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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마음부터 안아주세요
윤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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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마음부터 안아주세요 - 윤대현

: 행복하려 애쓰는 당신에게

 

재학 시절에는 몰랐지만 휴학을 하고 나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휴학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끊임없이 이어지던 남들과의 비교였다. 휴학 후, 칩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큰맘 먹고 약속을 잡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친구들의 소식을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던 건 휴대폰 속 SNS. 다들 나만 빼고 어찌나 잘 살던지, SNS를 통해 바라본 친구들의 모습은 다들 멋져 보였다. 나와 같이 휴학을 한 친구는 자신이 원하던 회사에 인턴을 하고 있었고, 교환학생으로 타국에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휴학을 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영위해 가고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해냈던 과제들이 있었고, 수십 년 간 단련해온 벼락치기를 보여줄 시험이 있었고, 한 학기의 결과를 나타내는 학점이 있었다. 당시 나의 삶의 기준이자 행복의 기준은 성취감이라는 감정이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가 있어야지만 달성할 수 있었던 이 감정은 딱히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물조차 나오지 않는 휴학 시절에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존재였다. 쉴 새 없이(?) 달려온 학교생활로 소진된 마음을 충전하고자 했던 휴학이, 되려 나에게 타인들과의 비교와 자기 비하로 방전되고 말았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의 스트레스 근원은 남들의 시선에 있었다. 타인의 시선에 과도한 신경을 쓴다는 것. 기준점이 ''가 아닌 ''이 되니까 자꾸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됐다. 남들의 눈에 근사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었던 나는, 참 피곤하게도 살아왔다. 운이 좋게도 나를 괴롭혔던 이 피곤함은 남들에게 '성실함'으로 비추어졌고, 나는 남들이 내게 씌워준 성실함이라는 타이틀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처음 성실하다는 말을 들을 땐, 칭찬이라 생각돼 마냥 좋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단어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다그쳤다. 나의 성실함은 곧 완벽 추구가 되었고,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상황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성실하게'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예측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러한 상황은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지 않던 상황에서 잔뜩 표정이 굳어진 나를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성실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줄만 알았는데, 나는 어느새 남들에게 예민한 사람이 된 격이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다가 결국 더 큰 스트레스만 얻었다. 과연 나는 행복하게 살아온 게 맞는 걸까?

 

삶을 살아옴에 있어 나에겐 행복했던 순간들보다 이처럼 남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자기 비하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나에게 책은 우울하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보통 행복하다고 하면 느낌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내 기분이 좋아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일이 많으면 기분도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 가치가 아닌 느낌에만 의존해 행복 여부를 판단하면 감정이 목적이 되고 행복활동이 수단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감정이란 놈은 변덕이 심해서, 거기에만 따르면 내 행복지수도 들쑥날쑥해질 수밖에 없다.

<일단 내 마음부터 안아주세요> p198

 

 

실제로 25년간 상담사로서 각종 매체에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고민들을 들어온 저자는 앞선 나의 케이스와 같이 한 번쯤 생각해보고 고민해봤을 법한 사연들을 소개하며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뿐만 아니라 책 곳곳 삽입되어 있는 '매일 조금씩 나를 더 사랑하는 연습' 페이지는 실생활에서 적용해볼 법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로 저자는 하루 10분 멍 때리며 걷기를 추천한다. 사실 이 방법은 실제로도 내가 자주 실천하고, 그 효과를 본 방법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휴학 기간 동안 나는 하나의 회피책으로써 도서관 가기를 택했었다. 집을 나와 도서관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또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더 이상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내게 무언가를 묻지 않으셨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서로 마음이 편했던 방법이었던 셈이다.

집 근처 도서관에 가기 위해선 15분 정도되는 거리를 걸어야만 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그 15분 동안 나는 주로 길가의 나무를 보거나 하늘을 올려다 보기며 걸었다. 말 그대로 '멍 때리며' 걸었다. 책에서 저자는 이 시간이 과거(후회), 미래(염려)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이라 말한다. 늘 후회거나, 염려하는 데에 시간을 쏟던 나에게 정말 신기하게도 멍 때리며 걸었던 그 15분이 하루 24시간 중 가장 힐링 되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걸까? 아니면 행복해서 열심히 사는 걸까?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산다란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행복 연구자들은 행복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생존하려고 했고 그래서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행복을 목표로 생존하고자 노력했다면 힘이 들어 인류는 이미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일단 내 마음부터 안아주세요> p116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을까? 나의 인생 목표는 줄곧 행복하게 살자였다. 이처럼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인류는 행복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내 마음을 소진시켰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하고 싶은데,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그렇지 않으니까,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1365일을 펼쳐봤을 때 내가 행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루하루에 집착하다 보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듯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다. 휴학 후 근 세 달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으로 무기력했던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하루들이 모여 죄책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건네는 부모님의 말조차 모두 나를 옭아매는 듯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남들과 비교하며 나를 다그치기보다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 보려 한다. 20여 년간 지속해온 나의 감정 위주 행복 패턴이 그리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다. 그동안 행복하려 애썼던 나에게, 이 책이 건네고 있는 작은 위로와 방법들은 꽤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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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 명상하고 토론하며 스스로 배우는 철학교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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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 아무도 틀리지 않는 철학교실

 

 

어릴 적 나는 정답만을 말하고 싶었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정답을 말하는 순간 느껴졌던 친구들의 눈빛과 그 눈빛 속에서 맛본 순간의 우월감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정답만을 말할 순 없는 법, 어느 날 내가 말한 답이 정답이 아니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창피했다. 내가 틀린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느꼈던 감정은 우월감에서 패배감으로 바뀌었다.

그 뒤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한 뒤에 말을 내뱉었다. 내가 선택한 단어들이, 문장들이 혹여 타인에게 상처가 될까 보다는 내 말이 정답이 아니라서바보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엔 침묵했으며, 누군가와 대화할 때조차 말을 아꼈다. 끝없는 자기검열이 시작된 것이다.

반면 내 10살짜리 사촌동생은 그러지 않는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말하고, 자신이 하기 싫은 이유에 대해선 확실히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것도 그럴싸한 이유를 밝히면서 말이다. <아이와 함께 철학하기> 책을 함께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옮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주입된 지식과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지식의 철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폐쇄적인 사유를 수저하고 보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부러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다.” (276p)

 

 

 

본격적인 철학교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먼저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명상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철학교실을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그 뒤로는 저자 프레데릭이 실제로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철학교실 속 수업내용을 대화 형식으로 삽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을 함에 있어서 알아두면 좋을 20가지의 주요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성 속에서 나는 프레데릭과 아이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철학교실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들의 대화는 저자가 그저 말글로 철학에 대한 개념을 풀어 설명하는 형식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철학교실의 한자리에 속해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나에게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을 훼손되지 않은 형태로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이어진 20가지의 주요 개념들은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생각거리를 스스로 정리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실 내가 책을 읽기 전에 가장 크게 우려했던 건 과연 아이들이 얼마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눌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차게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자 프레데릭은 프롤로그 부분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철학교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특별하고 심층적인 능력이 있다. 나이가 어리고 삶의 경험이 부족하지만 아이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세상과 삶의 가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한다.” (프롤로그)

 

“(...) 특히 그들이 우정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아이들이 실제 겪었던 삶의 경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정에 매우 익숙할 뿐 아니라 일상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수월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이 토론에 참여하여 철학교실에 활력을 더했다.” (진정한 친구란? 116p)

 

철학교실 속 아이들은 이미 다른 친구들과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 구석구석 들어있는 아이들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 답변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줬다. 특히나 죽음과 관련된 아이들의 여러 의견은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캐치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가까운 거리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삶의 유한성에 대해 아쉬워했고, 주변 이들과의 이별에 슬퍼하기만 했다. 나에게 죽음이란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하지만 철학교실 속 아이들의 의견은 사뭇 달랐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 예를 들면 나는 미국에 가고 싶어. 그런데 내가 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아마 나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100년 후에 가야지. 어쨌든 그때까지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을 테니까.’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돼.” (죽을 수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좋을까? 168p)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미루지 않고 많은 것을 할 수 있어. 대충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고 죽기 전에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은 행복이야!” (171p)

 

죽음이 내게 주었던 부정적인 프레임 속에 갇혀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들을 지나쳐 왔을까. 많게는 스무살 가까이 차이가 나던 아이들이 내뱉는 말속에는 내가 지나쳐온 행복이 숨어있었다.

 

 

아이들의 토론 과정 속에서는 정답이 없었다. 나와는 다른 의견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인 프레데릭의 도움을 받긴 하였지만)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의견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아마도 이것이 철학에 다가가는 한 걸음이 아닐까? 책 표지 속 아무도 틀리지 않는 철학교실 이라는 문구도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는 뜻을 가진 '하문불치'라는 고사 성어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와닿았다.

 

 

문사철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문학, 역사, 철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지성인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교양을 의미하지만, 요즘 시대에서는 이 단어가 취업이 잘되지 않는 학문이라 폄하되어 자주 쓰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대학에 입학하여 이 세 가지 학문 중 문학과 사학에 대해 배우고 있는 나 역시 깊게 사유하는 건 시간 낭비라 생각하고, 빠른 정답풀이에 힘써오지는 않았던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추구하고 이를 나타내는 수치화에 익숙한 요즘 세상에는 필연적으로 '정답'이 존재했다. 그렇게 교육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오지선다형의 시험지 속에는 반드시 단 하나의 정답이 숨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에는 정답이 없다. 개개인마다 생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준거는 없다. 틀린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문득 자기검열 속에서 내 안으로 삼켰던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그건 나의 다른 생각이었을 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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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이케가야 유지 지음, 박소현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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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 평생을 같이 살 와 친해지기 위해서

 

 

하루에 수십 번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지만, 나는 나의 실제 얼굴을 영영 볼 수 없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자신 모습을 알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머리말)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아까울 것 같긴 하다. 지금까지 와 함께 살아온 지도 벌써 24. 무려 24년 동안 동거(?)해온 내 자신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한다니! 적어도,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에 이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내가 했었던, 혹은 하고 있는 행동이지만 당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행동들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부끄럽게 고백하건데, 사실 나는 아직도 나의 호불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뿐더러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질문에 대한 대답대신 머쓱하게 웃는 게 다였다. 속으로 나는 왜 그럴까?’라는 자책은 덤이었고.

그래서였을까. '진짜 나를 알아가는 문제적 두뇌 퀴즈 80이라는 책 겉장의 문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잘 몰랐지만, 앞으로 내가 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내 자신이 좀 더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 함께 잘 살아가 볼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라는 마음.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넘겼다.

 

 

 

1) 책의 전반적인 구성

뒤에 부록처럼 속해 있는 착시용어 50개와 인지편향용어 225개에 대한 간단한 사전식 설명을 제외하고도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실생활에서 쉽게 접해볼 법한 상황이 주어지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이에 대한 해설은 바로 뒷장에 이어진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치 내가 어릴 적 읽던 수수께끼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이와 같은 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짧은 호흡으로 책을 가볍게 읽을 힘을 실어주었고, 어떻게 보면 어려울 법한 뇌 상식들과 각종 전문용어들을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작가 역시 이러한 구성에 대하여 가벼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지극히 전문적이다.’고 말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책장을 술술 넘겼다는 건 이러한 저자의 구성능력이 힘을 발휘한 듯싶다.

 

2) 뇌가 지켜주는 우리의 자존심

아직 학생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자기위주편향, 자기불구화, 인지부조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나 시험기간 친구들에게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했다와 같은 자기불구화식 변명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는 자기위주의 편향과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무의식중에 마음의 내면을 바꾸는인지부조화는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자기방어기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뇌가 지켜주고 있는 우리의 자존심이 아닐까? 뇌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도 모르게 듣기 좋은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하니까.

 

3)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과연 이런 모습이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들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앞선 행동들에 ~효과, 자기위주편향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건, 나 말고도 수많은 타인들도 이러한 행동을 하였기에 이름 붙여진 것일 테니까. 사람들은 의외로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라는 말에 쉽게 위로받는다.

 

만약 타인에게 분노를 느낀다면 꼭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아니, 실제로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마음의 맹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화낼 만한 근거일까?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났을 뿐이다. (Quiz 8. 편향의 맹점)

 

를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와 같지 않았던 마음들에 상처받았던 지난날 속에서 이 책에게 또 한 번 위로를 받는다.

 

 

 

단순히 이 책이 제목처럼 우리의 뇌를 좀 더 알아보는 상식사전에만 그쳤다면 좀 곤란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감히 이야기해보자면, 이 책은 뇌와 관련된 지식습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현실 세계는 불확실한 것투성이고, 내일조차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조금이라도 확실한 것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이다. (Quiz 30. 애매성 효과)

 

내가 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부끄러운 고백이 애매성 효과라는 이름으로 전부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나는 왜 그럴까라는 자책이, 뇌라는 장치에 의해 이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작가가 소망했듯 이 책은 분명 인간이 좋아지는 두뇌 사용설명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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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 - 신냉전 시대, 우리는 어떻게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김택환 지음 / 김영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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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사를 들여다볼 때면 우리나라는 언제나 열강들의 국력 싸움에서 소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이에 몇 번 관심을 가지고 국제정세를 엿보려 했지만, 국가들 간의 관계는 생각보다 더 복잡했고 이를 단숨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비전공자인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외면을 택했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 속에서 나 하나의 관심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나에게 신문의 국제 정치/경제면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건, 순전히 이 책의 머리말 속 마지막 구절 때문이었다.

파괴와 혼돈의 시대에 두려워하거나 주눅들지 말고 용기 있게, 대범하게 미래로 전진하자.

나아가 우리도 고래 싸움에서 더 날쌘 돌고래가 되어 신문명의 시대를 열어가길 기대해본다. (11p)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는 싫었다. 과연 돌고래로서의 한 걸음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이러한 물음에 저자는 나를 세계 경제 패권전쟁의 이야기 속으로 인도했다.

 

 

  책은 크게 세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 저자는 [어떤 시대인가?]라는 커다란 질문으로 시작하여 2부에 [어떤 미래가 오고 있는가?]로, 3부에서는 앞서 소개한 1,2부를 총괄하여 저자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 대응 전략과 제언들을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풀어낸다. 이와 같은 각 챕터 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저자가 발로 뛰며 얻은 현장 전문가들의 견해들은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첫째, 둘째식으로 명확하게 정리된 글의 구성 방식은 읽다 보면 자칫 머릿속에서 흩어질 법한 개념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책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도표와 그림들도 책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데에 일조한다. 전직 언론인이자 현재 대학의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구석이다.

   [어떤 시대인가?]라는 1부의 질문에 저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현재 정치 체제가 과거의 어떠한 경험에 의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자세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이들이 한반도에 어떠한 야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야심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4개의 눈과 용의 귀로 하늘의 소리를 듣는 지혜와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부 [어떤 미래가 오고 있는가?]에서는 해체되고 있는 기존 동맹 관계와, 새로운 생겨나는 전선들이 소개한다. 이는 2부의 소제목 중 하나였던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각국 정상들의 서로 다른 리더십들을 분석하고, 도래하는 신냉전 시대에 세계 경제는 어떠한 변화의 흐름을 보일 것인지 전망한다.

'우리는 약소국이며 강대국의 희생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스스로 지킬 힘을 기르지 않고

다른 나라에 의존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 우리는 돌고래로서 우리의 국익을 위해 미중 신냉전 시대를 적극적으로 헤쳐가야 한다. (200p)

더불어 책은 필연적인 미중의 경제전쟁 속에서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1,2부를 바탕으로 3부는 보다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미래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반도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열강들의 힘겨루기 판 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과거 관념에서 이제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계의 지역이자 소프트파워를 지닌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열거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제목에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이 책은 나와 같은 비전공자들에게 국제정세에 대한 친절한 설명서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한 의문점들을 분석하여 정리하였고, 그가 가지고 있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나 '뉴 그레이트 게임'과 같이 그 의미를 단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았던 용어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는다. 그동안 궁금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던 부분이 마치 일종의 QnA 식으로 구성되어, 책을 읽는 내내 좋은 선생님께 집중 과외를 받는 기분이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이 더욱 반가웠던 이유 중 하나다.

   얼마 전 긍정적으로 점쳐졌던 북미 2차 정상회담은 결렬되었고, 자국의 이익에 따라 각국의 입장이 손바닥 뒤집듯 뒤바뀌기도 하는 세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후대에 쓰일 역사의 한 페이지는 작성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동북아 체스판에서 졸 이 아닌 퀸 이 되어야 한다. 각국의 치열한 패권전쟁 속에서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든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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