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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이들을 통해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사랑이라는이름. 언제, 어떤 모습으로 놓이든 사랑, 그것은 참으로 신비하며 위대한 경험이기 때문이지요.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사랑으로 인해 눈물 짓고 사랑으로 인해 가슴 떨려하는 누군가가 우리 주변에는 있을 터입니다.

바로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김빠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결혼을 하고, 바가지 긁고 토닥거리며 사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상의 많은 사랑 이야기들은 늘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성급히 끝나버리곤 합니다. 사랑을 이루고 난 이후에는 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이루어진 사랑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이겠지요. **그런가? 꼭 그렇진 않은것 같은데...이루어지지 않은 아픈 사랑이 왜 이루어진 사랑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이나 남편얘기 말고, 가슴 아프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첫사랑 얘기를 졸라 대는 것입니다.

<운영전의 결말> - 좀 멋있게 얘기하자면, 궁녀와 젊은 유생의 불가능한 사랑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현실의 완강한 장벽에 몸을 던지는 쪽으로 문제를 몰고 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소설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주인공들이 부딪친 그 엄청난 현실의 장벽과 그 장벽을 드러내기 위해 택했던 비극적인 사랑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금지를 명심하고 있었건만 김진사를 향한 운영의 사랑은 금지의 선을 넘어 흐르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운영의 사랑은 시대의 질서를 결국은 뛰어넘지 못하고 맙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운영을 도와주던 궁녀 자란이 사태가 심각해지자 때를 기다리라고 운영을 말리는 모습이나, 김진사의 도망치자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결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운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세적 규범의 굴레에 굴복하고 만 사랑의 비극성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죽음이 슬프게도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운영전>은 소설적 진실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중세적 이념과 신분적 제약에 걸려 쓰러지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모습을 형상화 함으로써 중세적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운영전을 조선시대 한문소설의 백미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안평대군의 운영에 대한 사랑 : 안평의 금지는 제도가 아니라 윤리 쪽에서 오는 것입니다. 운영을 어린시절 입궁하여 안평대군의 부인을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고, 부인은 운영을 친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운영에게 안평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요. 안평의 행위를 제약하는 이런 금지는 안평이 지닌 윤리 의식의 결과입니다.물론 이 윤리 의식은 안평대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중세사회의 윤리 규범이 빚어낸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진사는 이미 한번 특에게 속아 운영의 재물을 모두 빼앗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사는 자신의 노비를 처벌할 아무런 힘이 없는 인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짓을 한 노비를 아무런 계기 없이 용서하고는 운영의 명복을 빌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주미 40석을 맡기기까지 하지요.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만큼 김진사는철저히 노비에 의존적입니다.

 

<운영전을 읽고 나서 나도 이야기꾼!>

3. 운영과 김진사의 만남을 도와주던 자란은, 그들의 사랑이 막다른 곳에 이르자 운영에게 자중할 것을 충고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운영과 자란의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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