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마리나 칸타쿠지노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애하는 젊은이여, 그대의 가슴속에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 참을성을 보이고, 잠긴 방이나 낯선 이방의 언어로 씌어진 책을 사랑하는 것처럼 ‘문제 자체‘를 사랑하려고 애쓰십시오. 답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답은 그대가 그에 따라 살아 낼 수 없기에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삶에 품는 것입니다. 지금 그 문제를 삶에 품으십시오. 그러면 먼 미래 어느 날에, 서서히, 알지 못하는 사이 그 답을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283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물론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이 폭력에 인간의 얼굴을 부여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시도의 진정한 목적은 그에 따르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폭력이 남긴 유산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 P288

이런 의미에서 용서는 사람들이 한 행동을 변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허약하고 타락하기 쉬운 인간의 본질을 감싸 안고, 그런 사회의 형성에 일조한 데 대한 책임을 지려는 행위이다. - P296

나는 러시아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수용소군도The Gulag Archipelago>인류가 저지른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들에 대해 우리가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악랄한 자들이 어디선가 은밀하게 지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고, 그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해서 파괴시켜 버리는 것만으로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은 모든 인간의 심장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간다. 그럴진대 자신의 심장을 파괴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이 인용구를 접한 나는 이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정신을 요약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솔제니친은 같은 작품 말미에 이 개념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은 국경이나 계층이나 정당을 따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심장 한가운데를 꿰뚫고 지나간다는 사실이 서서히 내 앞에서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 선은 계속 움직인다. 우리 안에서 세월과 함께 요동치고 변화한다. 악에 압도된 심징이라 할지라도 가느다란 선의 교두보가 남아 있다. 그리고 가장 선한 심장 안에도 악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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