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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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인기도서 중 하나로 알고 있었기에 언젠간 읽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방송에서 들은 바로는 이 책은 1965년에 미국에서 발간되었는데 인기가 없었고, 2000년 대 와서야 한 출판사에서 재출간을 했는데 역시 10년간 4천 부 정도만 팔렸다고 한다. 근데 그다음 해에 유럽, 특히 네덜란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20만 부 정도가 팔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것이 몇 개 있는데 우선 독자에게 친절하다. 시간이나 공간을 뒤죽박죽 섞는 방식의 서스펜스를 유발하지 않는다. 첫 두 장을 제외하고는 시간이 역행하지 않으며, 공간도 극히 제한적이라 상황이 눈에 잘 그려진다. 심지어 등장인물도 많지 않아 인물 간 관계를 파악하기도 쉽다. 자신감이라고 할까, 정공법으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두 번째는 몇 안 되는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작용해서 긴장을 유발한다. 다양한 평면적 캐릭터를 등장시키기보다는 소수 캐릭터의 다양한 내면을 드러내 보다 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왜 우리도 테레사 같을 때도 있고 사이코패스 같을 때도 있잖은가? 세 번째는 지극히 잔잔한 소설이다. 큰 사건이랄 게 일어나지 않고 주변에서 흔히 있을 법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래서 다양한 볼거리와 신선한 이야기를 찾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에서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는 이유는 주인공이 삶을 살아내는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데 있을 것이다. 분명 답답하고 화가 나고 비판받을 부분도 있지만 그가 하나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은 시대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닿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문학에 빠지다.

  시대는 1900년대 초, 미주리 주 분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농업을 배우기 위해 미주리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어머니 친척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숙식을 해결하면서 학교 공부를 그럭저럭해 나간다.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된 스토너는 필수과목인 영문학 개론을 듣게 된다. 강의를 맡은 슬론 교수는 50대 남자로 조금은 냉소적인 인물이었다. 스토너는 이 과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업 도중 슬론 교수가 읽어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듣고 이에 사로잡혀 버린다. 마치 아이처럼 세상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고 감각이 예민해진다. 다음 학기부터는 아예 농과대학 커리큘럼을 버리고 문학 수업들을 수강한다. 그 뒤 2년의 시간은 ‘익숙하게 흐르지 않고 발작처럼 뚝뚝 끊겨 있었다. (…) 그가 자신을 의식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덧 졸업이 다가왔는데도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농장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을 마음에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루는 슬론 교수가 사무실로 불러서 찾아갔고, 그는 스토너에게 대학에 남아 교육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결국 스토너는 졸업식에 온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지 않고 학교에 남는다.

2. 문학과 세상 중에서 문학을 선택하다.

  스토너는 슬론 교수가 마련해 준 강사 자리를 역임하며 학업을 계속해 나간다. 평생 지기 두 명도 만나게 되는데 지적이고 냉소적인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사람 좋은 고든 핀치였다. 하루는 매스터스가 “대학은 우리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그 말은 스토너의 머리에 맴돈다.

  전쟁의 기운이 계속 감돌고 있었고 결국 미국이 참전을 선포하자 대학의 많은 학생과 강사들은 군에 입대한다. 매스터스와 핀치 또한 입대하기로 하고 스토너에게 같이 갈 것을 권했으나 그는 놀랍도록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스스로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나 슬론 교수에게 상담을 했고, 슬론 교수는 찬성인지 반대인지 모를 대답을 하며 충고를 하나 한다.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는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으면 안 되네. 인류가 겪은 전쟁과 패배와 승리 중에는 군대와 상관없는 것도 있어. 그런 것들은 기록으로도 남아있지 않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때 이 점을 명심하게."

  스토너에게는 이 말이 평생 따를 지침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쟁에 참여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 순간부터 그는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문학에만 인생을 바치게 될 운명으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뒤 매스터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3. 이디스와 결혼하고 그레이스가 태어나다.

  전쟁이 끝났다. 스토너는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전임 강사를 계속해 나갔고, 핀치는 보다 늠름해진 모습으로 전쟁에서 돌아왔다. 그는 노교수이자 문리대 학장인 조시아 클레어몬트의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점차 학교 내에서의 입지를 다져간다. 그 학장의 집에서 매년 교직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스토너는 그 자리에서 이디스 보스트윅을 만나 첫눈에 반해버린다. 이디스는 첫 등장부터 속을 알 수 없으며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이다. 스토너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청혼을 거절하진 않고, 또 가끔은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나중에 보면 한 번도 좋아한 적은 없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녀의 부모 또한 스토너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진 않는 눈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결혼을 승낙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이디스는 어릴 때부터 요조숙녀로 크도록 강요받았고, 그 시대 상류층의 여인들과 같이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이디스는 그런 환경에서 이미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었고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식을 이디스 집이 있는 세인트루이스가 아닌 컬럼비아에서 올린 것에서도 그런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어찌 됐든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스토너는 그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다. 사랑이 없었기에 부부관계도 없었고, 조심스레 서로를 대하며 쇼윈도 부부처럼 생활한다. 그렇게 생활한지 3년, 어찌 된 일인지 이디스는 갑자기 아이가 갖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 또한 그녀가 교육받은 것을 행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둘은 사랑 없는 부부관계를 계속한 끝에 예쁜 딸 그레이스를 갖게 된다. 이디스가 꾀병을 부리며 계속 침대에서만 생활했기 때문에 그레이스는 전적으로 아빠 손에서 자라게 된다.

4. 로맥스 교수가 등장하다.

  슬론 교수가 죽었다. 부학장 자리를 맡고 있던 고든 핀치는 공석이 된 영문학과 학과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버드에서 로맥스 교수가 그 자리로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로맥스는 키가 매우 작고 신체장애를 갖고 있어 어릴 적부터 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예의 바른 듯한 그의 말투에서는 냉소적인 태도가 묻어났다. 스토너는 어딘지 모르게 매스터스와 닮은, 또 그 자신을 닮기도 한 그에게 묘한 끌림을 느낀다.

5. 스토너 부부에게 변화가 생기다.

  스토너는 학자로서 점차 발전해 가고 있었다. 그가 낸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면서 그는 학교에서 조교수로서 종신교수로 임용된다. 이디스는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겠다는 심리인지 부모에게 거금을 빌려서 강제로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 와중에 스토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이디스의 아버지 또한 파산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이디스가 친정에 가 있는 동안 스토너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의 서재에서 착실히 공부를 해 나갔고, 그레이스가 그럴 때마다 와서 작은 책상을 펴고 놀거나 공부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뒤 이디스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변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난 달라졌어." 그것은 앞으로의 상황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선전포고였다.

  말 그대로 이디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빠의 작업에 방해가 된다며 그레이스를 서재에 못 들어가게 했고, 마치 자신이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억압했다. 스토너의 서재에 자신의 화실을 만든다며 조그만 방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그는 군소리 없이 자신의 짐을 옮기고, 집이 불편해지자 점점 학교의 공동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스토너는 조그만 반항 같은 것을 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이디스의 뜻대로 한다. 왜 그랬을까? 비록 그가 그렇게 수동적이긴 하더라도 자신의 길, 학자이자 선생님이기도 한 자신의 사명을 고수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양보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을 그렇게 내버려 뒀던 것은 그의 신념과는 모순되는 행동인데, 굳이 변명거리라면 이디스에게 미안해서였을까? 그러나 나중에는 바람도 피운단 말이지. 이 점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6. 위기에 빠지다.

  스토너는 점차 인기 있는 교수가 되어 담당 수업 정원이 다 찰 정도였다. 한 학생이 추가로 받아달라고 신청했는데, 그는 로맥스 교수의 제자인 찰스 워커였다. 그 역시 로맥스처럼 장애가 있었고, 말하는 태도 등에서 로맥스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그 수업에는 강사로 일하고 있는 캐서린 드리스콜이라는 청강생도 있었는데, 스토너는 그녀가 굉장한 학문적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발표를 한 번씩 해야 했는데 스토너는 캐서린의 발표를 듣고 이제까지 들었던 발표 중 가장 훌륭했다고 칭찬했다. 반면 워커는 발표 날짜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끝까지 미루더니, 결국 자신의 주제가 아니라 캐서린의 발표를 비판하는 식의 연설을 한다. 스토너는 화가 나서 워커에게 원고를 제출하라고 하고, 워커는 자기에게만 불공평하다며 반항한다. 결국 스토너가 그에게 낙제점을 주겠다고 하자 워커는 스토너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갈등이 표면으로 표출된다.

  스토너의 위기가 시작된다. 워커의 석사과정이 끝나 박사과정으로의 진입을 위한 시험을 치러야 했는데 심사위원으로 지도교수, 수업을 맡았던 교수, 그 외 교수 한 명이 참관해야 해서 스토너도 어쩔 수 없이 포함되었다. 처음에는 워커가 대답을 잘하는 듯하여 스토너는 자기가 잘못 판단했나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로맥스가 대답을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토너가 기본적인 것을 질문해도 워커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스토너는 그에게 불합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워커의 지도 교수인 로맥스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했지만 스토너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로맥스는 모욕을 당한 것으로 느껴 자신의 모든 권위를 이용해 스토너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워커는 박사과정으로 입학을 하고, 스토너는 다음 학기부터 신임 교수도 받기 싫어할 만한 시간표를 배정받으며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7. 사랑에 빠지다.

  로맥스와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신임 교수들도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스토너는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고립되며 자신의 일에도 회의감을 느낀다. 머리는 멍해졌고 학문에도 열정을 잃었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은 사랑이었다. 캐서린은 그에게 논문 지도를 부탁했고, 그는 그 논문을 보며 다시금 열정이 살아났으며 그 여자도 점차 사랑하게 되었다. 지도를 핑계로 캐서린의 집에 드나들던 스토너는 자신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다잡지만 캐서린의 마음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불타오르는 사랑을 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충만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결국 둘은 결말을 함께 볼 수는 없는 사이였다. 그들도 그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에 캐서린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을 정돈하고, 천천히 세심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벽과 벽난로 사이의 틈새에 끼워놓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물건을 하나 남겨두고 싶어서요. 이곳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물건으로. 바보 같죠?"'

  그들은 시련이 다가올수록 더욱 단단해졌으나, 로맥스의 복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로맥스는 핀치를 통해 캐서린을 해고시켜야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둘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음을 알았고, 캐서린은 매우 착하게도 스스로 (멍청하고 소심한)스토너의 곁을 떠난다.

8. 과거는 되풀이된다.

  캐서린이 떠난 뒤 평생 처음으로 병을 앓은 스토너는 확 늙어버린다. 그는 더욱더 세상에 무심해졌고, 그로 인해 이디스가 잔소리를 해대는 집에서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다시금 스멀스멀 퍼졌고, 그는 과거 슬론 교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그레이스는 엄마의 억압에 짓눌리면서 자라왔고 엄마의 바람대로 인기가 많은 아이가 되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자 덜컥 임신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애 아빠를 데리고 왔다. 이디스의 뜻대로 둘은 결혼을 하지만 애 아빠는 전쟁이 발발하여 참전을 하고 곧 전사한다. 그레이스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중에 말하길 "제 생각에 저는 일부러 임신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걸 몰랐지만요. 제가 여기서 도망치는 걸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저한테 필요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원래 입영 날짜보다 6개월 먼저 입대해버린 거예요. 그저 도망치고 싶어서. 제가 그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될 거예요." 하고 고백한다. 그레이스는 알코올 중독이었는데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9. 죽음을 맞이하다.

  스토너는 어느덧 정년을 앞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 전혀 늙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거울 앞에 비친 자기 모습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정교수로 승진하고 퇴임하라는 (핀치를 통한)로맥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몇 년 더 강의를 하고 싶었지만, 암 진단을 받고 그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이미 전이가 워낙 되어버린 탓에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책을 손에 들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스토너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의 삶은 성공작일까 실패작일까? 작가 존 윌리엄스는 다수의 독자가 스토너의 삶에 슬픔을 느끼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스토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스토너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다고 되돌아본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도 행복을 느끼며 삶을 마감한다.

  스토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복잡하다. 그레이스를 포기하고 캐서린을 떠나게 두는 모습은 분명 답답하고 심지어 이기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에게 애정과 같은 연민을 느끼게 되는 건 그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찍소리 한번 못할 정도로 소심하고 심지어 무심하지만, 내재되어 있는 착한 심성과 자신의 사명을 고수하려고 하는 신념, 여기서 나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게 된다. 이디스를 밉게만 볼 수 없는 것도 비슷하다. 그레이스를 망치고 스토너를 괴롭히지만 그녀가 어렸을 때 겪은 억압, 그것으로부터의 회피를 위한 결혼, 결국 스스로는 이룬 것 없이 늙어버린 모습. 전체적인 인생을 봤을 때 그녀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빨간 책방'에서 이 책을 다 읽기가 힘든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반대였다. 웬만한 소설보다 흡입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책 속 장면들이 아른거린다. 캐릭터들이 가진 입체성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스토너가 죽기 전에 삶을 되돌아보면서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단은 슬프면서 아름답다.

  정말 오랜만에 오랫동안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을 읽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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