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 - 소중한 당신에게 전합니다
히조 지음 / 키효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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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품집(小品集)’ 하나가 다가왔다. 한 손에 잡히는 작은 소품집이지만, 총 240쪽 페이지 마다마다 그림으로 가득한 책이다. <당신이 지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그림작가 히조(heezo) 님의 그림에세이집으로, 그간 다른 베스트셀러 도서의 그림 작가로 활동하다가 이번에 첫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히조 님... 참 두근두근하겠다. 지식을, 감성을, 사랑의 마음을, 그림 그리는 정열을 온 지면에 퍼부어 진득하게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첫 책이 세상에 선보인다는 것.


책 제목에서처럼 ‘누군가가 간다, 혹은 지나간다’는 것에 그 어떤 감흥을 느낄까?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단순히 안면만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무생물인 듯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관계가 서먹하거나 불편한 사람이 간다고 한다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이라면?


난 ‘간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항상 김소월 님의 시 ‘진달래 꽃’이 떠오른다.

“...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이 시는 해석상 ‘형이상학적인 사랑’의 상대방에 대한 표현들이라고 하는데, 난 그냥 형이하학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떠난다고 한다면, 말없이 고이 보내드릴 것이며 내 온 몸에 자란 꽃들을 뜯어 가시는 길에 뿌릴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당신이 지나가신 자리에 꽃이 핀다는 것.

그 꽃은 당신에게서 도래한 꽃일까.

내 진한 마음이 전사되어 나타난 꽃일까.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기억과 느낌이 진하게 진하게 배어있는 꽃일까.


<당신이 지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의 책 표지만 보았을 뿐인데, 온갖 생각이 나고 상상과 느낌들이 퐁퐁 샘솟는다.


이 책을 한번 후루룩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매 페이지마다 이 있다.

이 그림들만 훑어봤을 뿐인데, 한동안 잠잠하기만 했던 내 사랑의 호수에 파동 하나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면서 가슴 속에 품게 되는 ‘사랑’과 ‘삶’을 사계절에 빗대어 구성하였다.


마치 비발디의 「사계」의 ‘그림판’이라고나 할까?


전체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장. 봄의 마음으로 - “사랑을 품어야 하는 이유”

2장. 초록을 걷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3장. 가을밤의 호숫가 - “당신은 그저 당신 그대로이다”

4장.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 “나의 삶을 사랑할 때”


페이지를 넘기며  그렇게 전체를 다 넘겨보았을 때, 정말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한 사계절의 느낌이 내 시야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리고 다시금 이 책의 앞부분으로 되돌아가서, 

막상 읽다보니, 이게 시인 듯 에세이인 듯 다이어리인 듯 글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글귀에 나도 모르게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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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같아라


내 마음도 해와 달을 품어주는

깊은 산과 같았으면 좋겠다.(p29)


‘인성’에 관해 귀담아 둘 좋은 서정적 글귀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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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함께하는 모든 걸음이 새로워

매일을 낯선 여행자가 되어버린다.

한겨울에도 지천에 꽃이 흐드러진

이 신기한 세상을 영원히 헤매고 싶다.(p87)


‘사랑’에 관해 낯선 시선으로 재해석한 새로운 표현인 거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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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마음에도 분갈이가 필요합니다.

더 이상 뿌리가 뻗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자신을 가두어두지 마세요.

오랜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당장은 아플지 몰라도

훗날 더 푸른 잎을 틔우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정이에요.

상처의 다발을 비워내고

생기 가득한 꽃이 담길 자리를

마음에 내어주세요.(p135)


‘마음에도 분갈이가 필요하다’는 표현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진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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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아웃


무기력증은 어떠한 전조도 없이 어느 날 찾아오곤 한다.

넘쳐흐르던 의욕은 하루아침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퀭하게 풀린 동공과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뚱이만 남은 채.

열정이 쓸고 지나간 자리를

온갖 낙담의 문장들이 빠르게 대신한다.

결국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인 거라고.

...

나는 이럴 때 손에서 일을 다 놓아버린 채

그저 먹고 굴러다니다 잠을 잔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면 특약 처방으로 산을 올랐다.

산을 오르다 보면 마음을 어리럽혔던 생각들과는 멀어지고

오로지 나의 걸음과 호흡에 집중하게 된다.

...

무기력의 시기는 결코 하산의 과정이 아니다.

...

그저 마음의 소강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할 시간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 강한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

내면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시기일 뿐이다.

...

나는 나의 보폭에 맞추어 잠시 숨을 고르고 목을 축이며

나만의 속도를 되찾으면 그만인 것이다.(p180)


‘삶이 지친다’고 느낄 때,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아니 꼭 그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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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행복은

절대로 숨어있지 않아.

도처에 피어나 있는 것.(p194)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하는 표현이라니! 

이 단순한 표현 속에 엄청난 진리를 담는 센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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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난 자리에 꽃이 피었다>를 다 읽고 나니, 옛 기억들이 사진인 듯 그림인 듯이 불쑥불쑥 떠올라 한동안 추억 속에 잠겼더랬다. 뭔가 차분해지고, 왠지 기분 좋아지는 이 느낌은 뭐냐...


이 책은 ‘사랑이 고플 때’ 혹은 ‘사랑의 불씨를 지피고 싶을 때’, 아니면 ‘행복하고 싶을 때’라든가 ‘삶이 무미건조하거나 사람살이에 지쳤을 때’... 슬며시 책 속에 표시해둔 장면 장면을 찾아 그 페이지 속에 깃들여 둔 나의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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