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의 고베 - 보석처럼 빛나는 항구 도시에서의 홈스테이 일본에서 한 달 살기 시리즈 8
한예리 지음 / 세나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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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관광이나 명소 중심의 체험기가 아니라, 일본의 항구 도시 고베에서 한 달간 홈스테이하며 저자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받아들인 생생한 기록이다. 한 도시를 걷고, 살아보며, 그곳의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경험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홈스테이’라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호텔, 게스트하우스, 짧은 코스 등을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방식을 과감히 벗어나 현지 가족과 한 달을 함께 산다. 일본인의 가정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장을 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과 놀며 지낸다는 건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그런 체험은 고베라는 도시를 단순한 ‘관광지’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도 책장을 넘기며 어느새 그 집 식탁에 앉아 함께 아침을 먹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저자가 일본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장면이다. 서예, 꽃꽂이, 다도, 노(能) 같은 일본 고유의 문화에 대해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이를 체험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사색이 깊이 있게 담겨 있다. 전통과 일상,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일본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 역시 그간 일본에 대해 가졌던 단편적 인식을 반성하게 되었다. 이 문화들이 결코 ‘옛것’으로만 머물지 않고, 지금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고베라는 도시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깊게 전해진다. 항구도시 특유의 개방성과 세련됨, 자연과 도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 근대와 전통이 동시에 살아있는 거리들. 저자의 시선은 단순한 감탄을 넘어서, 고베가 품고 있는 역사와 상처, 그리고 회복의 힘까지 비춘다. 특히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겪고 다시 일어선 고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도시도, 사람도 모두 고유한 서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홈스테이 가족과의 관계, 마을 사람들과의 소소한 인연, 함께 체험을 했던 이웃들… 그런 만남을 통해 저자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념이나 정치가 아닌 ‘사람’의 얼굴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도 한 나라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먼저 그곳의 사람들과 진심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책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결국 삶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생긴다는 점, 그걸 저자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나도 ‘어딘가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상상하게 됐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에서 조용히, 천천히, 깊이 머물러 보는 여행. 이 책은 그런 삶 같은 여행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단기간의 자극적인 여행이 아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고베를 다녀온 건 아니지만, 책을 덮고 나니 나도 어느새 그곳에서 한 달쯤 살아본 듯한 따뜻한 여운이 가슴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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