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서랍 - 필사 펜드로잉 시화집
김헌수 지음 / 다시다(다詩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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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쓰는 일은 정겹다.

예전 학창시절에 감수성에 젖어 갑자기 감상적인 글을 쓰거나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낙서 등을 하던 때가 한번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감수성 어린 때가 학창시절이었고, 시인지 뭔지 모를 글을 쓰고 낙서 같은 그림을 끄적였던 적이 있다. 그런 행위는 나의 감수성이 발산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 당시의 기록들이 내 서재에 아직도 남아있어 다시금 꺼내 보면 무척 정겨움이 느껴진다.



빠르게 변해가고 복잡하기만 한 현 시대를 살면서 그런 정겨움과 감수성을 느낀다는 것은, 다시없을 선물이 아닐까 싶다.


여기 그런 선물같은 책이 한 권 있다. 필사 펜드로잉 시화집 [마음의 서랍]이다.

시인 김헌수 님은 2018전북일보신춘문예를 통해 시 <삼례터미널>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시집과 시화집을 내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부 시인 중에 시화집을 출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주로 그림작가와 협업을 한다. 그런데 김헌수 시인의 시화집은 남다르다. “작가가 직접 시를 쓰고, 시화를 그린다는 점이다. 시인이 직접 시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김헌수 님의 시화집에 담긴 시와 시화들은 특히나 더욱 시인의 감수성이 진하게 녹아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는 나에게 시에 담긴 의미들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오고, 시와 그림이 조화롭게 내 머리에 스며들며, 예전 학창시절에 느꼈던 시적 감수성과 정겨움이 내 가슴으로 적셔들어 온다.


그러한 시시구를 [마음의 서랍시화집을 구성하는 총 4개의 서랍 속에서 꺼내어 소개해본다.


<새털구름 같은 마음> (p12)

내 안에 깃든 당신에게 / 몸의 안녕과 마음의 안부를 여쭙니다

봄이 오면 일상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 반짝이는 햇살 아래를 걷고 싶어요

종일토록 새털구름 같은 마음을 / 봄볕에 걸어두고 싶어져요

우울한 시절을 건너가는 요즘, / 짱짱한 햇빛 아래 마음을 널어두고 싶어요

 

축축한 우울한 시절과 새털구름 같은 그리운 마음을 담아, 봄이 오기를,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햇빛 아래서 반짝이고 짱짱해지기를 바라는 듯하다. ‘새털구름그림이 매우 인상적이다.



<뒷모습> (p20)

처음 열어본 서랍에

너의 뒷모습이 혼잣말처럼 일렁인다


짧은 시. 몇 자 되지 않는 시어. 그러나 많은 것이 담겨 있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

잊고 있었던, 혹은 잊기로 했던 를 서랍장 같은 내 마음 속 한 귀퉁이 서랍에 담아 두고는 오래도록 열지 않다가... 문득 노트 갈피에 꽂고 잊었던 사진 하나 떨구어지듯, 혹은 옛일기장의 비밀스러운 어느 날의 일기를 읽듯 오랜만에 를 회상하게 되었다.

너의 얼굴을 모르겠다. ‘뒷모습만 일렁인다. 네가 했던 얘기들도, 함께한 추억도 희미하다.

왠지 시 <서랍에 웅크리고 있는 조금 덜 슬픈 날>(p74)과 시 <곁에 서서 비 맞기>(p206) 이야기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시 <서랍>(p140)과도 비교하며 읽는 것도 한 재미일 듯싶다.



<블루를 좋아하는 그녀> (p40)

유쾌함을 전해주며 살기에도 모자란 삶

블루는 한 발자국 걸어 나가는 진취적인 걸음을 꽂아보는 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 방향으로 나가보아요


<블루를 좋아하는 그녀>의 첫 연에서 블루마법처럼 풀리는 / 감탄을 불러오는 색감이라 정의하고는, ‘블루를 좋아하기를그래서 진취적으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나아가기를 희망하는 노래이다.



<3> (p52)

찬찬히 훔쳐보기 좋은 카페에 앉아 / 내 마음이 덜컥 커지는 시간


3분의 시간. 착각하거나 까먹어서 덜컥 놀란 것일 수도... 긴장되어 두근두근 거릴 수도...

이 시에서 내 마음이 덜컥 커지는 시간이란 시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시 제목처럼 3분이어도 좋고, 그게 굳이 3분이 아니어도 좋다. 그 어떤 시간에서든, 그 어떤 상황에서든 놀랄 때나 긴장될 때 등의 상황을 저처럼 시적 은유로 강렬하게 나타낸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바다를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지> (p98)

꿈을 빚는다는 말을 바다를 건너며 들었어 / 서서히 늙어가는 노을을 뒤로하고

견디지 못한 삶을 놓쳐버린 그 누구의 오늘을 / 파도에 새겼어

드나드는 바람 따라 필연처럼 엉겨 붙는 목숨 / 숱한 다짐은 포말 따라 사라졌어(중략)


이 시를 읽고 읽었다. 내게 이 시는, 먼 미래 홀로 남겨진 어느 한 노신사가 파도 치는 해안가 노을진 어느 바다를 바라보며 울먹일 듯한 목소리로 독백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p128)이라는 시는, ‘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묘사하고 표현하는 스타일의 시이다. 17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를 어찌나 잘 알고 얼마만큼 바라보았던지 매 행마다 그토록 다양하게 에 대해 써내려갈 수 있는가. 이 시를 읽는다면,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내가 잘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 이 시 <그는>처럼 해보는 거다.



<사진첩> (p144)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본다 / 빛바랜 줄이 선명한 사진 / 첫 소풍 기념이 머물러 있는 흔적 / 그냥 붙여두고 바라보았다

세월의 흐름을 빠르게 건너가는 강물을 보았다 / 사무쳐오는 것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 온전히 추억을 더듬는 그 시절을 찾아가는 시간

속절없는 시절 앞에서 / 계절이 바뀌는 꿈을 접어둔다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서재 한 귀퉁이에 자리한 한참을 펼쳐보지 않은 앨범에 눈길이 갔다. 내 지나간 이야기들이 머물러 있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접혀있는 앨범들. 이 책을 읽던 도중 뜬금없이 앨범 중에 예전 성장기 사진첩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내 아이 자라나던 사진들도 찾아보았다.

시 한 편 덕분에, 시인의 말처럼 온전히 추억을 더듬는 그 시절을 찾아가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네> (p190)

엄살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다 / 아픈 척 / 괴로운 척 / 힘든 척

어린 나를 달래주던 / 엄마의 목소리에 기대고픈 / 그런 날이 있다


사회에 나와 힘겨웠던 때가 갑자기 생각났고, 고향에 계신 엄마 아버지가 떠올랐다.



<집으로 가는 저녁이면> (p210)

절망 가운데서도 길을 찾는 일은 / 상처를 보듬는 일

감탄사를 붙이는 일이 많아지게 / 아직 삶은 살 만한 것이라고


노곤한 하루를 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희망어린 시 같다.



일부 시화와 시가 연이은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아, 시를 읽고 시화를 감상하는 재미의 맥을 간간이 끊어 놓는 아쉬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페이지 100~101의 시화가 페이지 116의 시 <‘왈칵이라는>과 호응되고, 페이지 92~93의 시화는 페이지 98의 시<바다를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지>와 연이어지며, 페이지 72~73의 시화가 페이지 52의 시<3>과 매칭되어야 하고, 페이지 196의 시화는 페이지 40의 시 <블루를 좋아하는 그녀>와 공유되어야 한다. 페이지 142 시화와 페이지 210의 시 <집으로 가는 저녁이면>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일종의 다시보기느낌으로 일부 시화를 떨어뜨려 놓았거나, 아니면 시와 시화를 시화집으로 묶으면서 시와 시화 사이에 윤회적 이미지를 더한 한 덩어리 느낌으로 만들려는 의도된 배열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필사 펜드로잉 시화집 [마음의 서랍] 속에는, 한편 한편의 시 49수에 담긴 김헌수 시인의 감수성과 한땀 한땀 시화로 그려낸 김헌수 시인의 정겨움이 담뿍 담겨져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옛추억, 그리움, 학창시절의 감수성, 정겨움 등을 선사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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