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회 선생님의 역사가 지리네요 - 10대를 위한 어마어마한 역사×지리 수업 우리학교 사회 읽는 시간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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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별난 사회 선생님의 역사가 지리네요>는 대중의 관심을 이끌만한 ‘관심 증폭 요인’이 몇 가지 있다.


첫째,책 제목을 참 지리게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사회 선생님이 자기 전공분야인 사회 이외에 역사에 관한 책을 내게 되어 ‘별난 사회 선생님’이고, 뜻밖에도 비전공분야인 역사 내용이 참신하여 ‘역사가 지리네요’라고 책 제목을 했나보군.” 쯤으로 착각했다.

하~! 그런데 알고 보니, 책의 저자가 사회 선생님인데 원래 ‘별난’ 것이고, 책 내용이 ‘역사’와 ‘지리’를 콜라보하여 콘텐츠화 한 것이었다. 지리게 잘 지은 책 제목 때문에, 실제로 혹했다.


둘째,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되는 강렬한 색상 선택과 유치빤스 디자인이다.

전체적으로 연지색 또는 산호색의 붉은 색감과 연두색 또는 풀색의 초록 색감이 보색 대비를 이루어 강렬하면서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다소 예스러운 지도 이미지를 바탕에 깔고, 영화 「품행제로」에나 나옴직 한 별나 보이는 사람 일러스트를 대표 이미지로 정중앙에 콱 박아 넣은 강렬 선명 ‘유치빤스’한 책표지 디자인이라니. 이 ‘과감한 시도’는, 실제로 눈길을 끈다.


셋째, 뜯어보면 뭐가 뭔지 복잡한데 언뜻 한번 보면 그냥 단박에 이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요상한 마력이 있다.

이 책에는 다소 복잡한 마케팅 쟁점들이 있다. 자칭 ‘대한민국 3대 천재’라 일컫는 별난 저자에 대한 포커스, 10대를 겨냥했다지만 왠지 재미없을 것 같은 사회과학서, 실제로는 10대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역사 및 지리 분야가 주 내용이라는 아이러니.

실제로 책의 저자 권재원은 10대들이 외울 것도 많은데 암기하기 힘든 역사, 지리 과목을 공부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이 역사적 사건에 지리적 사실을 보태면 얼마나 입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가 되살아나는지 경험할 수 있도록 그 맛을 나누고 싶었다’(p7)라고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를 서문에서 밝히고 한다. 즉 이 책의 콘셉트는 ‘역사, 지리가 어려운 10대들을 위해 호기심 장착시키기 위해 풀어낸 사회과학서적’이긴 한데...

이 어렵고 복잡한 쟁점으로 가득하고, 자칫 타깃에게 외면당할 수 있는 재미없고 부담되는 내용으로 가득한 이 책을 어떻게 마케팅적으로 풀어내겠나?

마케팅계의 할아버지, 광고홍보계의 당숙, 디자인계의 사돈에 팔촌이 와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한 번 눈스캔만으로도 일목요연하게 이해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어버린 담당자분들의 ‘능력’이 대단하다.

내가 이 책을 분석한 결과, 이 책은 상당히 방대한 조사와 분석, 치밀한 기획과 철저하면서도 과감한 시도 등 이성감성스펙트럼(Spectrum between Sense and Sensibility)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이성과 감성 양극단의 성향을 최대치로 끄집어내어 만들어 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난 요즘 아이들이 사회과학 특히 역사와 지리 분야를 공부하기 어려워하는지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해도 된다. 워낙에 외울 게 많으니까.


예전 내 학창시절 국사 선생님께서 ‘국사책과 국사공부’에 대해 해주신 말씀이 있다.

“이거 교과서 흉내 내느라 책 내용을 이따위로 쓴 것뿐이지, 실제로는 그냥 옛이야기책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시간 좀 들여서 교과서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만의 국사 이야기를 엮어 본다면 꽤 흥미로울 거야.”

그 땐 요즘처럼 보충서, 과외학습서, 사회과학 관련 상식책 등이 많이 없었기에 더욱 공부할 맛이 나질 않았다. 오로지 국사 교과서와 역사과부도 뿐. 나는 선생님 말씀대로 역사과부도에 나오는 시대별 지도 위에 교과서 내용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고 어느 시점이 되자 전반적인 역사적 이야기 흐름이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 이후로 역사 공부가 재밌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별난 사회 선생님의 역사가 지리네요>를 읽다보니, 예전 내 나름대로 엮어 낸 이야기가 빈약했었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예전 교과서 내용이 ‘교과서 티’를 내고자 딱딱하게 서술되어 있고, 지리적 자료가 빈약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왜 고려의 수도는 개경이 되었나?”라는 질문에, 예전엔 그냥 “왕건의 호족 근거지가 개경이었기 때문”이라고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언급한 답변은 좀 다르다.

‘겹겹이 둘러싸인 넓은 분지에 개경이 자리 잡고, 다시 그 안에 작은 분지가 있는데 바로 그곳에 고려 왕궁을 세운 것이다. 큰 강 세 개(임진강, 예성강, 한강)의 하류 지역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진 가운데, 딱 개성 일대만 산으로 겹겹이 싸여 있다.(p20)

즉, 명당이라는 것이다.

‘개경을 거점으로 하면 힘이 있을 때는 강과 바다를 통한 한반도의 여러 지역을 영향력 아래 둘 수 있고, 힘이 빠지면 물러나서 강화도와 교동도를 성벽으로 삼고 물길을 틀어막아 지키고,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에서 굳게 지킬 수 있다.’(p24)

즉, 개경의 지리적 조건은 놀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디에 자리를 잡느냐에 따라 이후 나타나게 될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만큼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다.’(p27)


그리고 저자는 ‘지리라는 필터를 끼우고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강조한다.

‘지리 혹은 지리라는 필터를 끼우고 바라보면 똑같은 역사적 사실이라도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관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p28)

이 책엔 여러 가지 ‘지리라는 필터를 끼우고 역사를 바라본’ 스토리들이 많다. 나는 그 중에서 「제 7장 바다가 바꾼 육지의 운명-첫번째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웠다. ‘9세기 경 바이킹의 활약’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19세기 구한말 조선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다는 아주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였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거주하던 바이킹은 배를 타고 유럽 전역을 상대로 약탈하여 8~11세기 사이 중세 유럽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일부 바이킹은 살기 좋은 땅을 찾으면 정착하고 도시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9세기 경 세운 도시 ‘키예프’[현재 불리는 명칭은 우크라이나어로 ‘키이우’, 이곳은 우크라이나 수도임] 이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바이킹과 슬라브족이 섞인 ‘루스족’[Rus. 오늘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의 기원이 된 민족]이 탄생했고 이들 족속의 일부가 훗날 키예프공국, 모스크바대공국을 거쳐 러시아제국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거대한 영토를 자랑하는 나라인데, 해외로 나아갈 수 있는 바다가 없고 특히 얼지 않는 항구가 없는 문제가 있었다. 북해는 얼어붙은 빙해이고, 발트해와 흑해를 통한 바닷길은 외세로 인해 봉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극동 지역으로 관심을 돌려 기회를 엿보다가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을 기회로 1860년에 연해주 일대를 획득하여 태평양으로 열린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대양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만주횡단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1898년에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가 철도로 연결되었다.

이 당시 세계를 분할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에 비상이 걸렸고, 이때부터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로 부상하였다. 그래서 1902년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기에 이르렀고, 일본은 영국의 대리인 역할을 하였다. 그 당시 조선은 아관파천을 통해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마침내 영국의 후원을 등에 업은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하면서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났고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일본은 강대국들의 묵인 아래 노골적인 조선 침략을 하였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은 패망에 이르렀다.(p153~169 대강 요약)


저자는 ‘지리라는 필터를 끼우고 바라보는 것’, 즉 지리적 관점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였다.

“지리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훨씬 풍부하고 흥미로운 관점이 생긴다.”(p249)

그렇다.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시대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흥미진진하고,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내용들이 역사적 통찰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접점들로 연결이 되다니 가히 혁명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저자는 이 책의 최대 타깃인 10대 청소년들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

“청소년이 스스로 지리의 눈을 뜨고 새로운 눈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랄뿐이다.”(p249)

내가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던 시대에 비하면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만큼 교과서 서술 내용은 좋아졌을 것이며 자료들은 더욱 풍부해졌다. 그러므로 요즘 학생들이 ‘지리의 눈을 뜨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시간을 들인다면「어마어마한 통찰력을 지닌 역사×지리 스토리텔러」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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