로 인해 비롯된 사회 환경 탓으로 우리 사회와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억울하고, 국가와 사회는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p48)


“우리나라에는 ‘교육’은 없고 ‘대학 입시’만 있는 것 같다.”(p59)


이 책 속에 있는 문구들인데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교육현실에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하다. 내 주변에 수험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하고 재수 중인 조카애의 창백한 얼굴이 떠오른다. 아침 7시에 독서실로 나가 공부하다가 재수학원에서 강의 듣고 다시 공부하다가 밤 11시에 귀가한다고 했다.


이 책에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자국 고등학교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가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생의 80.8%가 자신이 경험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사활을 건 전장’이라 답했다.(p107)



지금 내 주변의 아이들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할 것이다.


친구 중에 수학 선생님이 하나 있다. 그 친구 말이 “요새 내신등급 높이기 위해 물불 안 가린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을 병행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하는데, 요즘 시류가 ‘서울대’ 아니면 ‘의대’를 목표로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명문고’를 결정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의대와 서울대 합격생 숫자’이다.(p65)


음... 학생들의 목표가 ‘의대’ 혹은 ‘서울대’여야 하나?

서울대, 의대에 못가는 다른 인생들은 무엇이 목표이기에 그토록 공부를 하는가.



<교육이 없는 나라>의 저자 이승섭 교수는 KAIST에서 학생처장, 입학처장, 글로벌리더십센터장을 역임하면서 교육과 입시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는데, 대학 입시만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우리 교육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사회적 어려움과 국가 경쟁력 상실 등을 짚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이 책 <교육이 없는 나라>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다음의 5개 장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하여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1장.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

2장. 교육이 없는 나라

3장. 미래를 위한 교육, 공부와 연구

4장. 대학의 혁신: 서열화에서 차별화로

5장.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



1~3장에서는 우리나라 근대 교육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 축과 초중고 및 대학의 단계적 수직 축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조사 및 연구자료, 언론보도, 인터뷰, 사례, 경험, 현상 등을 기반으로 하여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보았고, 4장과 5장에서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 및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책 본문 중에서 눈길을 잡는 언론보도기사(p69-71)가 하나 있다. 미국의 경제미디어 <블롬버그> 2022년 11월 14일자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교육의 성공이 이제는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는 기사인데, 비교 대상인 OECD 15개 국가 중 우리나라의 ‘교육 비용 대비 경제 효과’는 꼴찌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중고대 학생의 교육을 위해 교육 비용을 쏟아 부어서 사회에 나온 이들이 나라 경제 발전에 미치는 효과는 겨우 6.5%라는 것이다.

그래프 상에서 일등인 아일랜드는 무려 22.8%인 것에 비하면 격차가 크다.


이 기사에는, 지나친 사교육, 일류 대학에 대한 집착, 그리고 높은 청소년 자살률 등에 대한 언급과 함께, 교육에 일찍 지쳐버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막상 사회에 나가서는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해 OECD 국가 중 인지 능력이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기사에서 ‘지나친 사교육’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사교육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다음 그래프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아일랜드와 비교해보면 무척 흥미롭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상황에서 ‘학교는 학원을 결코 이길 수 없고 그래서 공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교육 기관인 학교’와 ‘입시 준비 기관인 학원’이 ‘입시 준비의 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p83)



이런 ‘입시 준비의 장’이 왜 이토록 우리나라에서 판을 치는 것인가.

바로 이 사회는 학벌, 인맥 등이 얽히고설킨 ‘학벌사회’이고, 대학은 소위 SKY 등으로 통칭되는 ‘서열화된 대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학벌사회와 서열화된 대학 환경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초중고 시절 죽도록 공부에 매달려 서열화된 대학 중에 한 곳을 점수 따라 골라 입학하고, 대학 시절엔 취업 등을 위한 스펙쌓기에 열을 올리다 막상 취업을 해도 전공과 무관하거나 적성에도 맞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이렇듯 서열화된 대학 체계에서는 학생들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교 혹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블롬버그> 2022년 11월 14일자 뉴스에서도, 우리나라 대학 졸업생 절반 이상이 전공과 관련이 없는 직종에 종사하고 기업 종사자의 2/3가 전공과 연관성이 없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내용이 있다.(p70-71)



예를 들어 어릴 적부터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꿈이었던 학생도 입시 공부를 하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의대에 가라는 주위의 성화에 의대로 발길을 돌리고, 입시철에 이루어지는 고액 입시 상담의 핵심은 해당 대학과 학과에 가장 낮은 점수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과 학과 그리고 전공에 무슨 애정이 있고 배우는 즐거움이 있겠는가.(p168-169)


이와 비교될만한 다른 소식으로, 2016년 구글이 만든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경기가 온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p79)

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AI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알파고를 만든 사람은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 구글 딥마인드 CEO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체스 천재였는데 13세에 세계 체스 대회 2등까지 올랐다. 이후 게임 회사에 들어가 게임 개발자로 경험을 쌓고 학교로 돌아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다시 게임 사업을 하면서 런던 대학에서 뇌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p79)


저자는 말한다.

“우리 사회가 기대하고 키우고 싶은 과학 영재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13세에 체스에 빠져 있는 아이, 15세에 게임 개발자가 되는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고 허락하는 부모, 다시 돌아와 컴퓨터공학과 뇌과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대학교.

이들 중에서 그 어느 것 하나 가능할 것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 사회는 ‘성공한 데미스 허사비스’만을 이야기 하고 ‘알파고의 산업적 가치’를 논한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학원에 가서 밤늦게까지 어려운 수학, 과학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데, 체스를 배우거나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p80)인데도 말이다.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이런 글이 있다.

“배를 만들게 하고 싶으면 먼저 바다를 향한 동경심을 갖게 하라.”(p105)


꿈을 지닌 아이가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관심 갖고 지지하며 지원해 줄 수 있는, 우리나라 교육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승섭 교수는 무엇보다도 우선 대학의 서열화가 아닌 “차별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면서, 저자가 생각하는 ‘대학 차별화 제도를 위한 기본 원칙’(p182-183), ‘교육 중심 대학의 발전방안’(p192-193) 등을 비롯한 다양한 대학 차별화 대안을 4장에서 설파하였고, 5장에서 우리나라가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이승섭 교수는 말한다.

“오래전 몇 사람의 연예 기획자가 꿈꾸었던 하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세계 속의 한류는 오늘날 세계 1등 <기생충>과 BTS, 그리고 <오징어 게임>과 함께 세계적인 흐름의 중심이 되었다. 급변하는 오늘날, 우리 교육 당국이 미래의 ‘K-교육’을 향한 용기와 지혜 그리고 시대적 안목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p161)


얼마 전 ‘MZ 노조’로 불리는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동조합이 영업본부 노동자 대표 선거에서 양대 기득권 노총을 제치고 당선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양대 노총이 아닌 노조가 서울교통공사 근로자 대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MZ 노조’는 정치 세력화와 수직적 문화로 대표되는 기존 강성 노조 운영 방식과 파업 투쟁 위주인 운동 방식에 대한 거부감,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구체적인 이익이 아닌 전체 노동자로서 누리는 ‘계급적 권익’을 우선시 하는 기존 노조의 기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탄생한 노조이다. 어떤 문제에 대한 대안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우리나라 교육계에 교육현장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이승섭’ 교수와 같은 교육전문가, 과감하게 비판하고 선동할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와 같은 선구자, 각성하고 행동하는 ‘MZ 노조’와도 같은 행동가가 서서히 등장하여 우리나라 교육체질 개선을 이룰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바다를 향한 동경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뜻대로 공부하고 하고 싶은 바대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제2의 데미스 허사비스’들이 무수히 많아질 수밖에 없는 그런 ‘교육으로 다시 일어서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 믿는다.


이 책 <교육이 없는 나라> 속에 그 ‘믿음’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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