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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평점 :
#말없는자들의목소리 #황모과 #래빗홀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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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일본 관동 지방에서 일어난 관동 대지진을 아는가.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그것은 ‘관동 대학살’이었다. 그 대규모의 지진은 수많은 인명 및 재난 피해에 더해 당시 일본 수도 동경의 사회질서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웠던, 당시 일본을 뒤흔들었던, 사망자 10만명, 행방불명자 4만명의 수치를 낳은 어마어마한 재난이었다. 그 흔들리던 민심을 바로잡기 위해, 나라를 구하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구실로 일본이 택한 방식은 바로 자국민들의 ‘결집’이었다.
그 결집을 위해 일본의 최고 권력은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확산하기에 이른다. ‘재난을 틈타 이득을 보려는 자들이 있다,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와 강도들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 우물에 독을 넣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다닌다.‘ 이 완벽하게 꾸며진 유언비어는 일본 자국민의 심장을 관통했고 그들은 자신, 가족을 비롯 나라 일본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하여 민간인을 중심으로 하는 ’자경단‘을 조직, 무참히 조선인들을 학살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수가 자료에 따라 6천여명에서 많게는 2만명이라고 하니 우리 민중의 피로 점철된 고통의 역사가 참담하기 그지없다.
소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고통의 ‘관동대학살’을 타임 슬립이라는 형식을 빌어 역사의 그 현장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2023년을 사는 민호와 다카야를 1923년의 그곳에 둠으로써 마치 그곳에 내가 서서 그 야만을 생생히 두 눈으로 지켜보는 듯했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무참히 짓밟힌 우리 민중들의 희생들이 있었다는 것,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살육하고 또 살육했다는 것, 공권력이 그 살육을 획책하고 방조했다는 것, 1923년이나 2023년이나 여전히 일본이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래서 2023년의 한국인 민호와 일본인 다카야의 1923년으로의 동행은 많은 의미를 품는다.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민호와 그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도망치거나 심지어 민호를 죽이기까지 하는 다카야를 통해 진실을 외면하는 한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성찰하게 된다. 그래서 반복되는 세 번의 루프는, 그리고 마침내 네 번째 다카야의 새로운 선택은 아직까지 반성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변화를 기대하는, 그리고 그럴때 우리가 아픈 역사를 딛고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읽혔다.
이미 지나간 고통의 역사는 바꿀 수 없지만 그러한 피의 역사는 지우려 해도, 모른척 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을 보며 나는 인정과 반성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절감한다.
그것이 도리어 제 살 깎아먹기 라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화가 나고 안타깝다. 그 잔혹과 야만의 역사를 걸어보는 이 책은 역사적 진실을 충실히 담아냈다. 얼마나 많은 역사의 시간을 지나며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지 느끼며 거기에 내 마음도 보탠다.
아프게 또 아프게, 그렇지만 우리의 역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누군가는 쉬이 묻어버리려 해도 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계속 쓰일 것이다. 이 소설이 그것을 보인다.
<192p 공권력이 민간에 위탁한 불의와 광기가 살육으로 터져 나왔다. >
<257p 하지만 잊힌 역사 속에서도 약자인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
<146p 생명이 붙어 있는 것들은 죽음까지 무거웠다. 그러니 삶이 가벼울 리는 없었다. >
<본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후기를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