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버금가는 도서관… 학생들로 가득
독서교육으로 '삼류'서 일류학교 변신 고양 덕양구 화수고
 





 ◇지난 17일 경기 화수고 도서정보실에서 이선희 사서교사와 도서부 소속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서울의 강남 못지않게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다. 하지만 강남과 달리 이 지역의 고교는 별로 인기가 없다.
우수 학생들이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 등으로 빠져 나가면서 이 지역 고교의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고, 이 때문에 학부모들이 지역 고교를 외면하면서 실력 있는 학생이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덕양구 화수고는 독서교육을 통해 우수학생들을 길러 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학 진학률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독서교육을 외면하고 있지만 이 학교만큼은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통해 공교육을 되살리는 것이다.
세계 책의 날(23일)을 맞아 화수고만의 독특한 독서교육법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독서교육을 위해선 뭐든지 한다”=본관 2층에 자리한 도서정보실은 학교에서 전망과 위치가 가장 좋은 곳이다. 원래 교무실이 있던 자리였지만 독서교육 활성화를 위해 2001년 교사들을 과목별로 나눠 여러 방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위치가 좋은 만큼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또한 활발하다. 쉬는 시간 및 방과 후에는 책을 읽거나 도서 대출 또는 자료를 찾으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해마다 100∼120권의 책을 읽는다는 이 학교 2학년 전영욱군은 “중학교에도 도서관이 있었지만 교실과 너무 멀고 책도 별로 없어서 이용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화수고에 온 뒤로는 도서관 시설이 좋아 자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많이 읽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는 또 학생들이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신간 확보에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1년에 5∼6회씩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희망도서 신청을 받으면 각 교과 부장교사로 구성된 자료선정위원회가 구입할 도서나 CD, DVD 등 자료를 선정한다. 도서는 보통 1회에 200∼300권을 구매하는데 지난달 말에도 고전이나 학습자료, 실용서 등 신간 위주로 200여권을 주문한 상태다. 이렇게 확보한 도서 수는 모두 1만7000권에 이르고 있다. 각종 시사잡지나 과학·예술잡지 등 매달 구독하는 잡지만도 30종에 달한다. 작은 대학교의 도서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 학교 박경호 교장은 “현재 학교 예산의 2% 정도를 도서구입비로 지출하고 있다”며 “앞으로 도서 구입비를 예산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화수고는 단순히 책만 많이 갖춰 놓고서 학생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영상에 익숙한 학생들이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독서관련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다른 학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매년 도서관 대출 건수가 가장 많은 학생에게 독서왕 시상, 독서를 주제로 한 사진콘테스트, 독후감 모집 등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매년 9월에 열리는 ‘20자 서평’ 행사.
이 행사는 학생들이 읽은 책의 느낌을 ‘포스트잇’에 20자 이내로 작성해 복도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행사를 열 때마다 학생들의 참여 열기가 대단해 복도가 수천 장의 포스트잇으로 도배되고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이 작성한 20자 서평을 보면서 책 정보를 얻으며 20자 서평을 쓴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책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는다.
3년 전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한 이선희 사서교사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포스트잇을 이용하면 학생들이 책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학률 상승은 덤=화수고가 본격적인 독서교육을 시작할 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공부는 시키지 않고 도서관 만들기나 신경 쓴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독서교육이 완전히 정착되면서 이 같은 말은 사라졌다.
기본에 충실한 교육으로 학생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진학률 또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졸업생 중 85%가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 가운데 서울대 진학생이 2명, 서울시내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80여명이다.
이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의 성적이 전국 평균을 간신히 넘길 정도지만 진학률은 고양시내 20여개 학교 중 최고 수준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화수고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 학생들은 고교 진학 시 ‘선지원 후추첨’ 제도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는데, 지난해 화수고를 지원한 학생이 정원의 160%에 달한다.
화수고는 10여년 전 개교 당시 인근 학교의 문제 학생을 주로 모집하면서 면학분위기가 어수선해 한때 ‘삼류학교’로 불렸지만 이제는 어엿한 지역 명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김성근 교감은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진학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때문에 진학률이 높은 것이라고 자부한다”며 “학생들의 수준을 올리는 데 독서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조풍연 기자 jay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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