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은영 지음, 김세희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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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님은 인물과 인물의 감정의 선들을 섬세하게 표현하신다. [내게 무해한 사람]과 [쇼코의 미소]를 읽었을 때 작가님이 그리는 소설의 세계에 푹 빠졌다. 작가님은 사건이 정면으로 부각되기 보다 사건을 둘러싸는 인물들의 감정과 시선을 깊게 다루는 글을 쓰시는데, 그 시선이 다루어지는 방식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이 따뜻하다는 표현은 이야기가 낭만적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따뜻하다는 것은 작가님의 소설 속 인물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후회하고, 때로는 슬퍼하는 그 과정이 정말로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은 읽는 사람을 인간답게 만든다. 더 표현하자면, 인간이 느껴야 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감정으로 타인과 교류하게 한다. 그래서 작가님의 소설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애쓰지 않아도]는 14개의 짧은 소설을 품고 있다. 각 소설들은 그야말로 최은영 작가님이 쓰신 글이다. 소설을 하나 읽으면,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서 조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때 느꼈어야 했었던 외면했던 감정들이 천천히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이 그랬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앞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러한 소중한 시간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

책 제목을 이야기해 보고 싶다. 동명의 짧은 소설이 책의 제일 앞에서 우리를 반겨준다. 소설의 내용을 언급하진 않겠다. 최은영 작가님이 말한 "애쓰지 않아도"라는 말은 사람이 삶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 같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그 많은 감정들이 우리에게 하나씩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애쓰는 우리에게 최은영 작가님은 더없이 따뜻한 이야기를 선물해 준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위로받고 다음 문장에 힘을 얻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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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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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6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SF 소설집이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이 글은 이 중 가장 첫 번째 단편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만 읽고 쓰는 글이다. 한 책에 관한 감상은 책을 다 읽은 뒤에 쓰는 것이 정직한 방법이지만, 첫 이야기에서 준 감동이 너무 커서 글을 쓰게 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첫 단편 하나만 읽기 위해서 이 책을 구입해도 후회 없을 것 같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 단 하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이 선택은 너로 인해서 시작된다.

수많은 평생 세계를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어떤 세계에서는 조종사이고, 어떤 세계에서는 학생, 어떤 세계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모든 세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싶은 세계만을 살아간다. 가족이 일찍 죽는 세계, 몸이 심하게 다치는 세계 등은 피해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면 된다. 주인공인 히즈키는 수업을 들으며, 알바를 하고, 집에서 게임을 하고, 한 세계에서는 친구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친구가 아닌 친구와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 친구의 전학을 축하한다. 동시에 수많은 선택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싫고 피하고 싶은 세계는 가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이 세계는 매끄러운 세계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사람들이 있다. 히즈키의 친구 마코토는 불의의 사고로 한 세계에 고정되어 버렸다. 마코토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벽을 친다. 다른 세계에서는 진실한 친구인 히즈키조차 밀어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유일한 세계가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선택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코토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서, 그가 언제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를 선택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한한 생명도, 유한한 가능성도 아니었다. 자신들을 계속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었다."

히즈키는 한 사건을 통해서 마코토의 두려움을 깊게 이해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서 히즈키는 마코토에게는 불의의 사고였던 일을 스스로 선택한다. 히즈키는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들이 자신을 스쳐사라지는 것을 본다. 마코토는 히즈키에게 화를 낸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할 수 있을까? 바라던 사랑, 바라던 성공, 바라던 행복이 있는 어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세계를 선택해서 살아가면 된다. 히즈키는 그것을 포기한다. 히즈키는 "우주최강 바보다." 이제 이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히즈키와 마코토라는 두 사람의 단 한 번뿐인 삶이자 우정이 되었다.

"히즈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해!"

"아무래도 이렇게 안 하면, 이것저것 아른아른 보여서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반응은 "분명 후회할 거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히즈키의 선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히즈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후회할 거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쪽을 선택했어." 그래, 이러한 선택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저울질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마코토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매끄러운 세계는 그 자체로 적들이었고, 히즈키는 그것을 너무나 잘 이해했다. 그리고 히즈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히즈키에게 마코토는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였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었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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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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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이 7월 1일인데, 책이 어제 도착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시작으로 작가님의 모든 소설이 다 마음에 들었기에 두근거리며 읽었다.  한 숨에 읽고 나서 작정하고 썼다는 작가님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주제와 무게가 다른 작들과 전혀 다르다. 이상과 이상의 왜곡, 분노에 대한 것들이 담겨 있고 학교 다닐 때 관련 사건을 경험해 보았기에 더 깊이 와 닿았다. 


“이상론이란 결국 이상에 대해 말하는 것이잖아. 그리고 이상은 우리가 가장 지향해야 하는 것이겠지? 근데 그걸 코웃음 치고 비웃으면서 이상론이라고 몰아붙이다니, 뭔가 이상해. 전쟁 끝의 평화가 아니라 평화 끝의 평화가 더 좋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기 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작중


“모두가 일제히 총을 내려놓을 이유를 찾아내기만 하면 내일 당장 전쟁을 끝이 나는거야” 오글오글 오글오글,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상론. “그러니까 뭔가를 바꾸는 것에 때늦은 일이라는 건 하나도 없어.” -작중


‘처음의 이상과는 너무도 멀어져 버린 저 왜곡된 단체를 없애고, 다시 한번 이상이 머무는 곳을 만든다. 어떤 자들이 머무는 곳인가. 000처럼 이상을 추구하던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작중


그 시절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한 수업 중 이야기했던 말은 기억한다. “설사 진리가 뚜렷하고 정확했었더라도 적어도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양측이 화해하는 모습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건네지는 어른들의 진중한 사과였어요.” 이상을 이야기하고, 왜곡된 이상에 대해서 말하기는 쉽지만 ‘밑바닥에서 퍼 올린 진흙탕 같은 본심’을 꺼내기는 어렵다. 아마, 우리가 모두 떠나보내고 부정하고 싶은 어리고 아리고 여렸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그런 순간들을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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