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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구 - 4.19혁명 ㅣ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윤태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53p , 많은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 수년간 그 공포를 경험하고도 어째서 이들은 이토록 용감할 수 있는가. 나는 되레 이들이 두려웠다.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저들의 구호와 외침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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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p , 훗날이란 없다는 걸. 그저 미루고 있었거나 회피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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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면 역사적인 4.19혁명의 그 날이 다시 온다.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은 우리 역사의 네 장면을 네 명의 만화작가가 각각 다룬 이야기로 4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 중 윤태호 저자가 그려낸 역사는 바로 사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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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의 그 날이 다가오거나 그럴 즈음엔 그 역사의 의미가 제법 무겁고 의미있게 느껴진다. 그 현장의 순간을 잘 알지 못하고 내가 경험한 나의 일은 아닐지언정 같은 민족의 피와 고통을 밀착시켜 연결하고 아프게 나의 일인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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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식 때문인지 이 책 사일구도 역사적인 사건 앞에 고통받았던, 그러나 들고 일어나 투쟁하거나 몸을 사리지 않았던 인물과 이야기가 중심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수많은 아픔과 어려움의 문턱을 치받으며 살았던 한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는 역사의 주체가 아니었다. 해방, 한국 전쟁과 민족 분단, 3.15부정선거, 마산의거와 김주열의 죽음, 고려대 학생 피습사건 등을 거쳐 4.19혁명에 이르는 역사의 장면 장면을 살았던 주인공 ‘김현용’은 그저 ‘분노’보다는 ‘공포’에 떨었고 ‘생존’을 중요한 과업으로 우선했다. 그래야만 자신을 비롯해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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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모두 같은 의식 속에서 이야기될 수 없음을 이 책은 말한다. 같은 역사의 현장에 있더라도 누군가는 몸을 내던져 투쟁하고 어떤이는 분노보다는 공포에 떨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이 있듯이 경험의 폭과 양상은 다양해진다. 비록 그것이 같은 경험일지라도 개개의 성향과 삶에 대한 방식은 모두 다르다. 경험이란 총체 이전에 ‘개별’이라는 것을 이 책 ‘사일구’를 통해 깊이 자각하게 되었다. 역사의 어떤 장면에서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주체일리는 없다. 이 책은 주체가 되지 못했던 한 인물의 고백이 주를 이룬다. 그 고백 속에서 삶의 또다른 가능성을 향하지 못했던 자신의 생을 성찰하고 성찰한다. 학생들을 비롯한 많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곳곳에서 외치는 함성을 그림 그리듯 생생하게 생각해본다. 다른것은 모르겠지만 주체로 서 있었든, 그림자처럼 존재했든 고통의 무게와 어려움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듯하다. 한 시대를 관통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닐까. 우리의 역사 ‘사일구’를 다른 시각으로 만나 ‘개별’과 ‘총체’의 거리를 걸어보니 새삼 새로운 감회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