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창조와 진화에 대한 답을 찾았다
노휘성 지음 / 두란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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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내 앞의 자녀에게,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에게, 남아 있는 믿음의 가정들에게 성경에 근거해서 창조부터 차근차근 가르치자. 믿는 것(성경)에 아는 것(지식)을 통합시키게 하자. ... 교육을 더 이상 세상에만 맡기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교회와 가정이 책임지자. 복음으로 회복된 교회만이 생명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다음세대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야 파멸적인 이론들에 밀려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p 247-248]


저자의 마지막 에필로그가 마음을 뒤흔든다. 책 마지막에 본인이 교회에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도사님에게 진화론을 배우는 중학생들을 위해 창조론을 교육하자고 했을 때, "저는 신학교에서 제가 매우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창조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네 가지만 있다고 배웠습니다."라고 하며 하나의 관점만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답변하는 내용을 읽으며, 내 안에 화가 치밀었다. 신학교는 무엇이며, 신학생은? 그리고 그 교수님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분들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냥 화만 나서는 그들의 이론과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알려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위상이 마치 떨어진 것만 같았다. 나부터라도 제대로 알아 정신 차리고 자녀들을 똑바로 가르쳐야겠다


저자의 마지막 에필로그가 마음을 뒤흔든다. 책 마지막에 본인이 교회에서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도사님에게 진화론을 배우는 중학생들을 위해 창조론을 교육하자고 했을 때, "저는 신학교에서 제가 매우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창조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네 가지만 있다고 배웠습니다."라고 하며 하나의 관점만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답변하는 내용을 읽으며, 내 안에 화가 치밀었다. 신학교는 무엇이며, 신학생은? 그리고 그 교수님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분들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냥 화만 나서는 그들의 이론과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정확히 알아야 정확히 알려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위상이 마치 떨어진 것만 같았다. 나부터라도 제대로 알아 정신 차리고 자녀들을 똑바로 가르쳐야겠다


저자 외침이 가슴을 울린다. 거룩한 군대인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무장된다면 얼마나 능력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바닥인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 결국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너무 방치했다. 가르쳐 지키도록 하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단순히 창조/진화만 다룰 줄 알았는데, 진화로 시작된 사상까지도 다루고 있다. 후기 현대사회의 새로운 막시즘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히 창조와 진화에 대한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지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상까지도 대립하고 있다.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 '성해방'도 진화 사상과 연결된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우리가 어떻게 배워서 생각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론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교육에 목숨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유태인을 죄책감 없이 학살했던 히틀러의 나치즘도 진화주의적 사상이 영향을 받았다. 깨어있어야겠다고 강하게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섭리는 가히 놀랍다. 한 치의 오차도 없기에 그렇다. 저자는 지구의 온도, 질량, 크기, 자기장, 오존층, 공기 등 단 하나라도 적절치 않았다면 인간이 살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태양의 크기와 거리까지도...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방대하다. 우연이라 믿고 싶은 믿음일 뿐이다.


크리스천 과학자, 크리스천 교육가, 크리스천 전문가라 할지라도, 안에 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세상과 다를 없다는 결론이다. 책임을 묻는 동시에 나부터 성경의 말씀안에서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면서 프롤로그를 본다. 창조를 믿는다는 엄청난 일이다. 창조가 일어났다는 것과 창조한 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세상을 가진 기분이다. (실제 구원이다.) 창조를 믿고 있다는 자체가 나는 '은혜'. 창세기 1 1 자체로 믿어지는 값진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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