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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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6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SF 소설집이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이 글은 이 중 가장 첫 번째 단편인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만 읽고 쓰는 글이다. 한 책에 관한 감상은 책을 다 읽은 뒤에 쓰는 것이 정직한 방법이지만, 첫 이야기에서 준 감동이 너무 커서 글을 쓰게 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첫 단편 하나만 읽기 위해서 이 책을 구입해도 후회 없을 것 같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 단 하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이 선택은 너로 인해서 시작된다.

수많은 평생 세계를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어떤 세계에서는 조종사이고, 어떤 세계에서는 학생, 어떤 세계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모든 세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하고 싶은 세계만을 살아간다. 가족이 일찍 죽는 세계, 몸이 심하게 다치는 세계 등은 피해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면 된다. 주인공인 히즈키는 수업을 들으며, 알바를 하고, 집에서 게임을 하고, 한 세계에서는 친구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친구가 아닌 친구와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 친구의 전학을 축하한다. 동시에 수많은 선택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싫고 피하고 싶은 세계는 가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이 세계는 매끄러운 세계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사람들이 있다. 히즈키의 친구 마코토는 불의의 사고로 한 세계에 고정되어 버렸다. 마코토는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벽을 친다. 다른 세계에서는 진실한 친구인 히즈키조차 밀어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유일한 세계가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선택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코토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서, 그가 언제 이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를 선택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한한 생명도, 유한한 가능성도 아니었다. 자신들을 계속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었다."

히즈키는 한 사건을 통해서 마코토의 두려움을 깊게 이해하게 된다. 이 사건을 통해서 히즈키는 마코토에게는 불의의 사고였던 일을 스스로 선택한다. 히즈키는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들이 자신을 스쳐사라지는 것을 본다. 마코토는 히즈키에게 화를 낸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할 수 있을까? 바라던 사랑, 바라던 성공, 바라던 행복이 있는 어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 세계를 선택해서 살아가면 된다. 히즈키는 그것을 포기한다. 히즈키는 "우주최강 바보다." 이제 이 세계에서 영원한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아니라 히즈키와 마코토라는 두 사람의 단 한 번뿐인 삶이자 우정이 되었다.

"히즈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 대체 왜 그런 짓을 해!"

"아무래도 이렇게 안 하면, 이것저것 아른아른 보여서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이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은 반응은 "분명 후회할 거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히즈키의 선택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히즈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후회할 거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이쪽을 선택했어." 그래, 이러한 선택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저울질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해의 영역이 아니다. 마코토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매끄러운 세계는 그 자체로 적들이었고, 히즈키는 그것을 너무나 잘 이해했다. 그리고 히즈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히즈키에게 마코토는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존재였고,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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