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너무 예뻐요.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디테일이 대단해요. 작중의 소재들이 은근슬쩍 녹아 있는 그림이어서 이스터에그 찾는 심정으로 한참을 들여다봤답니다.
1. 황모과 :: 클락워크 도깨비
클락워크..? 무한 역동.. 도깨비불? 세 작품 중 가장 감이 안 잡히고, 그래서 가장 맘에 드는 제목의 소설이었습니다. 읽고 나서도 가장 여운이 남았어요. 저는 소설 읽을 때 캐릭터의 매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캐릭터에게 있는 힘껏 과물입하는 웹소설 독자다운 습관을 갖고 있는데요. 연화와 갑이의 우정과 기구한 운명에도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화는 삶에서 세 가지의 불을 만나고, 이 소설은 그 불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설에서 언급되기로는 세 가지의 불이지만, 이 소설 전반에 걸쳐서 '불'이라는 키워드가 곳곳에 숨어있어요. 도깨비 불, 전등불,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큰불, 타인을 태우는 불 등.. 이글이글 뜨거운 소설이었습니다.
2. 남유하 :: 얼음 속의 엄마를 떠나보내다
클락워크 도깨비가 뜨거운 불이라면 이 소설은 차가운 얼음입니다. 동화 같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섬찟한 고딕 호러 분위기를 잘 끌고 나가요. 365일 겨울만 지속되는 마을에서 어린 소녀 카야는 엄마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마을에는 죽은 사람을 얼음 속에 보관하고 장례를 치르는 '얼음장'이라는 풍습이 있는데요. 얼음장을 마친 후 그걸 잠시 집에 두며 애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죽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애도한다는 게 저로서는 이해불가의 공포여서, 사실 처음엔 이 마을 전체가 거대한 흑막 집단처럼 느껴졌는데ㅎㅎ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얼음 관은 어느 순간 눈의 결정처럼 하늘로 흩어지며 사라지고 그렇게 떠난 영혼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령이 됩니다. 카야도 이 수호령의 도움을 받게 되고요.
"카야. 엄마는 우리를 지켜주는 에니아르가 된 거야"
차가운 마을, 괴이한 풍습 그리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작은 아이가 거대한 권력과 맞서는 이야기라는 게 전반적으로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었고, 환상적인 힘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성장 판타지의 면모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너무 피폐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좋았어요.
3. 정지윤 :: 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근미래 SF 미스터리 추리물입니다. 기술 개발을 경계하는 아파트 공동체가 배경이 되고, 다소 현실적인 갈등 속에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고등학생 소년의 성장 이야기예요.
떡잎마을방범대에서 갑자기 피폐물로 갈랑 말랑...?하다가 다시 떡잎마을방범대로 돌아오는 듯한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인물들끼리 티키타카 만담하는 게 귀여웠는제, 그런 톤이 과하다 느껴질 때쯤 점차 다른 시각들이 드러나더라고요. 그런 점마저 너무 좋았답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많은 어른을 만나지만 대충 분류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잘못을 반성하는 어른, 그리고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른ㅎ..입니다. 후자의 어른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그런 어른만을 비추진 않았다는 점에서 요 소설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소설로 읽히는 게 아니라 청소년 성장소설로 읽히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성장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우물에서 벗어나는 법도, 자기 안의 불을 지피는 법도 연화는 깨치지 못했다. 우물 속에 머물면서 불을 꺼트리지 않는 법도 몰랐다. 타인의 불을 어찌해야 할지는 더욱 몰랐다. 속에서 날뛰는 불을 잠재우려 하염없이 달을 올려다보는 일밖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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