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 #작가정신 <도서 협찬>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는 시리즈 ‘소설, 잇다’. 그 처음이 바로 백신애와 최진영이다.

식민지 조국 아래, 사회주의 여성단체에 가입해 여성운동을 활발히 했으며 시베리아 방랑으로 수난을 겪은 백신애 작가의 소설은 <광안수기> , <혼명에서> , <아름다운 노을> 세 편이 수록되었다. 세 편의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백신애 작가의 개성적인 문체와 목소리에 단번에 사로잡힌다. 100여 년전 실존했던 여성 작가에게서 읽히는 것이 우리 여성의 암울하고 억압받았던 삶과 그것이 내내 지배하고 착취했던 고난 때문이라는 것은 가슴이 시리는 일이다. 가부장제의 시련 속에서 여성의 삶이 미끄러지고 깨어지는 삶의 모습들은 절망스러울지라도, 100여 전의 백신애 작가와 같은 우리 여성 작가들의 숨결은 그때에도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자각은 ‘소설, 잇다‘가 안겨주는 가장 큰 위안이자 선물일 것이다. 읽는 내내 두근거리던 마음은 아마 이어지고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과 그것이 빚어내는 희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진실성 없는 바보같은 남편의 외도로 고통받는 여성의 한의 숨결과 고통과 체념을 한껏 폭발시킨 소설 <광안수기> 는 그래서 우리의 울분과 같다. 여성의 삶이 그러했음을 알고 있고 그것이 그 먼 과거 속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님을 또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 여성 화자의 토로는, 그 스스럼없는 한은, 그저 그럴법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 제도의 속박으로 빚어진, 여성에게 기대되는 얌전한 삶, 즉 주변인들이 바라는 삶을 탈피하고자 하는 여성의 고뇌가 깃든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 역시 여성에게 몇 겹이나 씌워진 속박이 얼마나 무겁고 단단한 것인지를 바로 보게 한다. 그랬던 백 여년 전의 여성 삶이, 여성을 바라보는 눈이, 본질은 여전히 같다는 것을 새삼 현대 여성 작가 최진영으로 하여금 우리는 확인 받는다.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을 여성과 여성의 사랑으로 변주한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으로 읽혔다. 사랑이기를 바라는, 사랑에 기대고자 하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소설 속에서나, 뒤이은 최진영의 짧은 에세이에서나 분명 우리는 희망하여야 하고 그것은 마땅히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삶에는 불가피한 것이 있고 백 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불가피하게 벗어지지 않는 불편한 옷이 있다는 것은 한 단어로 표현되지 않게 서글프다. 그러나 끝나지 않고 한쪽에서 피어올리는 생명력처럼,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존의 목소리는 나의 울분을 시그러들게 한다.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희망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자 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져 있다. 그 끝나지 않았음이 슬프기도 하지만 이어져 있음에 주목하면 그 희망은 여전하다. 최진영이 말하고자 하는 그 희망이 여전히 우리에게는 유효하고 그것은 쉬이 끝나는 생명력이 아닐 것이다.

근대 여성 작가 백신애와 현대 여성 작가 최진영의 만남. 두 여성 작가의 사는 시기가 달랐을 뿐, 공통된 문제 의식으로 타개하고자 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있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삶이 우리를 속이는 순간은 여전히 많고, 그것은 위기라고도 불릴 것이나 우리에게는 100여년 전이나 현재에나 소설이 있고 글이 있으며 악습에 저항하는 작가들이 곁에 있다. ‘소설, 잇다’의 치명적인 매력은 아마 그것일 새삼 인지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어야만 하는 것, 그래서 좀 더 앞으로 향할 수 있는 것, 좀 더 분명한 것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과 사랑의 강력한 연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데 있다.

<본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썼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