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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6-09  

좋은 책 잘읽었습니다.
제가 좀 쉽게 쓰여진 사회과학서나 자연과학서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이 책도 그 점에서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imhani 2008-10-3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께 출판사 메일을 받고 이틀을 앓아누웠던 소심쟁이 역자입니다.
지난 이틀 동안 출판 번역 초기에야 큰 폭풍, 쓰나미 안 맞은 게 있겠냐 마는 노력으로 공부로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는 초보 단계를 지났다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과 처음 빌 브라이슨을 만났을 때의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번역 샘플 의뢰가 처음 들어왔을 때 내 역량이 아니라고 거절했던 게 맞는 건데 왜 욕심을 부려서 이렇게 힘들어졌나 하는 자괴감, 당시 느꼈던 부담감과 압박감, 그런데도 떨쳐버릴 수 없었던 욕심에 대한 자책 외에는 전혀 드는 생각이 없을 때 몇 몇 번역가분들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너 이름 걸고 나간 책 잘못한 게 있으면 겸허히 수용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차분하게 해라, 어차피 책은 역자와 편집자와 출판사와 독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요. 2쇄를 찍을 수 있는 책에 그런 지적을 받은 것 자체가 고마운 거 아니냐고. 그 말씀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하게 다른 분들과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 그리고 넓게는 책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글을 씁니다.


역자가 번역 원고를 완성하면 그 뒤로는 편집자 교정, 제 교정, 또 다시 편집자 교정, 제 교정 그리고 편집자 교정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니, 책이 나오기 전 적어도 여섯 번 정도의 교정 과정을 거칩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원서를 참고하지만 그 후로는 한글을 다듬는 일에 주력하게 됩니다. 한글 책은 한글 독자에게 맞게라는 생각을 역자나 교정자가 하게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지만....이런 모든 말들은 그저 변명일 뿐이고 결국은 원서를 담당한 제가 모두 받아야 할 비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듯, 나귀님이 지적하신 부분이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것인지, 단어 하나 하나를 고민했고, 고의로 누락한 부분은 없었음을 해명해 보려고 합니다. 신중한 토론을 거쳐 고쳐야 할 부분은 어김없이 고치겠습니다.

1. In the late 1940s and early 1950s after he became a little saggy to fit into a Tarzan loincloth without depressing popcorn sales among cinema audiences, the great Johnny Weissmuller filled the twilight of his acting career with a series of low-budget adventure movies with titles like Devil Goddess and Jungle Moon Men, all built around a character called Jungle Jim. These modest epics are largely forgotten now, which is a pity because they were possibly the most cherishably terrible movies ever made.

책의 첫 문장입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한 문장입니다. 반나절은 꼬박 고민했던 문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he became a little saggy to fit into a Tarzan loincloth without depressing popcorn sales among cinema audiences

(영화 관객들 사이에 팝콘 판매량 감소 없이 타잔 옷을 입기에는 조금 뚱뚱해져 버린)으로 할까 without을 not having experiencing or showing sth으로 할까를 놓고 많이 고심했지만 어쩌면 당시 영화 산업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타잔 옷을 입게 되지 못한 건 모두 그 사람 몸매 탓이라는 비아냥이 섞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택한 것이 후자인데, 여러 분과 말씀해 본 결론은 팝콘과 몸매를 매치시킨 것으로 보아 나귀님 의견이 맞는 것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고민해서 2쇄에 반영하겠습니다.



2. My own favourite, called Pygmy Island, involved a lost tribe of white midgets and a strange but valiant fight against the spread of communism.

이 부분은 책에 나온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이 시리즈는 정글짐이 백인 난장이 부족과 함께, 별다른 이유도 없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겠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용이었다.)



나귀님:[이 시리즈 가운데서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것은 <피그미 섬>이라는 작품인데, 내용인 즉 백인 난장이들로 이루어진 잃어버린 부족에 관한, 그리고 공산주의의 전파를 막기 위한 괴이하면서도 영웅적인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 시리즈 전체의 내용이 아니라 <피그미 섬>이라는 한 편의 내용이다. "막겠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이라는 표현은 원문에 없다.


지금 제가 보관하고 있는 초고 원고는 이렇습니다.(초고는 노트북에서 납품본은 데스크에서 작업했는데, 데스크 원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초고를 참고했습니다.)

-----내가 좋아했던 정글 짐 시리즈는 오지에 사는 백인 난쟁이 부족과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맹렬히 활약하는 이방인의 모험을 그린 ‘피그미 섬(Pygmy Island)’이다. ----

아마도 납품본도 비슷했을 겁니다. 찾을 수 있다면 빠른 시일 내 찾아보겠습니다. 제가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지 않은 부분이라 그리 크게 바뀌지는 않은 부분이었을 테고, 그 후에 바뀐 것은 아마도 저나 여러 편집자 가운데 한 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뀐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서가 없는 상태에서 제가 저를 믿고 편집자분들이 저를 믿어주셨기 때문에 발생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3. 책: 우리의 영원한 근육맨 조니 웨이스뮬러가
the ever-more-fleshy Weissmuller
나귀님: 그 어느 때보다도 살이 많이 찐 와이스뮬러가

제 초고: 가끔은 영원한 근육질 맨 와이즈뮬러가 이상하게 뻣뻣한데다 반항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악어와 싸우거나 식인종을 쫓아 밀림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런 장면은 워낙 짧기도 하거니와 나오는 이유조차 아리송할 때가 많았다.


fleshy라는 단어가 분명히 살집이 많은 이라는 뜻임은 알고 있지만 제가 근육질 맨이라고 쓴 이유는 ever-more 때문이었습니다. forever와 같은 뜻을 담고 있는 데 와이스뮬러가 영원히 살찐 상태는 아니었을 테고 게다가 고무로 만든 게 분명한 악어랑 싸우는 것으로 보아 저자가 은근히 비아냥거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득 들더군요. 빨간색 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저 부분은 그게 맞을 거야 하고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상의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면 2쇄에 반영하겠습니다.

4. 책: 정글짐 시리즈의 소재는 무궁무진했다. 모험 영화라면 아무데서나 마구 소재를 끌어다 썼으니 그럴 수밖에. 열차 충돌. 화산 폭발, 돌진해 오는 하마, 공포에 휩싸인 일본인 무리들... 정글짐 시리즈는 수많은 영화에서 가져온 장면과 어마어마한 스토리 라인으로 무장한 '짜집기' 영화였다.

But the narrative possibilities were practically infinite since each Jungle Jim feature consisted in large measure of scenes taken from other, wholly unrelated adventure movies. Whatever footage was available -- train crashes, voncanic eruptions, rhino charges, panic scenes involving large crowd of Japanese -- would be snipped from the original and woven into Jungle Jim's wondrously accomodating story lines.

나귀 님: 하지만 이야기의 가능성은 사실상 무한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왜냐하면 정글 짐 시리즈의 각 편은 다른 영화들, 그것도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모험 영화들에서 가져온 상당한 양의 장면들로 [짜깁기되어]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용 가능한 장면들이라면 무엇이든지 -- 기차 충돌 장면이건, 화산 폭발 장면이건, 코뿔소의 돌진 장면이건, 일본인 군중들이 공황 상태에 빠진 장면이건 -- 원래의 영화에서 오려내서 정글 짐의 놀라우리만치 융통성 있는 줄거리에 섞어 버렸던 것이다.
---> "소재"를 끌어다 쓴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영화의 한 "장면"을 갖다 붙였다는 뜻이다. 번역자는 rhino 와 hippo 를 구분 못하는 모양. 코뿔소는 뿔이 하나고, 하마는 뿔이 다섯 개에 날개가 달린 짐승이라니까...

나귀님 하마 설명을 울다가 살짝 웃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철이 없습니다...웃을 문제가 절대 아닌데...근데 초고에도 하마라고 적혀 있고 빨간색으로 표시까지 해 놨습니다....왜 저런 게 안 보였을까요--;; 한 번 안 보인 건 끝까지 안 보였고...역자가 하마라는 데 교정자 분도 당연히 하마라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순전히 제 잘못입니다. 빨간 색으로 표시까지 해 두고는 참 바보입니다.

소재라는 단어를 쓴 건 앞으로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고 잘라 온 장면으로 짜깁기한...이라는 설명으로 갖다 붙였다는 게 설명될 줄 알았습니다. 한글로 뜻을 이해시키는 게 부족했다 생각합니다..----------


초고: 정글 짐 시리즈 소재는 무궁무진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모험 영화라면 아무데서나 마구 소재를 끌어다 썼으니 그럴 수밖에. 열차 충돌, 화산 폭발, 돌격하는 하마(???? rhino charges), 공포에 휩싸인 한 떼의 일본인들. 정글 짐 시리즈는 수많은 영화에서 잘라 온 장면으로 가득한, 어마어마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 짜깁기 영화였다. 가끔은 영원한 근육질 맨 와이즈뮬러가 이상하게 뻣뻣한데다 반항이라고는 전혀 할 줄 모르는 악어와 싸우거나 식인종을 쫓아 밀림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나오지만, 그런 장면은 워낙 짧기도 하거니와 나오는 이유조차 아리송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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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책: 이미 준비해둔 동물을 향해 누군가가 총을 쏘아대는

to shoot a charging animal

달려드는 맹수를 향해 총을 쏘는

----- charging animal이 달려들기 위해 덤벼드는 동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 아저씨가 말하는 대목을 보면 아프리카는 커피나 마시고 병원이나 돌아다니면 되는 느긋한 곳인데, 누군가가 덤벼드는 동물한테 총을 쏘아대는 곳이라는 상상을 했을까? charge가 덤벼드는 이 아니라 충전하다라는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의 생각을 반전시키다 나온 결론입니다. 제가 빌 아저씨에게 너무 눌려서 앞서 나간 것 같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많지만...초반의 긴장이 너무 생각하고 생각하게 만든 결과라고 애써 변명해 봅니다. 여러 분과 고민해 보겠습니다.


6. 책: “열대지역이니까 댕기열도 빼먹으면 안 되지!"

"Dengue fever, bilharzia --- the usual tropical stuff."

나귀 님: "뎅기열, 주혈흡충병, [이런 것도] 흔한 열대병이죠."
---> "댕기열"이 아니라 보통 "뎅기열"로 쓰지 않던가. 주혈흡충병(빌하르지아)도 빠짐.

초고도 책과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댕기열로 쓰고요. 주혈 흡충병은 앞 부분을 읽어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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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야 될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질병일 거예요. 말라리아, 주혈 흡충병, 수면병……”
닉의 말에 댄도 거들었다.
“리프트 밸리열, 흑수열, 황열병……”
“열대지역이니까 댕기열도 빼먹으면 안 되지.”
마지막으로 윌이 쇄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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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것처럼 앞에 이미 주혈 흡충병이 나와 있습니다. 영어로는 달라도 의학 사전도 같은 용어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고의로 몰라서 빼 먹은 게 아니라 중복을 막은 것입니다.



7. 책: "총에 맞고 중상을 입는 일 같은 거요." 내 말에 세 사람은 그런 일은 거의 없다며, 총에 맞아 심각한 상황에 빠지려면 엄청나게 운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Being shot and stabbed and so forth." They assured me that that only very rarely happened, and that it was nearly always one or the other. You had to be very unlucky to be shot and stabbed, they said.



나귀 님: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뭐 그런 거요." 두 사람은 그런 일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고, 게다가 십중팔구는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둘 중 하나뿐이[니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여간 운이 나쁜 사람이 아닌 이상, [내 말마따나] 총에 맞고 칼에 찔리고 하는 일을 동시에 겪는 일은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 이 문장에서의 핵심은 저자는 어디까지나 예로 들은 shot and stabbed 에 대해, 두 사람은 shot or stabbed 이지, shot and stabbed 는 드물다고 나름 진지하게 설명하며 안심시키는 대목이다. "아뇨,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찔리면 찔리는 거고, 총 맞으면 총 맞는 거지, 둘 다 한꺼번에 겪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 이건 명백한 오역 맞습니다....이 부분은 독자 분 지적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앞쪽에서 비행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계속 총 이야기만 나와서 칼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초고는 이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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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고 중상을 입는 일 같은 거요.”

내 말에 세 사람은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며 그런 일은 이거 아니면 저거 밖에 안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헥...이게 무슨 말이야...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욤!!!!! they assured me that only very rarely happened, and that it was nearly always one or the other. 이도 저도 아닌 일) 총에 맞아 심각한 상황에 빠지려면 엄청나게 운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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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부분(가로는 초고에 빨간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싶은데...납품은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칼이라는 생각만 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총에 맞아서 다치는 것으로 생각을 했으니...제 역량이 정말 이 정도 밖에는 안 되네요...


나귀님이 지적해 주신 부분 외에도 이리 저리 원고가 옮겨 다니면서 군더더기라고 생각되는 곳이 삭제되고 좀 더 낫다 싶은 표현으로 대치된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러나 노력이 실력을 위한 변명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더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더 나빠지면 그것만큼 저자에게, 독자에게, 출판사에게 누가 되는 일은 없겠지요. 잘못이 있다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고 고쳐 나가는 역자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원고를 위해 진지하게 나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방명록도 댓글도 안 되어서 여기 말씀으로 남긴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리하시고 독서량이 풍부하신 분을 만나게 됐다는 건 아마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역자와 독자를 위해서 괜찮으시면 꼭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려를 끼쳐드린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드리며 지루한 글 마칠까 합니다.
모두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