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는 다 사라져라.”
 
중고생을 위한 책을 공정하게 추천해 권위를 쌓아온 한 교사단체는 최근 일종의 카피레프트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인기 작가들에게 저서 한 권씩의 저작권을 포기하게 만들고 그 작품의 데이터를 단체 사이트에 올려 무료로 내려받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취지만 본다면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작권은 저자나 출판사에 생명과 같은 것이다. 설사 명성과 여유가 있는 저자 중에 그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하더라도, 출판사는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불만이 있는 출판사도 냉가슴을 앓을지언정 대놓고 항의를 하지 못한다. 이 교사단체의 위력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독서교육과 독서운동을 이끌어가겠다고 자칭하고 나선 한 독서운동본부는 처음에는 유아와 아동, 청소년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순수한 목적으로 운동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독서지도사 양성을 주 사업으로 삼더니 운동에 필요한 책을 싸게 공급하지 않는 출판사의 책은 슬슬 선정에서 배제했다. 몇 년 전부터는 계열 출판사를 차려놓고 그 출판사의 책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회사건물을 짓는 데 20여 출판사로부터 거액의 출자를 내락받은 뒤 거의 그 출판사들의 책만 추천하는 몰염치를 보였다. 이 단체의 하는 양을 보면 독서를 빙자한 상업주의의 한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그 단체 독서지도사의 추천이나 의견을 끊임없이 실어준다.
도서대여업을 하는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좋은 책만 골라 대여를 하다가 어느 정도 힘을 얻게 되면, 비록 좋은 내용이지만 공급률이 비싼 출판사의 책은 목록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장악력을 가진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의 추천도서 또한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선정기준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거나, 이벤트비용을 협찬하거나, 광고비용을 부담하거나, 진열비용을 직간접으로 부담하는 책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브랜드전도 출판사가 출혈에 가까운 마케팅 비용을 부담해야만 열어준다. 따라서 서점의 추천을 무조건 믿고 책을 샀다가는 낭패를 볼 확률이 높다. 요즘 1년에 6만종, 하루에 200권 가까운 신간이 쏟아진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진정 좋은 책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책은 더 이상 미디어의 ‘제왕’도 아니다. 무료정보가 난무하다 보니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책은 이제 스스로 존재이유를 밝힐 수 있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권위를 가진 저자의 책이나 강력한 임팩트를 갖는 책이 아니면 독자에게 선택되기 어렵다. 또 그런 권위를 덧씌우기 위한 과도한 마케팅이 횡행한다. 이런 현실에서 누군가가 책을 먼저 읽고 좋은 책을 가려 추천해준다면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의 ‘추천권력’은 초발심을 잃었거나 부도덕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로 인해 좋은 책을 펴내면서 원칙을 지키려는 출판사가 오히려 악전고투하는 이상한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갈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비율이 높아가는 이 비극적 현실에서 할 말은 오로지 하나다. “추천도서는 다 사라져라.” 진정으로 그렇게 목 놓아 소리치고 싶은 현실이다.
 
한겨레신문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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