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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안중근 -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다
전우용 지음 / 한길사 / 2022년 1월
평점 :
현세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단 한 번이다. 그렇기에 삶의 기로에서 항상 ‘신중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선택지가 ‘삶의 끈’을 부여잡는 것일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병이 들었든, 생활이 곤궁하든 “살려 달라!”고 하곤 한다.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생각하고 방법을 강구하며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그 길을 간다.
그러나 ‘안중근’은 죽음을 택하였다.
누구나 ‘안중근’을 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제에 의한 재판을 당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후 1910년 3월 36일 순국하였다.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고 유묵 휘호들을 남겼다. 현재까지 그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일제의 앞잡이 이토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며 의사(義士)이며 독립운동가이다. 2010년 안중근 서거 100주년을 전후하여 그에 대한 출판물,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문화예술작품이 나왔다.」
아마도 대다수가 이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린 ‘안중근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야 했는가.
무슨 이유로 대한제국사람이 중국 뤼순의 감옥에 갇히고, 일제의 재판을 받아야 했는가.
왜 그는 재판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지 않고, 사형을 받아들였을까.
그에 대한 평가와 연구는 어떠하고, 왜 이토록 안중근에 열광하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 안중근의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를 비롯하여 그에 대한 전기 서적, 후대에 나온 안중근을 평한 도서 등 어느 정도 이상의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든지 안중근에 대한 연구내용을 검색하든지 각종 언론기사와 증인들의 증언을 수집하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이 있기 때문이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은,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포함하여 ‘안중근’에 관한 그 어떤 궁금증에 대해서도 모든 답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저자 전우용 님은 “이 책을 쓰면서 교양서와 학술서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지만, 이도저도 아닌 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그러운 양해를 바란다.”(p10)며 겸손의 말을 하였으나, 이 책은 안중근의 저서인 『안응칠역사』, 『동양평화론』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들의 저술, 언론기사, 사진자료, 연구자료, 역사적 고증 내용이나 증언 등이 저자의 손을 거쳐 수집되고 분석, 분류되어 얻어진 ‘벽돌’들을 가지고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 하겠다. 그만큼 각고의 노력이 2,000매 가까운 원고 뭉치 속에 배어들어, 우리는 그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중근을 원거리, 중거리, 근거리에서 바라볼 수 있고 마치 3차원 입체 모델링이 된 듯 안중근의 겉모습은 물론 속속들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전우용 님은 19세기 말 이 땅에 전래된 ‘근대적 개념어’들에 관해 연구했는데, 그 ‘근대적 개념어’들을 사용하여 시대를 뛰어넘는 선구적 사상을 정리한 사람이 ‘안중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p9)면서, 안중근이 ‘동양평화체제 구상’을 세우는 데 사용한 개념과 그의 사상 하나하나를 세밀히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 책의 제2부를 먼저 썼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과 ‘삶’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기에 안중근의 일대기를 가급적 충실히 정리해보고자 했으며 그 내용이 제1부에 해당하고, 마지막으로 현 시대 안중근이 갖는 상징적 위상과 그렇게 된 이유, 과정에 대한 답을 찾고자 제3부를 덧붙였다고 하였다.(p9~10)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고스란히 이 책의 목차를 이루었다.
- 제1부<안중근의 삶>
- 제2부<안중근의 생각>
- 제3부<안중근에 관한 생각>
이 목차에 이 책의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이 목차로 인하여 – 저자는 “교양서와 학술서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 전기, 평전, 수필, 근대사서 등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교양서와 학술서 간의 경계는 물론, 백과사전의 경계까지 허무는 ‘새로운 형태의 저술 장르 탄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1부<안중근의 삶>은, 말 그대로 안중근의 삶을 조명하였다. 이 부분을 읽기 전에는 제1부가 안중근이 뤼순감옥에서 저술한 자서전 『안응칠역사』를 소개하고 그 내용을 선보이나보다 지레짐작하였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일반인이 한 역사적 인물을 접할 수 있는 흔한 방법은, ‘위인전’과 같은 책을 읽는 것이다. 특히 어릴 때나 학창시절에 주로 읽게 되므로 읽기 편하게 각색되어 있고 위인을 통해 교훈이 될 만한 점을 부각시킨다.
이 책의 제1부는, ‘안중근의 삶’을 각색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가 수집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기술하였는데, 찾아낸 자료가 각색되어 있다면 바로잡기를 하였고, 어떤 상황에 대해 여러 자료(혹은 증언)가 차이가 나면 비교분석한 바를 객관화 시켜서 보여주었다. 즉 저자는 ‘사실’을 뽑아내고 ‘사실’을 보충하거나 ‘사실’대로 바로잡아 안중근의 삶을 보다 극명화시켰다.
예를 들어, 『안응칠역사』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해 놓았고(p99~108) 안중근과 친분이 있는 안창호, 이강, 이범윤, 최재형, 이범진 등 독립운동 동지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기술(p119~120)해 놓은 부분이 있다. 저자는 <안중근 기록의 의문점들>이라는 제목 하에 저격까지의 과정 중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바로잡았고 왜 동지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는지를 합리적으로 보충설명 하고 있다.(p108~126)
또한 저자는 “그(안중근)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은 사사로운 원한이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대표로서 정의를 실천했다. 그에게는 개인의 삶이 곧 민족의 역사이자 인류의 역사였다.”(p31)와 같은 저자가 생각하는 바를 책 곳곳에 실었다. 즉, 일종의 ‘평전’의 성격도 가미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근대사를 전공한 국사학 박사로서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객원교수,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 등을 역임한 저자의 학문적 관점에서 바라본 ‘안중근에 대한 평가’를 곁들여 보는 재미도 있다.
제1부를 통해, 안중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게 된 이유와 그러기까지의 과정을, 중국 땅에서 일제의 재판을 받아야 했던 시대상을, 그가 사형을 받아들인 마음을 소상히 알 수 있다.
제2부<안중근의 생각>은, 안중근이 남긴 글을 통해 그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안중근이 남긴 글은 그리 많지 않다. 뤼순감옥에서 쓴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 연해주 망명 중에 쓴 『해조신문』 기고문, 200여 점에 달하는 휘호가 있다. 그리고 일본 검찰관과 논쟁한 내용도 문서로 남아 있다. 많지 않은 글과 기록으로나마 그가 죽기 전에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그가 자기 목숨을 버려 이루고자 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p223)
“이 책의 제2부를 먼저 썼다.”(p9)라고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제2부를 읽다보면 저자가 이 부분을 쓸 때 상당히 혼신의 힘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자신이 ‘안중근의 사상 기반’에 대해 너무도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안중근)는 정의, 인도, 민족, 평화, 민권, 독립, 만국공법 등 여러 개념어를 벽돌로 사용하여 『동양평화론』이라는 웅장한 건물을 지으려 했다. ... 그는 이 벽돌들을 어디에서 구했을까?”(p224~225)
그리고 저자는 결심하였다.
“그(안중근)는 시대를 앞서는 생각을 키웠고, 그 생각을 확신했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사심을 버렸기에, 그의 생각은 ... 투명한 결정체가 되었다. 그 ‘결정체’를 통해 그의 ‘생각’을 만든 원소(元素)들을 추적해본다.”(p226)
저자는 안중근 집안의 ‘가풍’, ‘부모’의 영향, ‘유교’ 기본 소양, ‘천주교’ 교리 학습, ‘신서적’과 ‘신문’읽기, ‘벗’들과 사귀기 등을 통해 ‘안중근의 사상 기반’을 파악하였고, 안중근이 의거 전날 밤에 지은 한시 「장부가」에 담긴 굳은 신념과 『동양평화론』에 담긴 앞선 생각들, 죽음을 마주하고 쓴 휘호들에 담긴 그의 지식과 이상 등을 살펴보았다.
특히 ‘동양평화론’을 구성하는 개념어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그 유래, 분석 내용 등을 기술한 <동양평화론을 구성한 개념들>이란 부분은, 저자의 ‘근대적 개념어’ 연구 성과와 안중근의 사상을 잘 아울러 기술하여 저자가 이 부분에 꽤 힘을 실은 느낌이 역력하다.
제3부<안중근에 대한 생각>은, 19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직후부터 현 시대까지 무려 113년에 걸쳐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 눈, 입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안중근에 대한 평가와 반응을 다루고 있다. 그런 만큼 제3부는 이 책에서 상당한 지면이 할애되어 있고, 저자가 근현대를 헤집어 총망라하다시피 수집한 수많은 객관적 자료들과 역사적 사료들이 제3부를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도 신기한 느낌을 받았다. 안중근에 대한 반응이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무척 뜨겁고 다양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시기별로 안중근에 대한 예우, 평가가 각 시대상과 결합되어 다사다난했음을 처음 알았고, 일제와 한국 귀족 친일세력들의 부정적 반응도 처음 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안중근의 상징성’은 오래도록 유지 확산되어 그 명성이 드높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안중근은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역사상의 위인’ 앞자리를 점한다. 안중근은 이순신과 더불어 특히 일본을 향해 강력하게 발산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대표 상징이다.”(p395)
“안중근은 북한에서도 민족 영웅이다. 그런 점에서 안중근은 ‘민족 통합의 상징’이다.”(p395)
“안중근은 한국 민족운동과 민족주의의 모범이 되었다. 이토를 처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목숨보다 민족의 자존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다.”(p427~428)
“정권의 통제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상당히 약해졌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 평화와 공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산했다. 국내 정세와 국제관계 모두가 바뀐 상황에서, 반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표상이던 안중근을 ‘평화의 아이콘’으로 재인식하기 시작했다.”(p530)
“안중근은 한국 국민 통합의 상징인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통합의 상징’이다.”(p396)
저자는 안중근을 ‘통합의 상징’이라고 해놓고는, ‘분열을 내포한 통합의 상징’이라고 표현하였다. 그에 대한 설명은 제3부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읽는 내내, 그 내용의 객관성 및 합리성, 이색적인 구성방식, 내용과 구성을 밑 받치고 있는 자료의 딴딴함 등으로 인해 읽는 독자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매력이 느껴졌다.
앞서 ‘새로운 형태의 저술 장르 탄생’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소설이나 영화 등의 작품을 팬들이 재창작한 작품을 일컫는 ‘팬 픽션(Fan Fiction)’과 사실에 근거하여 쓴 작품을 가리키는 ‘논픽션(Nonfiction)’을 조합함으로써, 『민족의 영웅 안중근』과 같은 스타일의 작품 장르를 ‘팬 논픽션(Fan Nonfiction)’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명명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는 안중근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 의거일이란 것을 안다.
1910년 3월 3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일임을 우린 안다.
그리고 올해 2022년은 의거 113주기이자 순국 112주기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짠해 왔다. 100여 년 전의 한 인물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한의 백성’들에게 ‘하나 됨의 촛불’과도 같은 심상(心象)을 오래도록 남겨주고 있다. 분명 안중근의 혼은 현세에 깃들어 있고, 그 살아있는 혼이 지금껏 우리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것이리라.
저자의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 책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통해, 우리는 제대로 안중근을 되새길 수 있고 앞으로도 민족, 애국, 평화, 통합, 그리고 영웅으로 그를 기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