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양장) 새움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대한개츠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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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의 위대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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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꾸준히 회자될만큼 매력적인 개츠비를 너무나 익숙하게 소설과 영화로 보고 들어왔지만 사실 그것이 내가 알던 개츠비였을까. 개츠비를 수식하는 ‘위대한’이라는 말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온 것일까, 이정서 번역을 거친 이 책을 만나면 새로운 의문과 작품 이해에 대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숱하게 만나고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기존의 개츠비는 결코 위대하지 않았다. 비로소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 작가의 눈과 마음이 되어 그 호흡을 느낀다는 것은 지난한 여정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작품에 담긴 문장, 맥락, 전체가 담는 의미, 배경,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어느 것 하나 쉬울리 없다. 특히 그것이 번역을 통해서 전해질 때 더욱 그럴 것인데 그동안 우리의 개츠비는 사람들이 규정해 온 자신의 정체성에 억울함을 가득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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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이해시킨다는 이유로 의역을 통한 번역이 통념처럼 받아들여졌다. 역자의 생각과 의도가 반영되는 일, 본연의 재료에 자질구레한 양념을 치는 일처럼 혼란스러운 과정 안에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소설이 마무리된 후 이정서 직역의 역자노트는 새로운 충격과 동시에 개츠비를 이해하는 통찰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미처 위대한 줄 몰랐던 개츠비가 위대해지기까지 지나쳐 온 가려졌던 의미들. 작가의 서술 구조를 지켜 직역하는 것에는 문장의 의미를 짚어내는 일뿐만 아니라 앞뒤로 맥락을 고려하는 일, 전체를 꿰뚫고 작품을 바라보는 일 즉 뉘앙스 번역을 지켜내는 일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했다. 개츠비가 위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해지는 대목, (550-551p) 특히 은유적인 문장과 암시가 가득한 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뉘앙스와 캐릭터의 오해에 대한 경각심을 주지시키는 대목들, 사람들이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기대했고 실제 그것을 치루어내면서 엄연히 번역에도 하나의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성찰할 수 있었던 대목이 (597p)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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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을 통한 작품의 이해이기 때문에 다소 매끄럽지 못하거나 난해한 문장에 봉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작가가 강조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은 역자의 무분별한 개입의 의역이 아닌 작가의 서술 구조를 수용하는 번역 (직역) 이르렀을 때 비로소 정확해진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다. 작품의 의미는 새삼 깊어지고 감동의 깊이는 더할나위 없는 성찰의 순간이 된다. 작품 안에 무수한 단어들, 그것이 이루는 많은 문장들과 앞뒤 단락들, 그런 모든 글들이 결국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렇게 연결된 글들의 긴밀함을 처음부터 끝에 이르는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를 지닌 중요한 일인지를 그의 번역을 통해 배운다. 결국 작품의 본질에 다가서는 일이다. 그렇게 결국 다다른 역자 이정서가 완성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몇번이고 눈이 닳도록 읽어 보았다. 왜 개츠비가 위대한 것인지, 이 작품의 내공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절정의 순간이 되었다. 하나의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도 함께. 그래서 개츠비를 생각하고 곱씹어 보는 일은 이번 한번으로 그칠 수 없다. 다시 약속처럼 개츠비를 찾을 것이고 그를 만날 것이다. 끊임없이 그에게 묻고 귀기울여 보게 될 터이다. 오랜 시간의 무게를 헤치고도 여전히 머물러 있는 위대한 개츠비가 아니던가. 개츠비를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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