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원 - 밥만 먹여 돌려보내는 엉터리 의원 점선면 시리즈 3
안담.한유리.곽예인 지음 / 위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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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기돌봄이란 말을 보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기돌봄을 잘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두기를 실패한 삶을 살고있어서... 제 몸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해도 한때에 지나지 않고요. 자기 몸을 돌보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스스로 제공하고 싶은 마음과 노력을 놓치지 않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런 걸 몰라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처럼. - P26

예를 들어 경계성 인격장애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BPD)의 경우, 저는 그 증상이 왔을 때 모두의 돌봄을 쳐냈어요. ‘어차피 이렇게 돌봐주다가 곧 나를 버리고 떠날 거면서 왜 돌봄을 제공하려고 드는 거지?‘ 하는 불신과 원망이 있었어요. 근데 최근에 BPD가 왔을 때는 ‘왜 사람들이 날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웃음)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했어"라고 몰아붙이고, 그러면 상대는 "네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저는 또 "그게 변명이야?" 하면서 분노를 하고. (웃음)

연대라는 건 아름답지 않은 거구나, 엄청 싸우면서 동행하는 거구나… - P39

모든 직업에 윤리관이 필요하지만, 활동가들은 유독 윤리적인 이상과 실천의 괴리에 더 많이 좌절하는 거 같아요. 실천이 어려운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잖아요.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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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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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언니도 내가 걱정할까봐 자기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게 그때 우리가 솔직하지 않았던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아.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답신- - P150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가 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그때 내 마음에서 나는 옳고 언니는 그르고, 나는 맞고 언니는 틀리고, 나는 알고 언니는 모르고, 나는 할 수 있고 언니는 할 수없고, 나는 용감하고 언니는 비겁하고, 나는 독립적이고 언니는 의존적이고, 나는 떳떳하고 언니는 비굴하고, 나는 배려하고 언니는 이기적이고, 나는 언니를 지켰고 언니는 나를 버렸지. 모든 것이 분명해서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믿었어.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중 어느 하나도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아. -답신-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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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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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은 우리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난 해진이네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길 괴롭히면서까지 해야 할일 같은 건 없는 것 같아. -몫- - P68

그런데도 몇몇 분명한 순간들이 있었다. 모두가 받은 동료의 청첩장을 받지 못했을 때, 탕비실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질 때, 아주 사소한 주제라도 그녀와는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기미가 느껴질 때, 어떤 말도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어서 버겁고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감돌 때, 우리의 세계에 온전히 소속될 수 없는 당신을 나는 안타깝게 여기지만 도울 생각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그녀는 그런 상황에 체념한 채로, 그 모든 일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고통스러웠지만 살아졌고, 그녀는 살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살아진다. 그러다보면 사라진다. 고통이, 견디는 시간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이상 겉돌지 않았고, 그들의 세계에 나름대로 진입했다. 모든 건 변하고 사람들은 변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후에도 그녀는 잠들지 못하거나 질이 낮은 잠을 끊어 자며 아침을 맞았다. 가끔씩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폭음을 하고는 환한 대낮의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웃으며 대화했다. -일 년- - P108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웃으며 사무실을 나왔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일 년- - P115

괜찮아요. 제가 오늘 피곤해서...…
다희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서운하다.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나, 상처받았다. 예전의 다희라면 그렇게 말했으리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애정이 상처로 돌아올 때 사람은 상대에게 따져 묻곤 하니까. 그러나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걸어 잠근다. 다희에게 그녀는 더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희와 함께 출근하던 마지막 한 달 동안, 둘은 그날 일을 입에올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대화했다. 그것이그녀는 슬펐는데, 다희도 그런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 년-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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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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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용산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그녀는 이어서그렇게 썼다. 페이퍼백 영어 소설들을 읽으며 그녀는 용산으로부터도, 자신의 언어로부터도 멀어질 수 있었다.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P19

그녀는 복제 인간인 캐시가 죽음을 앞두고 계속해서 헤일셤에서의 일을 기억하려 하는 것이 아름다웠다고 답했다. 캐시는 헤일셤을 기억하는 행동으로 자신의 친구 루스와 토미의 영혼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고. 자기 자신의 영혼조차도. 헤일셤은 그러니까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캐시 자신일 수도, 루스일 수도, 토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P33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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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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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P69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편지를 본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 없잖아."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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