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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02 - 멋진 신세계, 2021.1.2.3
문지혁 외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에픽’은 ‘기존 문학 잡지의 근엄성을 탈피해 논픽션과 픽션 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간 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젊은 문학의 장을 마련’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간 문예지로 작년 10월에 창간호가 발간되었다.
내가 읽어본 2호의 주제는 ‘멋진 신세계’.
총 3개의 파트로 되어있다.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파트인 파트 1에는 구술생애사 최현숙 작가의 ‘두 사람의 내력 만나기’, 정명섭 소설가의 ‘나는 왜 밀덕이 되었나?’, 그리고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의 ‘응급실의 노동자들’이 실려 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진료를 변행하며 다양한 동료들의 시선을 모은 남궁인 작가님의 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자기 자신만 생각하죠. 응급 상황이니까 더더욱 나만 먼저 보게 되고, 내가 가장 중환자고, 매번 자기가 우선이고요. 누군가를 봐주고 배려할 상황이 아닌거죠. 이해는 가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는 걸 보고 있으면 화가 나요.’ (간호사)
‘내가 꼴랑 이 진료를 받고 이 돈을 내야 하냐고 묻는 거죠. 너희들이 해준 게 이게 아닌데? 나한테 정말 이 돈을 내라고? 이렇게요. 금액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분노하시는 것 같아요. 그 표현이 아주 다양하죠. 들은 욕 종류가 정말 셀 수 없어요. 회의감이 느껴질 때도 많아요.’ (응급실 야간 원무과)
‘응급실을 쓸고 닦고 청소하는 일을 해요. 치울 곳이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힘들어서 응급실에 사람 뽑기가 가장 어렵죠. 청소해야 되는 화장실만 다섯개가 되는데, 전부 아픈 사람들이 쓰니까 조금만 둬도 더러워져요.’ (응급실 청소 업무)
응급실에서 일하는 건 생각만 해도 힘들것 같다.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든, 아주 힘든 고단한 일인것 같다. 이렇게 힘든 일에도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파트 2에서는 편집자 김화진, 평론가 이지용, 임지훈이 픽션과 논픽션 책을 엮어 소개한 1+1 리뷰와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유명한 김대주의 버추얼 에세이 ‘if i’가 담겨 있다.
픽션으로 이루어진 파트 3에서는 김솔, 김홍, 송신 ,이주란, 그리고 황정은 작가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내가 제일 인상깊게 읽은 소설은 황정은 작가의‘기담’
주인공 선인과 강희는 431번지 빌라에 살고 있다. 그 전에는 세입자로 오래 살았는데 2-3년 주기로 자기들이 사는 집을 남에게 보여주고, 남이 사는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집을 샀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25년 기한으로 대출도 받았다. 하지만 빌라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 공용 계단에서 사람이 다쳤으니 미끄럼방지 공사를 해야 한다는 선인의 말에 입주자들은 관심이 없다. 겨울이 되어 위층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을때도 근본적인 조치가 아닌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최소한의 조치를 치해줬다. 봄이 되어 공용 현관에 달린 자동문이 고장났을 때 다들 고칠 생각은 없이 지하에서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문을 이용할 뿐이었다. 그 사이 다시 봄이 왔다. 그리고 강희와 선인은 그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이 소설을 읽으니 이사할 때 생각도 많이 나고 내가 겪었던 이웃과의 마찰도 생각나서 제일 몰입해서 읽었던 소설같다.
너무 재미있다.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고 내용이나 글이 무겁지 않아서 편하게 잘 읽을 수 있다. 표지도 너무 예쁘고 제목도 마음에 든다. 3호가 나올 4월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