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거나 혹은 다른 ‘3인 3색’ 여성 리더의 조건


조선일보|기사입력 2007-09-21 03:18 |최종수정2007-09-21 06:58 기사원문보기



▲ 수킨더 싱 캐시디 구글 아시아·남미 사업부 부사장
▲ 수킨더 싱 캐시디 구글 아시아·남미 사업부 부사장

IT업계 여성 실력자 3인에게 듣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에릭 슈미트의 자리에 여성이 서는 것은 과연 꿈일까. 날로 커지는 공헌도에도 불구하고 IT업계에서 여성의 힘은 그 동안 과소평가돼왔다. 한국 IT업계를 돌아보면 더욱 심하다. 칼리 피오리나, 멕 휘트먼을 넘어서는 여성 인재가 한국에서 나올 수는 없을까.

최근 IT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을 이뤄낸 세 명의 여성이 방한했다. 수킨더 싱 캐시디 구글 아시아태평양 및 남미 사업부 부사장, 바바라 바우어 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부사장, 로나 라이트 요크대 경제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IT산업이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산업이고, IT산업의 미래가 여성인력에 달려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발 빠른 환경 적응력으로  승부하라 

수킨더 싱 캐시디 구글 아시아·남미 사업부 부사장 

“여성의 장점은 적응력입니다. 적응력이야 말로 빠르게 변화하는 IT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입니다.”

수킨더 싱 캐시디(Sukhinder Singh Cassidy) 구글 아시아태평양 및 남미 사업부 부사장은 헤드헌터라면 누구나 탐낼 인재다. 그의 이력에는 지난 10년간 실리콘 밸리의 역사가 압축돼 있다.

금융서비스 솔루션업체 요들리(Yodlee.com Inc)를 창업했고, 그 전에는 아마존(Amazon.com)과 정글리(Junglee Corporation)같은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활약했다. 뉴욕과 런던에서는 메릴린치, 영국 위성방송에서 전략 및 신사업 개발업무를 수행했다. 현재는 구글의 아시아·남미사업부 영업을 총괄하며, 전세계 구글 지역 검색 및 채널 사업의 총 책임자이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이력을 만든 비결을 묻자 그는 “적응력(flexibility)”이라고 답했다. “지난 10년간 5번 직장을 옮기고, 직책을 8번 바꿨죠. 지금 IT산업은 그런 곳입니다.”

그는 남성에 비해 탁월한 여성의 적응력이 IT산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일하는 여성들은 직장, 가정 등 여러 문제를 동시에 처리하는데 익숙하다”며 “IT 산업같이 환경 변화가 빠른 곳은 여성의 이런 능력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 적응력은 수동적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극적인 변화의 순간에 동참하는가 하면, 때로는 직접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를 만든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를 예로 들었다.

“스티브와 채드는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영상 산업의 정의를 바꿨습니다. 사용자가 만든 영상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했기 때문이죠.”

물론 캐시디 부사장도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낸 사람들 중 하나다. 그가 들어온 뒤 구글은 도서와 영상을 서비스하는 ‘구글 북스’, ‘구글 비디오’를 시작했고, 3년전에는 구글 아시아태평양 및 남미 사업부를 열었다.

그렇다면 변화를 감지해낸 여성은 바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변화를 만들려면 네트워크가 필수입니다.”

자신의 사례를 그는 예로 들었다. “제가 구글에서 일하게 된 것은 구글의 벤처투자가 중 한명의 소개 때문이었어요. 그는 요들리(금융 소프트웨어 업체)의 투자가이기도 했죠. 그의 소개로 별다른 인터뷰도 하지 않고 구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캐시디 부사장이 네트워크를 만든 방법은 간단하다. “칵테일 파티를 쫓아다니는 게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만난 사람들과의 업무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그 사람이 곧 당신에게 전화를 걸 겁니다.” 확실하고 성의 있는 업무처리가 어설픈 친분관계보다 훨씬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 로나 라이트 캐나다 요크대 교수
▲ 로나 라이트 캐나다 요크대 교수

적응력과 네트워크가 갖춰졌다면, 마지막으로 갖춰야 할 덕목은 용기다. 그는 “요들리를 창업할 때 나는 재정적인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단숨에 뛰어들어 일했다”며 “경험했던 자리보다 훨씬 책임이 큰 자리에 도전해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충고했다.

한국 여성이 도전해 볼 유망한 분야로는 모바일과 엔터테인먼트, 커뮤니티(SNS)를 꼽았다. 캐시디 부사장은 “한국은 인터넷환경이 매우 좋고, 혁신성이 뛰어난 게 특징”이라며 “한국 여성들이 충분히 도전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용자 친화적인 성향을  활용하라

 

로나 라이트 캐나다 요크대 교수 


“온라인 사업(e-business)이야말로 여성의 기회이자 한국의 기회입니다.”

로나 라이트(Lorna L. Wright) 캐나다 요크대 교수는 보기 드문 아시아 경제 전문가다. 그는 타이어, 인도네시아어, 일본어, 라오스어, 말레이어, 스페인어, 영어 등 7개국어에 능통한데, 그 중 5개 국어가 아시아 언어다. 15년간 타이, 인도네시아, 일본의 다양한 국제 기구를 거쳤고, 전공은 심리학, 경영학, 국제경영학, 교육학 등 4개다.

복잡 다단한 이력을 거쳐온 그의 종착점은 ‘다문화 경영(cross-cultural management)’이다. 국가·인종·성별 등 다양한 원인에 따라 갈라지는 경영의 해법을 찾는 학문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그는 IT와 여성을 예로 들어 쉽게 풀어 설명했다.

“보통 IT분야는 성(性)에 구애 받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성과 여성에게 수많은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는 “해커의 공격성향이 좋은 예”라고 말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경영하는 회사가 더 많이 해킹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해커들이 여성이 IT에 어두울 거라는 관념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IT분야에 남성이 우월하다는 관념은 어려서부터 남자들이 더욱 IT에 접할 기회를 자주 갖게 만들고, 교육 격차를 만든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성별의 차이가 IT에 미치는 영향을 여성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라이트 교수는 “강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사용자 친화적인 성향을 활용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실제로 필리핀 같은 곳에서는 여성이 16개 부문에서 남성보다 우월한 역량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는 것.

물론 그는 여성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약점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약점은자신의 강점을 대중에게 명확하게 알리지 못하는 점. 때문에 그는 여성 특유의 성향으로는 스티브 잡스 형의 강력한 리더십을 만들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그는 두 가지 방법을 들었다. 하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도록 자신을 꾸준히 연마하는 법. 둘째는 여성 특유의 경영 기술을 강화하는 법이다. 특히 그는 두번째 방법에 대해 “여성이 고립된 다양한 사람들을 보다 인터넷에서 쉽게 연결해줄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는 여성이 이런 중간자적 역할로 IT산업에서 담당할 부문이 온라인 사업(e-business)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온라인 사업은 단순히 물건을 온라인으로 사고파는 전자상거래(e-commerce)의 개념이 아니라,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기존 사업의 형태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 소프트웨어,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술이 접목된 종합 사업분야다.

온라인 사업은 한국이 살 길이기도 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에 못지 않은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면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온라인 사업’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화를 통한 중소 기업의 사업 활성화가 한국이 더욱 강력했다는 것이다.


▲ 바바라 바우어 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부사장
▲ 바바라 바우어 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부사장

“단순히 웹 검색이나 이메일 활용 정도로 인터넷을 써서는 한국도, 여성도 미래가 없습니다.” 그는 “기존 온라인 사용자 외에 저개발국이나 빈민층이 함께 IT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온라인 사업이 펼쳐져야 여성과 한국의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이 여성의 가치  깨닫게 하라 

바바라 바우어 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부사장 


“한국의 기업들은 이제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여성이 언제 어디서 일하든 업무 성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바라 바우어(Barbara T. Bauer) 전(前)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부사장은 IT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 기술자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이던 그는 소규모 기술자들의 책임자로 경영 이력을 시작했고, 응용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다. 이 회사가 성공하면서 그는 곧 벨 연구소에 영입됐고, 몇 개 IT업체의 임원을 거쳐 썬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그에게 IT 여성 인력의 성공 가능성을 묻자 그는 바로 경험과 생활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쏟아냈다. “한국 업체들은 여성이 언제 어떤 곳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모바일 사무실(mobile office)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는 “한국의 IT 여성 인력들은 내가 거쳐온 문제들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업무 초창기 그는 5살인 아들을 집에 둔 채 소프트웨어 테스트 때문에 연구실에서 밤을 새곤 했다. 그는 여성의 가치를 인식하는 조직이라면 이 같은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업무 내용을 모두 온라인화 하고, 업무 시간을 조정해 여성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는 “썬을 비롯한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젊은 부모들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신저, 인터넷 전화 등의 출현으로 얼마든지 모바일 사무실을 저렴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최근 IT기술을 컨설팅하는 자신의 회사 ‘글로벌사이트 파트너즈’를 창업하고, IT 여성인력에 대한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이다. 그는 “변화무쌍한 IT 업계에서 남자든 여자든 부적절한 업무 환경 때문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낭비”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 같은 한국의 큰 조직들이 재능 있는 여성 인력들에게는 언제든지 벤처 투자 회사를 통해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우어 전 부사장의 시대에는 조직에서 여성인재를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지만, 지금은 민간 기업이 여성 인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여성 기술자에게 재무·경영 경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나 기업이 현금흐름, 매출, 신용도 등을 여성 기술자에게 가르쳐야 한다”며 “예를 들어 전산 전공의 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기초 회계 지식을 대학에서 쌓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기술자의 아이디어에는 언제나 벤처 투자자가 몰리지만, 투자자를 설득할 기초적인 재무 능력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를 갖고, 파트너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투자자에 대한 적절한 발표를 통해 아이디어가 진짜가 될 수 있도록 기술자들이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여성 IT 기술자들이 단순 작업의 희생양이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근원이 돼야 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한국 여성 IT 인력이 실제로 미국 같은 벤처 투자 시스템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말을 하자 “조언이 필요한 여성 인재라면 언제든지 콜로라도로 찾아오도록 해라”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며 “날로 확대돼가는 IT 산업의 기회를 여성 인력들이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재 기자(글) whitesj@chosun.com]

[허영한 기자(사진) young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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