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결혼 대신 야반도주 - 정해진 대로 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매일
김멋지.위선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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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동갑내기 친구가 직장을 관두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써 내려간 여행기이다. 여행 소개서가 아니기에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바랐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진이 좀 더 풍부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사실 개인적인 감상을 담은 일기에 가까워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동기유발효과는 없는 것 같다.

  책을 보면서 인상이 깊었던 것은 두 친구가 매일을 함께 살아나가는 것. 붙어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기도 하면서 항상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놀라웠다. 멋지가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선임은 여행을 계속하는 쿨함을 보여주기도 하고, 선임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로 우울해하자 마치 남자친구 같은 마사지 이벤트를 준비하는 멋지.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멋지 때문에 밖에서 밤을 같이 새다시피하는 선임과 귀국 3일 전 충수염에 걸린 선임을 위해 수술 일정과 간호 등 모든 것을 도맡아서 하는 멋지. 겁쟁이인 멋지와 길치인 선임이 마치 장님과 앉은뱅이 우화처럼 서로를 돕는 모습이 책 내내 미소 짓게 만든다.

  책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계속 ‘그래서 이 사람들은 돌아와서는 뭐가 바뀌었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가 궁금했다. 우선 직업적으로는 둘 다 강연을 하면서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삶의 태도에서 바뀐 것은 '할까 말까 할 때 하고, 말할까 말까 할 때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 중 하나는 아이들이 선택을 하기도 전에 부모들이 미리 결정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인 여행을 2년간 지속하다 보면 과연 스스로를 돌아보고 선택하는 일이 습관화되겠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앞으로 몇 년 뒤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비 오는 날 튀밥을 부스럭부스럭 집어먹으면서 읽기 좋은 오락영화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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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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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주의자 선언' 재밌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전작보다는 가볍게 저자의 수다를 듣는 느낌이다. 이런 류의 수필을 읽을 때는 정보 수집보다 읽는 자체에서 오는 재미가 커서 오락에 가깝다. 과학서적 같은 것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 피로가 오는데 책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저자는 처음 부분을 읽다가 재미없는 책은 읽는 편식 독서가라고 하는데(이동진 작가가 생각나던 차에 마침 저자도 뒷부분에 이동진 작가를 언급했다.) 유년기부터 읽었다는 책의 리스트를 보니 웬만한 책에는 재미를 붙이는 같다. 독서가 쉬는 거라서 공부와 휴식을 병행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는 말이나 되는가? 하지만 그렇게 책을 좋아하는 그도 최근에는 생각없이 집어드는 스마트폰과 TV 리모컨이라고 했다. 특히 영화도 2시간 정도를 보게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언제든지 돌릴 있는 예능을 선택한다는 것이 너무 같았다. 그렇게 스마트폰과 TV 시간을 순삭하고 나면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책이 영상 매체에 비해 갖고 있는 장점들이 있다. 특히 스스로의 시간을 갖고 능동적으로 생각해 보는 독서만의 장점인 같다. 다른 책에서 봤는데 공부를 때도 영상을 보고 학습하는 것보다 활자를 보고 스스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 스마트폰이나 유튜브 같은 것이 재밌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복잡한 사고를 하도록 진화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뇌는 자꾸만 편한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보다 편하게 자극을 많이 느낄 있는 영상매체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책을 많이 사서 책장에 꽂아두지 않고 눈에 띄는 곳에 널브러뜨려 놓는다고 하는데, 성격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참고해 봐야겠다.

 

  독서와불어 블로그 시대조차 끝나고 유튜브가 대세가 , 언제나 사랑했고 언제나 쉽게렸던 친구인 책을 마지 장까지 읽고 싶다는백으로 끝나는 책을 읽으면서 '인생 홀로 아니구나.' 하 왠지 모 안도감을 얻게었다.

  뜨끔했던 말을 되새기며 짧은 후기를 마친다.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중립적이고 합리적일 있다면, 그건 나의 현명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안온한 기득권 때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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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
밥 버먼 지음, 김종명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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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이 자라는 속도부터 양자역학까지, 그야말로 속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주변의 흥미로운 소재부터 어려운 개념까지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면 '아, 이거 별거 아니었네.'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면 '뭐라는 거야?' 하게 되는, 쉬운 내용은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나에게 난이도가 적절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최근에 본 과학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신기한 내용들을 정리해 봤다.

1. 사물은 어느 정도까지 느려질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원자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원자는 섭씨 -273도가 되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이때의 온도를 캘빈 온도 0도라고 한다. 참고로 섭씨는 물, 화씨는 소금물을 기준으로 용융점을 0도로 설정했다.

2. 화산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사실 용암이 느리게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사람이 빠르게 달아나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화산이 폭발하면 두 가지 단계로 인해 죽는다. 우선 화산이 폭발하면 고도 20 km 정도까지 분출물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데, 이 몇 cm에 불과한 현무암 조각들을 직접 맞는다고 죽지는 않지만 2 m 정도 가량 쌓이기 때문에 건물 안에 있는 경우 깔려 죽게 된다. 건물 밖으로 대피했을 때는 두 번째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화산 쇄설암이라는 것과 함께 화산재와 750도의 뜨거운 가스가 시속 100 km의 속도로 사람을 덮친다. 당연히 피할 수 없고 단 한 번의 호흡으로 폐가 망가지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이렇게 죽은 사람들은 두개골 속의 뇌가 끓다가 터져버려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된다고 한다.

3. 코리올리 효과는 위도에 따라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기술한다. 일단 상식: 지구는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그리고 전제 조건: 사건을 시작한 곳에서 관찰한다. 간편하게 북반구만 예로 들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일직선으로 포탄을 쐈을 경우 포탄은 남쪽의 빠른 속도에 맞춰 발사되었기 때문에 북쪽은 아직 오른쪽으로 회전이 덜 이뤄졌고, 그래서 포탄이 오른쪽으로 휜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쐈을 경우에도 남쪽은 이미 왼쪽으로 회전을 많이 한 상태이기 때문에 발사한 입장에서는 포탄이 오른쪽으로 휜 것으로 보인다. 자연 현상에서도 코리올리 효과가 적용된다. 북반구에서 태풍이 항상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과 코리올리 효과가 없는 적도 부근에서 태풍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그 예다.

4. 푸코의 진자: 책 제목으로도 사용되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텐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뭘까? 푸코가 진자를 설치하여 장시간 관찰해 본 결과 회전 방향이 바뀌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진자가 일정한 방향으로 운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전 방향이 변하는 이유는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대형 진자를 만들고 그 아래 뾰족한 침이 모래를 스치는 모양이 바뀌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5. 물이 얼음으로 변하려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온도가 필요할까? 순수한 물 분자가 얼음으로 변하려면 영하 40도나 되어야 한다고 한다. 실생활에서는 물 안의 보이지 않는 먼지 혹은 특히 세균을 중심으로 하여 얼음 결정이 생기기 때문에 영하 2도 정도만 되면 얼음을 얻을 수 있다.

6.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도 여름이 되면 표층이 조금 녹는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데, 이 영구동토층 위에 세워진 도로나 집들이 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또 신기한 것은 표층이 녹으면 곳곳에 물구덩이가 생기는데 이 구덩이들은 모기가 번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래서 여름철의 알래스카는 모기와의 전쟁이라고 한다.

7. 사람은 초당 0.5회~10회 기준으로 소리의 반복 유무를 결정한다. 소리가 1초에 0.5회, 즉 소리의 반복 간격이 2초를 넘어갈 경우 반복이 아닌 독립적인 사건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초당 10회 이상이 반복될 경우 하나의 소리로 감지하게 된다.

8. 토리첼리는 공기의 무게, 혹은 압력을 최초로 증명한 사람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이탈리아에서는 엄청난 높이의 유리 기둥에 물을 채운 뒤 연못에 넣고 아랫부분을 뚫으면 물이 어느 정도 빠지다가 더 이상 안 내려가는 현상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갈릴레이는 물이 빠져나간 진공 부분이 물을 잡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토리첼리는 마치 저울처럼 공기의 압력이 연못의 물을 눌러 유리관의 물이 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이 유리관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물보다 14배 무거운 수은을 사용하게 됐고, 이것이 최초의 압력계다. 멀리 프랑스에서 이 실험을 전해 들은 파스칼은 만약 공기에 무게가 있다면 높이 올라갈수록 수은의 높이가 낮아질 것이라 생각했고, 산으로 올라가면서 수은의 높이를 측정했다. 그의 생각과 일치했고, 그는 더 나아가 수은의 높이를 바탕으로 한 고도계를 만들었다. 현재는 수은 대신 격막을 이용한 고도계가 모든 비행기에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9. 태풍의 발생 원리: 태양에 의해 지표면의 공기가 데워지면 가벼워진 공기는 상승하다가 점차 온도가 낮아지고 주변 공기와 평형을 이루면 그 자리에서 멈춘다. 습도가 높은 날의 경우 상승하는 공기가 주변의 공기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에 보다 높이 올라가서 성층권에 이르게 된다. 이 지점에서는 온도가 꽤나 낮아지기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이슬점에 이르러 물방울이 되는데, 이것이 구름이다. 구름 내부에서는 이렇게 생성되는 물방울의 마찰로 정전기가 형성된다. 빗방울이 만들어져 아래로 내리게 되면 구름 내부를 식혀주는 역할도 하는데, 이렇게 차가워진 공기는 급격히 하강한다. 그 주변에서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상승하는 기류들이 있다. 이렇게 상승기류와 하강 기류가 반복되어 강한 바람과 비를 동반하는 것이 태풍이다.

10. 중력은 너무나 친숙하고 많이 다뤄진 주제다. 핵심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티코 브라헤는 천체 관측의 달인으로 천체들의 움직임을 20년 동안이나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첫 번째는 타원 운동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두 번째는 지구를 중심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천체들이 가상의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그 점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복잡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반면 그의 제자 케플러는 보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었고,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운동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바로 뒤에 등장하는 갈릴레이 역시 태양 중심설을 신봉했고, 공이 무게와 상관없이 비탈길을 따라 내려보내면 같은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우주가 무중력 상태라면 천체가 태양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회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턴부터 아인슈타인은 다시 읽고 정리)

11. 어떤 방송에서 들었던 자유의지에 관한 실험이 이 책에 나온다. 2006년 벤저민 리벳 연구팀은 참가자가 어느 쪽 팔을 들지 결정하기 10초 전에 뇌파를 관찰하여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사고 작용이 일어나기 전에 무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몸의 반응이라고 해야 할지 하는 것이 먼저 일어났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이 어떤 반응까지 적용되는지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대부분의 반응이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면 평소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예시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12. 갈릴레오의 진자 효과는 실에 매달린 추가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추의 무게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발견이었다. 왕복 시간은 오직 줄의 길이에 따라서만 변화한다. 이 현상에 대한 과학적 원리는 설명해주지 않아서 아쉽다.

13. 조수 간만의 차: 조수는 지구와 달의 인력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실제 인력은 질량이 훨씬 큰 태양이 당연히 더 세지만 거리가 달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멀기 때문에 달의 인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이 될 때 조수가 더 강하다고 하는데 이건 무슨 효과인지 모르겠다. 태양의 인력도 작용하긴 한다는 것인가? 하여튼 달의 인력이 작용하는 방식은 직접 바닷물을 끌어당기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서 달과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에 작용하는 달의 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회전력이 발생하고 바닷물이 1미터 정도 부풀어 오르게 된다.

14. 양자역학: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빠른 속도는 빛의 속도이다. 빛은 굉장히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빛의 속도로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에 관계없이 나에게 다가오는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 그런데 빛보다 빠른 게 있다. 쌍둥이 입자라는 것인데 이 중 하나의 성질이 바뀌면 나머지 하나는 이를 보완하는 성질로 바뀐다. 이 현상은 11km 떨어진 거리에서 빛보다 1000배 빠른 속도로 관찰되었다. 당시 이 속도가 최고 검출 속도의 한계였기 때문에 사실은 더 먼 거리에서도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나타나는 현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때 양자역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모든 것은 확률로 존재하고 실제로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건 관찰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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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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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랭크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거니와 스스로 개인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나로서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저자가 개인주의자로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모은 수필이다.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수필의 좋은 점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각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데 있다. 다른 종류의 글쓰기보다 저자와 더 가깝게 대화를 할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글을 굉장히 잘 쓴다고 생각했다. 풍부한 어휘를 구사하고 많은 독서량을 바탕으로 아는 것을 글에 녹여내는 능력, 거기에 자신의 직업에서 오는 경험을 담아 친구의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자는 사람을 싫어하고 혐오하기까지 할 때도 있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글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느껴진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주위 사람들이 매우 선호할 스타일이라 부럽다.

  저자가 느끼기에 한국 사회가 불행한 이유는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행복을 줄 세우기 시켜서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삶의 거의 모든 국면에서 남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사회인데 단순히 돈, 실리에 대한 추구를 넘어 지위재 집착이 심한 사회다.'

  개인은 이런 사회적 기준에서 어떻게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들어가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이 인생의 성공으로 여기는 가치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남들과 다르게 비치는 것, 튀는 것에 대한 공포.'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아무 생각 없는 노력과 그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해서 무작정 하는 것,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우상숭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노력은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훌륭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은 냉정하게 분리해 평가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말을 조심성 있게 해야 하는 태도도 강조한다. 나 또한 반성하게 됐는데 말을 하기 전에 데이라는 사람의 ‘세 황금문’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단계는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특이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비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사를 좌우 이념으로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좌우환원주의라고나 할까. 일견 정치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것까지 굳이 진영을 나눠서 싸우고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나는 국민들이 정치인들의 밥벌이에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념 문제 아닌 것을 이념 문제화하는 강박증은 두 가지 점에서 위험하다. 첫째, 실제적으로 필요한 토론과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각 방안의 장단점을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따지는 머리 아픈 과정을 ‘우리 편의 주장인지 적들의 주장인지’로 대체하는 반지성주의를 낳는다. 둘째, 삼인성호. 몇몇이 떠들어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진다. 몇몇 소수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것을 보다 보면 마치 이 사회에 진짜 심각한 이념 대립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 외에도 세월호, 신해철, 다양한 영화와 책 등 친숙한 소재들을 빌미로 생각해 볼 사안들을 툭툭 던진다. 꼰대 아닌 정말 어른의 공정한 시각을 엿보고 싶다면 가볍게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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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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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인기도서 중 하나로 알고 있었기에 언젠간 읽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방송에서 들은 바로는 이 책은 1965년에 미국에서 발간되었는데 인기가 없었고, 2000년 대 와서야 한 출판사에서 재출간을 했는데 역시 10년간 4천 부 정도만 팔렸다고 한다. 근데 그다음 해에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20만 부 정도가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 몇 개 있는데 우선 독자에게 친절하다. 시간이나 공간을 뒤죽박죽 섞는 방식의 서스펜스를 유발하지 않는다. 첫 두 장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역행하지 않으며, 공간도 극히 제한적이라 상황이 눈에 잘 그려진다. 심지어 등장인물도 많지 않아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하기도 쉽다. 자신감이라고 할까, 정공법으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두 번째는 몇 안 되는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작용해서 긴장을 유발한다. 다양한 평면적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보다는 소수 캐릭터의 다양한 내면을 드러내 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왜 우리도 테레사 같을 때도 있고 사이코패스 같을 때도 있잖은가? 세 번째는 지극히 잔잔한 소설이다. 큰 사건이랄 게 일어나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래서 다양한 볼거리와 신선한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주인공이 삶을 살아내는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데 있을 것이다. 분명 답답하고 화가 나고 비판받을 부분도 있지만 그가 하나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은 시대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닿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문학에 빠지다.

  시대는 1900년대 초, 미주리 주 분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농업을 배우기 위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어머니 친척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숙식을 해결하면서 학교 공부를 그럭저럭해 나간다.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된 스토너는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을 듣게 된다. 강의를 맡은 슬론 교수는 50대 남자로 조금은 냉소적인 인물이었다. 스토너는 이 과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업 도중 슬론 교수가 읽어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듣고 이에 사로잡혀 버린다. 마치 아이처럼 세상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다음 학기부터는 아예 농과대학 커리큘럼을 버리고 문학 수업들을 수강한다. 그 뒤 2년의 시간은 ‘익숙하게 흐르지 않고 발작처럼 뚝뚝 끊겨 있었다. (…) 그가 자신을 의식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는데도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농장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을 마음에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루는 슬론 교수가 사무실로 불러서 찾아갔고, 그는 스토너에게 대학에 남아 교육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결국 스토너는 졸업식에 온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는다.

2. 문학과 세상 중에서 문학을 선택하다.

  스토너는 슬론 교수가 마련해 준 강사 자리를 역임하며 학업을 계속해 나간다. 평생 지기 두 명도 만나게 되는데 지적이고 냉소적인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사람 좋은 고든 핀치였다. 하루는 매스터스가 “대학은 우리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그 말은 스토너의 머리에 맴돈다.

  전쟁의 기운이 계속 감돌고 있었고 결국 미국이 참전을 선포하자 대학의 많은 학생과 강사들은 군에 입대한다. 매스터스와 핀치 또한 입대하기로 하고 스토너에게 같이 갈 것을 권했으나 그는 놀랍도록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스스로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나 슬론 교수에게 상담을 했고, 슬론 교수는 찬성인지 반대인지 모를 대답을 하며 충고를 하나 한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스토너에게는 이 말이 평생 따를 지침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 순간부터 그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문학에만 인생을 바치게 될 운명으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뒤 매스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3. 이디스와 결혼하고 그레이스가 태어나다.

  전쟁이 끝났다. 스토너는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전임 강사를 계속해 나갔고, 핀치는 보다 늠름해진 모습으로 전쟁에서 돌아왔다. 그는 노교수이자 문리대 학장인 조시아 클레어몬트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점차 학교 내에서의 입지를 다져간다. 그 학장의 집에서 매년 교직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스토너는 그 자리에서 이디스 보스트윅을 만나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디스는 첫 등장부터 속을 알 수 없으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다. 스토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청혼을 거절하진 않고, 또 가끔은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나중에 보면 한 번도 좋아한 적은 없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녀의 부모 또한 스토너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는 눈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결혼을 승낙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디스는 어릴 때부터 요조숙녀로 크도록 강요받았고, 그 시대 상류층의 여인들과 같이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이디스는 그런 환경에서 이미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었고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식을 이디스 집이 있는 세인트루이스가 아닌 컬럼비아에서 올린 것에서도 그런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스토너는 그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사랑이 없었기에 부부관계도 없었고, 조심스레 서로를 대하며 쇼윈도 부부처럼 생활한다. 그렇게 생활한지 3년, 어찌 된 일인지 이디스는 갑자기 아이가 갖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 또한 그녀가 교육받은 것을 행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둘은 사랑 없는 부부관계를 계속한 끝에 예쁜 딸 그레이스를 갖게 된다. 이디스가 꾀병을 부리며 계속 침대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그레이스는 전적으로 아빠 손에서 자라게 된다.

4. 로맥스 교수가 등장하다.

  슬론 교수가 죽었다. 부학장 자리를 맡고 있던 고든 핀치는 공석이 된 영문학과 학과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버드에서 로맥스 교수가 그 자리로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로맥스는 키가 매우 작고 신체장애를 갖고 있어 어릴 적부터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예의 바른 듯한 그의 말투에서는 냉소적인 태도가 묻어났다. 스토너는 어딘지 모르게 매스터스와 닮은, 또 그 자신을 닮기도 한 그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5. 스토너 부부에게 변화가 생기다.

  스토너는 학자로서 점차 발전해 가고 있었다. 그가 낸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면서 그는 학교에서 조교수로서 종신교수로 임용된다. 이디스는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겠다는 심리인지 부모에게 거금을 빌려서 강제로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와중에 스토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이디스의 아버지 또한 파산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이디스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스토너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의 서재에서 착실히 공부를 해 나갔고, 그레이스가 그럴 때마다 와서 작은 책상을 펴고 놀거나 공부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이디스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변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난 달라졌어." 그것은 앞으로의 상황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말 그대로 이디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빠의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그레이스를 서재에 못 들어가게 했고, 마치 자신이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억압했다. 스토너의 서재에 자신의 화실을 만든다며 조그만 방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그는 군소리 없이 자신의 짐을 옮기고, 집이 불편해지자 점점 학교의 공동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스토너는 조그만 반항 같은 것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이디스의 뜻대로 한다. 왜 그랬을까? 비록 그가 그렇게 수동적이긴 하더라도 자신의 길, 학자이자 선생님이기도 한 자신의 사명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을 그렇게 내버려 뒀던 것은 그의 신념과는 모순되는 행동인데, 굳이 변명거리라면 이디스에게 미안해서였을까? 그러나 나중에는 바람도 피운단 말이지. 이 점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6. 위기에 빠지다.

  스토너는 점차 인기 있는 교수가 되어 담당 수업 정원이 다 찰 정도였다. 한 학생이 추가로 받아달라고 신청했는데, 그는 로맥스 교수의 제자인 찰스 워커였다. 그 역시 로맥스처럼 장애가 있었고, 말하는 태도 등에서 로맥스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그 수업에는 강사로 일하고 있는 캐서린 드리스콜이라는 청강생도 있었는데, 스토너는 그녀가 굉장한 학문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발표를 한 번씩 해야 했는데 스토너는 캐서린의 발표를 듣고 이제까지 들었던 발표 중 가장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반면 워커는 발표 날짜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끝까지 미루더니, 결국 자신의 주제가 아니라 캐서린의 발표를 비판하는 식의 연설을 한다. 스토너는 화가 나서 워커에게 원고를 제출하라고 하고, 워커는 자기에게만 불공평하다며 반항한다. 결국 스토너가 그에게 낙제점을 주겠다고 하자 워커는 스토너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갈등이 표면으로 표출된다.

  스토너의 위기가 시작된다. 워커의 석사과정이 끝나 박사과정으로의 진입을 위한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심사위원으로 지도교수, 수업을 맡았던 교수, 그 외 교수 한 명이 참관해야 해서 스토너도 어쩔 수 없이 포함되었다. 처음에는 워커가 대답을 잘하는 듯하여 스토너는 자기가 잘못 판단했나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로맥스가 대답을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토너가 기본적인 것을 질문해도 워커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스토너는 그에게 불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워커의 지도 교수인 로맥스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했지만 스토너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로맥스는 모욕을 당한 것으로 느껴 자신의 모든 권위를 이용해 스토너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워커는 박사과정으로 입학을 하고, 스토너는 다음 학기부터 신임 교수도 받기 싫어할 만한 시간표를 배정받으며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7. 사랑에 빠지다.

  로맥스와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신임 교수들도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스토너는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고립되며 자신의 일에도 회의감을 느낀다. 머리는 멍해졌고 학문에도 열정을 잃었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은 사랑이었다. 캐서린은 그에게 논문 지도를 부탁했고, 그는 그 논문을 보며 다시금 열정이 살아났으며 그 여자도 점차 사랑하게 되었다. 지도를 핑계로 캐서린의 집에 드나들던 스토너는 자신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다잡지만 캐서린의 마음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불타오르는 사랑을 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충만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결국 둘은 결말을 함께 볼 수는 없는 사이였다. 그들도 그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 캐서린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을 정돈하고, 천천히 세심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벽과 벽난로 사이의 틈새에 끼워놓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물건을 하나 남겨두고 싶어서요. 이곳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물건으로. 바보 같죠?"'

  그들은 시련이 다가올수록 더욱 단단해졌으나, 로맥스의 복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로맥스는 핀치를 통해 캐서린을 해고시켜야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둘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음을 알았고, 캐서린은 매우 착하게도 스스로 (멍청하고 소심한)스토너의 곁을 떠난다.

8. 과거는 되풀이된다.

  캐서린이 떠난 뒤 평생 처음으로 병을 앓은 스토너는 확 늙어버린다. 그는 더욱더 세상에 무심해졌고, 그로 인해 이디스가 잔소리를 해대는 집에서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다시금 스멀스멀 퍼졌고, 그는 과거 슬론 교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그레이스는 엄마의 억압에 짓눌리면서 자라왔고 엄마의 바람대로 인기가 많은 아이가 되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자 덜컥 임신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애 아빠를 데리고 왔다. 이디스의 뜻대로 둘은 결혼을 하지만 애 아빠는 전쟁이 발발하여 참전을 하고 곧 전사한다. 그레이스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중에 말하길 "제 생각에 저는 일부러 임신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걸 몰랐지만요. 제가 여기서 도망치는 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저한테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원래 입영 날짜보다 6개월 먼저 입대해버린 거예요. 그저 도망치고 싶어서. 제가 그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될 거예요." 하고 고백한다. 그레이스는 알코올 중독이었는데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9. 죽음을 맞이하다.

  스토너는 어느덧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전혀 늙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거울 앞에 비친 자기 모습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정교수로 승진하고 퇴임하라는 (핀치를 통한)로맥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몇 년 더 강의를 하고 싶었지만, 암 진단을 받고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이미 전이가 워낙 되어버린 탓에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책을 손에 들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스토너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의 삶은 성공작일까 실패작일까? 작가 존 윌리엄스는 다수의 독자가 스토너의 삶에 슬픔을 느끼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스토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스토너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다고 되돌아본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도 행복을 느끼며 삶을 마감한다.

  스토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복잡하다. 그레이스를 포기하고 캐서린을 떠나게 두는 모습은 분명 답답하고 심지어 이기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에게 애정과 같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건 그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찍소리 한번 못할 정도로 소심하고 심지어 무심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착한 심성과 자신의 사명을 고수하려고 하는 신념, 여기서 나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이디스를 밉게만 볼 수 없는 것도 비슷하다. 그레이스를 망치고 스토너를 괴롭히지만 그녀가 어렸을 때 겪은 억압, 그것으로부터의 회피를 위한 결혼, 결국 스스로는 이룬 것 없이 늙어버린 모습. 전체적인 인생을 봤을 때 그녀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빨간 책방'에서 이 책을 다 읽기가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반대였다. 웬만한 소설보다 흡입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책 속 장면들이 아른거린다. 캐릭터들이 가진 입체성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스토너가 죽기 전에 삶을 되돌아보면서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단은 슬프면서 아름답다.

  정말 오랜만에 오랫동안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을 읽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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