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꽃 - Grandmother's Flow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주 힘들게 살다보면 정작 자신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몸은 몸대로 고달프고, 마음은 상처투성이로 헤어질때로 헤어져서, 아픔이 아픔인지도 모르고 슬픔이 슬픔인지도 모르며 살아가게 된다. 그럴때 누군가가 '힘들었지?' 라고 물어오면 무의식속에 눌러두었던 온갖 감정들이 봇물터지듯 밀려온다. 아닌 척 했지만 너무도 간절히 누군가가 나의 아픔을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런 상황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가 보내 오는 위로의 제스쳐는 그렇게 큰 치유의 힘을 가진다.

 한국전쟁을 겪어 온 이 땅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크건 작건 전쟁의 상흔을 가진채로 살아야만 했다. 소중한 누군가가 사지로 내몰렸고, 남겨진 누군가는 신음했으며, 모두가 쉬쉬하며 아픔과 슬픔을 억누르는 상황속에서 마음 속 상처는 곪아가기만 했다. 그 때는 다 그렇게 살아서 특별할것도 없는 비극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치유되기 보다는 도장처럼 깊이 박혀만 들어갔다. 아픈 기억은 묻어두려할수록 떨쳐버릴 수 없는 짐이었고, 돌이키기 싫은 과거는 교묘한 방식으로 되풀이되곤 했다.

 이 영화 <할매꽃>은 그러한 한국현대사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었던 한 가족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 삼촌, 그리고 영화의 중심축이 되는 외할머니를 향해 카메라의 시선을 던진다. 그것은 가족의 이야기이면서도 역사의 단편이고, 개인의 환부이면서 사회의 치부이기도 하다. 우리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과 이모들은 대체 어떤 시간들을 지나왔던걸까.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정말로 괜찮은 걸까. 영화는 그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끔찍했던 시간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 같은 상처라도 가까운이에게 당한 상처라 그 골은 더 깊었다. 감독의 외할머니는 오빠를 잃었고, 외할머니의 동생은 정신질환에 시달렸다. 외할머니의 남편은 '살아남은자의 고통' 을 견디다 못해 술에 빠져 살아야 했고, 그렇게 남겨진 외할머니는 평생을 마음에 한을 안고 사셔야만 했다. 역사속에 휘말린 개인의 삶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했고, 경계를 늦추지 못했다. 그 끔찍한 세월들이 그 세대가 짊어져야 했던 애환이었다.

 모두가 너무 힘들었다. 한번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찢어질듯한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어요' 라거나 '고생 많으셨죠?' 라고 따뜻하게 물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침묵했고 우리 또한 알려하지 않았다. 혹자는 말한다.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춰서 무엇하냐고, 오히려 그게 더 상처를 드러내는 일 아니냐고. 글쎄,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건, 한국전쟁을 겪어온 우리의 윗 세대들은 힘들게 살아왔고 그 고통의 시간들에 대해 누군가는 이해하고 위로를 건넬 필요가 있다는거다.
 

 감독은 그의 외할머니가 숨을 거두시려하는 순간에 담담한 목소리로 '고생많으셨죠, 다음 생에서는 편안히 사세요' 라고 말한다. 손자의 목소리를 듣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이해받고 싶으셨을까, 얼마나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를 듣고 싶으셨을까. 별 거 아닌 한 마디인데, 그걸 누군가 해 주지 못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을 답답하게 지내셔야만 했을까. 가슴이 너무도 뻐근해져 왔다.

 모두가 힘들다, 괴롭다 외쳐대는 이 사회에서 그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도 못하고 살아 온 수많은 사람들... 그 쓰라린 현대사의 비극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개개인의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울렸다. 이 이야기는 감독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였고, 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나의 할머니, 나의 삼촌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제는 인내의 시간을 견뎌 온 그들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조금은 그 짐을 덜어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어려울 건 없다. '정말 힘든 시간을 견뎌오셨네요..' 진심이 담긴 위로의 그 한 마디면 된다. 그 작지만 마음을 울리는 고백이 이 영화를 보고 난 관객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 제 블로그 byron.tistory.com에도 게재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알라딘 이벤트를 통해 본 영화이기에 알라딘에도 글을 중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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