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신정구의 '무리한 농담'] 명절에 아들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엄마 친구 아들!


조선일보|기사입력 2007-09-20 03:38 |최종수정2007-09-20 10:07 기사원문보기




무전귀향 : 진심으로 스트레스입니다요. 요즘, 명절만 다가오면 아래로 9남매 둔 종가집 맏며느리라도 된 듯 하루하루 명절맞이 걱정에 면역세포가 초당 100마리씩 죽어나가는 심정이에요.

귀향거부 : 면역세포라서 다행이다. 뇌세포였다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완전 바닥날 뻔 했잖니? 그래도 명색이 작간데, 최소한 아이큐가 80은 되어야지. 그런데 왜 남자가 그렇게 명절 스트레스가 심하니?

무전귀향 : 그게 말이죠. 결혼압박 스트레스…라고 핑계를 대려고 했는데 실은 주머니 사정 때문이죠. 평소 제 행실을 보면 무척 검소하고 소박하겠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실은 지나치게 도덕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돈을 물 쓰듯 하더라구요. 음…전혀 앞뒤가 안 맞네요. 암튼 그러다 보니 명절이라고 한 해에 한 두 번 찾아가는 고향집인데 어디 뭐시앤개시에서 급전이라도 땡겨야 할 판이거든요. 까딱하다간 환갑 지난 어머님한테 차비 얻어 올라오게 생겼어요.

귀향거부 :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누군가가 준 와인 한 병 들고 가면 되는 거 아니니? 낳아놓은 아들이 있어서 걔 학원비를 내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출하니 혼자 가서 엄마한테 아양이나 떨다오면 되는 게 아들의 숙명 아닌가?

무전귀향 : 그건 딸들의 숙명 아닌가요? 아들들에게 명절은 한 해 동안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거둬들인 전리품들을 자랑하는 자리 아닌가요? 형제들은 물론 누나나 여동생 각종 친지들에게 '저 잘나가거든요!'를 보여줘야 하거든요. 가족들한테까지 꼭 잘나가는 척 허풍을 떨 필요가 있을까 하시겠지만 실은 이게 다 엄마 친구 아들들 때문이죠. 정말 그러기 쉽지 않을텐데 울 엄마 친구 아들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다 저랑 비슷한 나이에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아들딸도 꼭 하나씩 잘 낳고 이혼도 안하고 효심도 지극하고 어머님께 용돈을 백만원씩 척척 찔러 넣어주는 드럽게 괜찮은 놈들만 있을까요?

귀향거부 : 학교 다닐 때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취직만 했다 하면 삼숭그룹, 며느리는 어찌나 괜찮은 집 며느리인지 팔자 폈고, 아들 성품은 싹싹이 청소기를 능가해서 엄마가 아프면 하루에 열댓 번도 더 전화를 한다는 그 아들. 그 녀석 뭐하는 녀석인지 참. 그 전설의 '엄마친구아들'이 네 인생에도 태클을 거는구나. 그런데 '전리품을 자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왠지 상당히 지적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남자는 사냥의 전리품을 뿌리고 여자는 전리품을 받기 위해 더욱 순종적인 모드로 돌입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동시에 화가 나고. 난 왜 여자들이 명절에 그토록 전신오일마사지 받는 분위기로 기름에 전을 지지고, 떡을 만들고, 설거지 하고, 이러는지 몰랐는데, 그 말을 들으니 논리가 확 와닿는다. 정말 화난다….

무전귀향 : 그럼 나중에 사위가 부엌에 퍼질러 앉아 명태전을 맛깔나게 부쳐내고 큰아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스불 위에 식혜를 휘휘 젓고 있으면 보기 알흠다우시겠어요? 남자 작가라 그런지 제가 만일 드라마에서 그런 상황을 쓴다면 <어머니 (딸의 머리를 쥐어 박으며) 으이그 집안 꼴 자알 돌아간다! 부끄럽지도 않니!!??> 라고 쓸거 같은데요. 물론 시청률은 3.2%.

귀향거부 : 그런 정신상태로 드라마 쓰면 언제 그 유명한 '김쑤현 작가님'의 반열에 오르겠니, 이 화상아. 암튼 그대는 걍 개인기로 때워야겠다. 친척 모아놓고, 구찌 짝퉁 구별하는 법, 디올 옴므 스키니 진 멋지게 입기 비법 강의 같은 거라도 해보렴.

무전귀향 : 앗!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이번 명절엔 조카들에게 용돈 대신 요즘 인기라는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해줘야겠어요.

귀향거부 : 음 역시 인생 선배 조언은 금 같은 거지. 그런데 나는 사실 집안일보다는 어릴 적부터 친척들이 모여서 뭐라 말하는 게 정말 싫더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친척 스트레스는…친척 아이를 다 아는 척 말하는 것. 정구씨도 어디 내놔도 빠지는 방송작가에 각종 잡지신문의 칼럼니스트지만, 친척들이 "애가 어릴 때부터 움직이는 거 싫어하더니 결국 방 구석에서 벌어먹는 직업을 가졌구나" 라든가, "어릴 때 그렇게 공부도 못하더니 방송작가는 공부 못해도 하는거니?" 같은 질문 아닌 판결문 공세를 내릴 때면 스트레스 받지 않니?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애가 얼굴값 할 줄 알았다, 너 신문사도 얼굴로 밀고 들어갔다며…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걸 참을 수가 없어.

무전귀향 : 말문을 턱 막으시긴 하지만 간신히 기운 차려서 말씀드리자면 친척들 뒷담화 스트레스는 정말 심했어요. 엄마친구 아들들이랑 비교하는 건 어차피 사기성이 농후하니까 그러려니 넘어가지만 "저거 사람될까 싶었는데 그래도 지 앞가림은 하고 사는 거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는 똥칠의 새로운 장을 여는 멘트는 정말 참기 힘들죠. "학교에서 배운 거보다 실제 사회에 나가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게 글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그래서 니가 어릴 때부터 뻑 하면 가출하고 정학먹고 그랬나봐"라던가. 명절은 여행이랑 비슷해요. 딱 떠나는 순간까지만 좋아요. 가보면 별거 없고 돌아오는 길은 괴롭고…잔고는 확실히 비어있고 ….

귀향거부 : 그나저나 정구씨 이번 추석에 집에 내려갈 때 빈손으로 가기 뭐하면, 추석 한정판으로 500장만 발매된 '실물크기 zeeny's 브로마이드' 한 장 줄까? 액자에 걸어놓으면 50년 후 진품명품에 나올 수도 있을거야.

무전귀향 : 성의는 감사하나 어머님께서 집에 들이질 않으실 거 같네요. 근데 그보다 더 큰 궁금증 하나가 생기는데…그걸 왜 500장이나 찍으셨어요? 평소보다 마음이 500배나 무겁네요.

귀향거부 : 마음 무거운 게 차라리 낫지. 난 하체가 무거워.

 

무전귀향-신정구 : 방송작가로 '안녕 프란체스카' 등을 썼다. sooooom@naver.com

귀향거부-박은주 : 엔터테인먼트부 부장으로 '발칙칼럼'을 썼다. zeen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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