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로 본 번역의 세계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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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왕자로본번역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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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어린왕자를 만났다. 누군가에는 환상이 되었고, 동경이 되었을 어린왕자와의 재회. 그런데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번역의 이름이 더해졌다. 기존에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인 만큼 의역을 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겨왔다. 우리에 맞는 언어의 방향으로 원작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로 번역의 기준은 언제나 의역이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번역가의 임의대로 펼쳐지는 작품의 세계에는 오역과 오류들이 넘쳐났다. 원작을 쓴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우리는 주어지는 대로 번역가의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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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존 번역의 틀을 깨고 새로운 번역의 세계, 직역을 통해 어린 왕자를 재조명하고 있다. 불어 원문과 직역을 1대 1로 배치시켜 직역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번역의 가치를 깨닫는 일이 된다. 작가가 원래 쓴 주어, 서술어, 대명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등 작가의 서술구조를 그대로 추적하며 본 작품의 의미를 풀어 나가는 직역. 이를 통해 번역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방향을 읽는다. 그것은 곧 원래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를 옮기는 일이 된다. 여기에 중간 중간 역자 노트를 실어 기존 번역의 오류를 지적하며 낱낱이 파헤치는 과정에 타당한 근거를 들어 독자가 작품의 본 의미에 접근하는 것을 돕고 있다. 우리의 의역 뿐 아니라 모든 번역의 기준이라 여겨졌던 영어 번역 또한 함께 실어 얼마나 중심에서 벗어난 번역이 이어져 오고 있는지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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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불어는 ‘tu’ 와 ‘vous’의 변화로 높임말을 반영한다. 이 중 어느 것을 택하냐에 따라 서술어의 형태도 달라진다. 즉 존대가 될 수도 혹은 반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의역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또한 등장 인물의 입장이 아닌 번역가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번역 문장을 볼 수도 있다. 이런 의역을 통해 이야기의 긴장감은 사라져 버린다. 어린왕자에 중요한 의미였던 꽃에 대한 이미지 또한 다르지 않다. 임의대로 펼쳐지는 의역은 등장 인물의 성향을 바꾸기도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에도 충분했다. 또한 문장 속에 녹여낼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세 개의 마침표가 사용된 문장도 두 문장으로 압축하거나 동사를 본 의미가 아닌 방식으로 해석하는 역자의 판단에 이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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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직역의 일대일 대응을 통하는 일은 직역의 가능성을 탐지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품에 스며있는 작가의 숨결을 느끼는 일이 된다. 작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 보면서 읽는 생생함. 그래서 작가의 말을 전해주는 직역을 통한 번역가의 말은 살아있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다보니 작품에 스며드는 내 감정의 강도가 달라졌고, 감동의 결이 촘촘하게 작품을 둘러싸는 가운데 작품의 본 의미를 어쩌면 작가가 알아주기를 바란 어린왕자의 정체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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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대한 번역가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어떤 위대한 학자라 해도 작가가 쓴 문장보다 나은 의미를 담은 문장을 창작해 낼 수 없습니다. 번역은 작가가 쓴 서술 구조 그대로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이어야만 합니다. _이정서 (3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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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통념에 빠져 있던 내게 직역에 대한 통찰은  모자의 정체가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이라는 본래의 의미 만큼이나 새로웠다. 그래서 본래의, 작가의 의도를 읽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작품이 선사하는 감동의 폭이 깊어졌다. 그것은 어린 왕자와 나의 대화를 보는 시야도, 작가가 어른에게 당부하는 말의  진심도 다른 무게와 깊이를 안고 다가오는 일이었다. 작가의 진심은 곧 작품의 세계관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원래 작가의 문장에 다가갈수록 작가가 작품에 품은 진심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문장 구조의 의미를 찾아가는 고된 노동의 번역을 역설하는 번역가의 간절한 마음이 인상 깊다. 그만큼 작품의 감동은 새로워진다. 고전의 가치를 알고 읽는 것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작품에 스민 가치는 제대로 읽는 일을 통해야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의 문장 서술 구조를 충실히 찾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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