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며 그렇게 전체를 다 넘겨보았을 때, 정말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 사계절의 느낌이 내 시야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다시금 이 책의 앞부분으로 되돌아가서,
막상 읽다보니, 이게 시인 듯 에세이인 듯 다이어리인 듯 글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에 나도 모르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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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같아라
내 마음도 해와 달을 품어주는
깊은 산과 같았으면 좋겠다.(p29)
‘인성’에 관해 귀담아 둘 좋은 서정적 글귀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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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함께하는 모든 걸음이 새로워
매일을 낯선 여행자가 되어버린다.
한겨울에도 지천에 꽃이 흐드러진
이 신기한 세상을 영원히 헤매고 싶다.(p87)
‘사랑’에 관해 낯선 시선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표현인 거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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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마음에도 분갈이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뿌리가 뻗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자신을 가두어두지 마세요.
오랜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당장은 아플지 몰라도
훗날 더 푸른 잎을 틔우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정이에요.
상처의 다발을 비워내고
생기 가득한 꽃이 담길 자리를
마음에 내어주세요.(p135)
‘마음에도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표현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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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아웃
무기력증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어느 날 찾아오곤 한다.
넘쳐흐르던 의욕은 하루아침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퀭하게 풀린 동공과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뚱이만 남은 채.
열정이 쓸고 지나간 자리를
온갖 낙담의 문장들이 빠르게 대신한다.
결국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거라고.
...
나는 이럴 때 손에서 일을 다 놓아버린 채
그저 먹고 굴러다니다 잠을 잔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특약 처방으로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음을 어리럽혔던 생각들과는 멀어지고
오로지 나의 걸음과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
무기력의 시기는 결코 하산의 과정이 아니다.
...
그저 마음의 소강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시간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 강한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
내면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시기일 뿐이다.
...
나는 나의 보폭에 맞추어 잠시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이며
나만의 속도를 되찾으면 그만인 것이다.(p180)
‘삶이 지친다’고 느낄 때,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아니 꼭 그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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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행복은
절대로 숨어있지 않아.
도처에 피어나 있는 것.(p194)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하는 표현이라니!
이 단순한 표현 속에 엄청난 진리를 담는 센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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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를 다 읽고 나니, 옛 기억들이 사진인 듯 그림인 듯이 불쑥불쑥 떠올라 한동안 추억 속에 잠겼더랬다. 뭔가 차분해지고, 왠지 기분 좋아지는 이 느낌은 뭐냐...
이 책은 ‘사랑이 고플 때’ 혹은 ‘사랑의 불씨를 지피고 싶을 때’, 아니면 ‘행복하고 싶을 때’라든가 ‘삶이 무미건조하거나 사람살이에 지쳤을 때’... 슬며시 책 속에 표시해둔 장면 장면을 찾아 그 페이지 속에 깃들여 둔 나의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