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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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 대한 갈망과 추구를 반드시 필요한 활동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몸이 그저 연기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흥분하고 만져지고 움직여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운동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처럼, 섹슈얼한 감각들은 자신의 신체적 반응이 진짜라는 느낌을 안겨준다. 믿을 수 있고 안정된 신체감각을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무리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금 까다로운 역설이 담겨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인정하듯이, 섹스는 몸들의 강렬한 만남이다. 또한 섹스는 사람들이 굉장히 취약해지는 공간이자 자기를 개방하는 장소이며, 자신과 자신의 몸이 아무 문제 없고 남에게 수용될 수 있고 아름답고 살아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장소다. 사람들은 왜 섹슈얼리티에서 그런 것을 추구할까?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으로, 또한 감정적으로 자신이 가짜라는 느낌에 시달리는데, 에로틱한 감각은 특유의 육체적 힘을 통해 그 느낌을 지워주기 때문이다. - P224

2차대전 끝자락에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를 초토화했던 원자폭탄들에는 ‘빅맨‘(Big Man)과 ‘팻 보이‘(Fat Boy)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폭탄들에 제법 노골적으로 팔루스(남근)의 지위를 부여한 셈이다. 총알을 난사하던 살상방식은 인류가 설계한 가장 폭발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대체되었지만, 이 경우에도 원자들의 폭발력은 오르가슴에 오른 남성의 정액 분출과 동일시된다. 왜? 여성이라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왜? 어째서 파괴와 살상은 남성의 성기와 그토록 밀접하게 연관될까? 그 결합은 그렇다 쳐도, 원폭 투하를 담당한 B-29 폭격기에 조종사 티베츠 대령의 어머니 이름을 따서 에놀라 게이(Enola Gay)라는 별칭을 붙인 것은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 P236

루비의 생각은 거짓된 몸, 또는 적응한 몸을 갖고 있던 콜레트를 떠올리게 한다. 루비도 콜레트처럼 쉼없이 일시적인 경계들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내부에 확실한 몸의 보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동차 같은 갑갑한 공간에 갇혀야만 성적으로 ‘풀어졌던‘ 것은 긴급상황에서(혹은 일탈적이거나 외설적인 환경에서) 경계를 만들어내는 어른다운 방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육체적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섹슈얼리티를 풍요롭고 쾌락적이고 에로틱한 것으로 느끼는 통합적 감각능력이 결여된데다 몸의 경계마저 놓쳤기 때문에, 그녀는 육아라는 전통적인 정신적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반항적 환경을 잃어버렸다.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몸에는 반항적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는 선을 넘어 일탈해야만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 P246

이런 딜레마들을 이야기하고 몸을 깃들여 살 만한 믿음직한 장소로 복구하는 것은, 몸들에 대한 현재의 신념과 열망들에 도전하는 일이다. 몸을 거의 무한정 변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수시로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산업과 관행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몸에 대해 창조성을 발휘하지 않는다. 몸을 재미있게 즐기지도 못한다. 즐기기는커녕, 특정 형태의 몸을 만들어내면 스스로를 더 괜찮은 존재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몸을 마구 주무른다. - P269

우리는 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몸을 당연한 것이자 즐거운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몸에 새로운 육체성을 부여함으로써, 몸을 우리가 달성해야 할 열망이 아니라 우리가 깃들여 사는 장소로 바꿔야 한다. 몸에 대한 상업적 착취와 신체적 다양성의 격감을 시급히 막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와 아이들이 자신의 몸, 취향, 신체적 특징, 섹슈얼리티를 즐기도록 해야 한다. 몸은 노동의 장소, 상업적 생산의 장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다양한 몸들과 몸을 꾸미고 움직이는 다양한 방식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즐거움과 고마움을 안겨주는 경험이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안정된 몸이 필요하다. 그런 몸은 행복과 모험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몸의 존재를 확신하는 그런 순간, 이윽고 우리는 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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