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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늑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은 전쟁에서 졌고,
소년과 소녀는 여행을 시작했다.
'한번 쯤 타보고 싶었던' 밤기차에는
별이 빛나는 낭만이 아닌
전쟁이 남긴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들이 있을 뿐이었다.
가난과 배고픔, 죽음과 맞닿은 사람들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여행은 계속된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환상인지 모호하지만
두 세계 모두 정글이긴 마찬가지였다.
정글을 살아 나가기 위해서 소년과 소녀는 '아켈라'와 '모글리'가 된다.

패전국이라는 정글을 살아가는 늑대의 후예, '아켈라'와 그의 인간친구 '모글리'.
전쟁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남의 것을 뺏기 위해 눈을 부라리고,
내것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때론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야 벗어날 수 있는 배 안에 갇혀 있다.
동반 자살이 빈번하고, 살육이 판을 치는 정금.
여행 내내 이들과 살을 부딪히며 생활하는 아켈라와 모글리는
스스로 정글의 법칙을 깨닫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길들어간다.
영원히 둘이 함께이기를 바라면서.

일본에 전쟁의 상흔이 아프게 남아있을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일본은 언제나 가해자였고, 우린 피해자였기 때문에
저들에게도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가난한,
신이 내린 원죄같은 인생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리란 생각에 가 닿지 못했다.
아켈라와 모글리는 내가 접근하지 못한 범주에서 살고 있었다.
'아켈라'와 '모글리'에서 '레미'와 '카피'로 옮아갈 때까지,
그들은 암울한 상황과 맞물려 살아가는 인생에 다름아니었다.

다시 '미쓰오'와 '유키코'로 돌아오고,
유키코는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의 보호 속으로 돌아간다.
가죽구두와 교복이 기다리고 있는 세계가 유키코의 삶이다.
미쓰오는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 미쓰오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름이었고,
사십년이나 지나 떠올리는 기행은 이미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호하다.
미쓰오가 사라지면서 '웃는 늑대'는 멸종했다.
미쓰오는 작가가 말하는 늑대, 즉 일본이 잃어버린 '엄격하면서도 고결한 세계'였기 때문이다.

전쟁이 한창일 당시 아버지와 함께 묘지에서 살던 미쓰오는
전쟁이 끝난 후 현실로 걸어들어간다. 
모글리를 만나서 정글을 가르친다.
그리고 난 후 모글리를 그의 고향, 인간세계에 밀어넣고는 사라진다.
사라지는 순간의 모글리가 애처롭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늑대의 끝에는 그 장엄한 울음소리가 함께 했을까?

소년과 소녀의 여행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신문기사가 펼쳐지고,
그리고 각기 다른 사건과 사고를 서술하는,
다소 헛갈리는 소설의 문법과 인칭은
몇 번이고 앞장을 들춰보게 하였다.
이런 소설이 또 있을까.
마치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갖다 붙인
콜라주를 읽어내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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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의 매그놀리아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
안도 미키에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밝은 기운과 어두운 기운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시간, '해질녘'.

발음하는 것만으로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매그놀리아'.
그리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얌전히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세상은 뭘로 만들어졌어?
(중략)
꽃이나 고양이처럼 만질 수 있거나 별이나 공기처럼 그려볼 수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질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중략)
그 세상이 나타나는 것은 언제나 저녁놀이 질 무렵이다.
빛과 어둠이 뒤섞이는 시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바로 그 시간.』
세상에 대해 이렇게 성숙한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소녀였다.

중학생이 된 지 한 달.
청소년기로 분류되는 이 나이를 우리는 보통 ‘어른과 어린이의 중간 시기’라고 부른다.
중간 시기. 주체를 잃어버린,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단계로 존재하는 듯한 이 어정쩡한 시간에 도코가 존재한다.
도코는 이 중간 시기를 자신만의 독특함으로 가득 채운 새로운 시간으로 변모시킨다.
환상, 오직 도코에게만 보이는 환상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도코의 환상은 주변의 모든 관계에 존재한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저 ‘외숙모가 집에서 연 서예교실에 다니는 아이’인 미호, 못돼 먹은 이웃의 문어빵을 닮은 아이, 좋아하는 남자친구, 중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 린, 오랜 친구 키짱, 도코에게 환상을 심어준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도코의 환상은 관계에서 연유하여 그것을 한층 숙하게 만든다. 환상을 통해 세상의 진실에 한발씩 다가가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도코는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고양이, 목련 나무, 마시멜로, 용궁, 눈, 마블 쿠키.
소녀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소재에 더해진 해질녘의 환상 세계.
순수한 소녀의 세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창조한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아, 도코, 어른이 되어서도 환상을 볼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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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연인들의 초상
엘렌 보나푸 뮈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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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랑했던 두 세계, 벨랑주의 판화작품과 남자 빅토르.

양쪽 모두를 너무나 사랑했던 오르탕스의 운명은 어쩌면 예견된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빠져들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으로 인간을 휘어잡는 '예술'과 '사랑' 아니던가!

 

이제껏 유채, 수채, 소묘가 아닌 회화를 알지 못했다.

판화에 무지한 독자로써 오르탕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판화에 대한 설명에는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오르탕스는 언제나 판화와 함께였다.

판화의 표현기법을 읽어내고 작품의 역사를 탐구했으며 벨랑주 판화를 낙찰받기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과 얘기했다. 어쩌면 오르탕스는 판화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판화가 당연했던 것처럼 빅토르도 당연한 사랑이었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빅토르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건 안 하건...오르탕스는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를 사랑했고 몸과 마음을 내주었다. 벨랑주의 판화 속 연인의 운명을 그대로 밟아가는 오르탕스의 현실은 예술에 대한 집착과 남성에게 갈구하는 사랑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판화 속 연인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혀낼수록 오르탕스의 운명도 거부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판화를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암투. 판화라는 낯선 예술 세계에 대한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설명, 현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오르탕스의 삶 속에 끼어든 400년 전 판화 속 연인의 사랑. 화려한 명성이 빛나는 드루오 경매까지...액자구성, 추리 기법, 뛰어난 심리묘사, 예술과 그 역사적 해석까지...이 모든 것을 하나의 소설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가의 실력에 누구든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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