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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이케가야 유지 지음, 박소현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착각하는 뇌 상식사전
: 평생을 같이 살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
하루에 수십 번씩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지만, 나는 나의 실제 얼굴을 영영 볼 수 없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닌 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짜 자신 모습을 알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낸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머리말)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아까울 것 같긴 하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살아온 지도 벌써 24년. 무려 24년 동안 동거(?)해온 ‘내 자신’에 대해 내가 잘 알지 못한다니! 적어도,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할 때에 이 행동을 ‘왜’ 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내가 했었던, 혹은 하고 있는 행동이지만 당최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행동들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부끄럽게 고백하건데, 사실 나는 아직도 나의 호불호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뿐더러 미래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질문에 대한 대답대신 머쓱하게 웃는 게 다였다. 속으로 ‘나는 왜 그럴까?’라는 자책은 덤이었고.
그래서였을까. '진짜 나를 알아가는 문제적 두뇌 퀴즈 80’ 이라는 책 겉장의 문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잘 몰랐지만, 앞으로 내가 ‘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내 자신이 좀 더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 함께 잘 살아가 볼만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라는 마음. 이러한 마음으로 나는 이 책의 첫 장을 넘겼다.
1) 책의 전반적인 구성
뒤에 부록처럼 속해 있는 착시용어 50개와 인지편향용어 225개에 대한 간단한 사전식 설명을 제외하고도 이 책의 전반적인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실생활에서 쉽게 접해볼 법한 상황이 주어지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이다. 이에 대한 해설은 바로 뒷장에 이어진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마치 내가 어릴 적 읽던 수수께끼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이와 같은 구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짧은 호흡으로 책을 가볍게 읽을 힘을 실어주었고, 어떻게 보면 어려울 법한 뇌 상식들과 각종 전문용어들을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작가 역시 이러한 구성에 대하여 ‘가벼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지극히 전문적이다.’고 말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책장을 술술 넘겼다는 건 이러한 저자의 구성능력이 힘을 발휘한 듯싶다.
2) 뇌가 지켜주는 우리의 자존심
아직 학생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무래도 자기위주편향, 자기불구화, 인지부조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나 시험기간 친구들에게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했다’ 와 같은 ‘자기불구화’식 변명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임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는 자기위주의 편향과 ‘자신의 행동이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무의식중에 마음의 내면을 바꾸는’ 인지부조화는 뇌가 만들어낸 일종의 자기방어기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쩌면 뇌가 지켜주고 있는 우리의 자존심이 아닐까? 뇌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도 모르게 듣기 좋은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하니까.
3)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과연 이런 모습이 비겁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들 그렇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묘한 안도감. 앞선 행동들에 ~효과, 자기위주편향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건, 나 말고도 수많은 타인들도 이러한 행동을 하였기에 이름 붙여진 것일 테니까. 사람들은 의외로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라는 말에 쉽게 위로받는다.
만약 타인에게 분노를 느낀다면 꼭 나 또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자.
아니, 실제로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마음의 맹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화낼 만한 근거일까?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났을 뿐이다. (Quiz 8. 편향의 맹점)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와 같지 않았던 마음들에 상처받았던 지난날 속에서 이 책에게 또 한 번 위로를 받는다.
단순히 이 책이 제목처럼 ‘우리의 뇌를 좀 더 알아보는 상식사전’에만 그쳤다면 좀 곤란하다. 개인적인 견해로 감히 이야기해보자면, 이 책은 뇌와 관련된 지식습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
현실 세계는 불확실한 것투성이고, 내일조차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조금이라도 확실한 것을 선택하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이다. (Quiz 30. 애매성 효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를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부끄러운 고백이 ‘애매성 효과’라는 이름으로 전부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나는 왜 그럴까’ 라는 자책이, 뇌라는 장치에 의해 ‘이럴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순간이다. 작가가 소망했듯 이 책은 분명 ‘인간이 좋아지는 두뇌 사용설명서’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