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사람을 위한 저속생활법 - 20대 내내 우울증을 앓았던 내가 회복되기까지 했던 일들 50가지
데라상 지음, 원선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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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무기력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저자의 생존기이자, 동시에 그가 터득한 ‘살아남는 법’을 솔직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단순히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그 밀도와 생생함이 다르다.

저자는 20대 초반에 우울증을 앓기 시작해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병과 함께 보냈다고 고백한다. 다섯 번의 재발, 자살 시도, 사회적 단절. 책 속에는 그런 고통의 시간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근거로, ‘죽지 못했다면 살아보자’는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저속 생활법’이라는 개념은 무기력함을 대하는 완전히 새로운 태도를 알려준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며, 그저 ‘동네 사람 A’ 정도로 존재감을 낮추는 삶.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이 메시지는 오히려 큰 위로로 다가온다. 다른 책과는 다르게 접근하는게 좀 신선했던 부분!!


책은 ‘마인드, 사고, 생활습관, 인간관계, 일’의 다섯 단계로 나뉘어 50가지 실천 팁을 소개한다. 대부분의 팁은 너무 작고 사소해서, ‘이게 정말 도움이 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아침 산책을 꼭 해야 한다’는 당위 대신, ‘아침 산책 못 해도 괜찮다’, ‘잠이 안 오면 그냥 깨어 있어도 된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방식은, 실제로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더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조언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예전의 나로 돌아가려 하지 말자”는 챕터였다. 우울증을 겪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정상적이었던 나’를 그리워하며 그 시절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사라졌고, 지금은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그 말이 낯설지만 깊이 다가왔다. 회복이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또한, 인간관계나 일에 대한 조언도 기존의 자기계발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친구가 없어도 괜찮고, 주 2일 아르바이트로도 생존이 가능하며, ‘일을 갑자기 취소해도 되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나를 살게 만든다고 말한다. 사회적 기준에서는 무책임해 보일 수 있지만, 정신적인 회복을 위한 전략으로서 이보다 솔직하고 실용적인 태도는 없다고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이 책은 “너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대신,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더 위로가 된다.

『무기력한 사람을 위한 저속생활법』은 우울감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람들에게,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쉼표 같은 그런 책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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