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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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부터 20대까지만 해도 영화를 찾아서 보고 영화잡지도 매주 사보면서 영화에 열을 올렸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데이트가 아니면 극장에 가지 않고, 가끔씩 VOD로 보는 영화들도 무겁지 않는 걸로만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영화는 보는 시간은 탐구하는 시간에서 쉬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래도 종종 진지한 영화를 진지하게 감상하고 싶다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너무 멀리 와 버린 느낌이어서 어디부터 찾아가야 할지 모르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저자는 영화 유튜버라고 한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유튜브를 즐겨 보지 않는 편이라 이 책에서 저자 이름을 처음 들었다. 저자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나니 영화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저자의 깊은 지식이 너무나도 감탄스러워서 빨려 들어가듯 책을 읽게 되었다. 철학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철학자 이름과 대표되는 이론 이름이 전부이지만, 영화 속에서 철학 이론을 얘기하니 대표 철학자들의 책을 사서 볼까 하는 독서중독자의 증상도 발현되려고 했다.

목차 중에 아직 보지 못한 영화는, 보지 않은 채 책을 읽기가 아까워 나중을 위해 남겨두기까지 했다.


책의 내용 중 몇 작품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1. <기생충> 속의 변증법

변증법. 정-반-합. 내가 아는 건 이게 전부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보면 주인-노예-주인-노예-...의 끝없는 투쟁과 발전, 통합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주인은 관념적 존재, 노예는 자연적 존재. <기생충>에서 최초의 주인은 박 사장네 가족이고, 노예는 기택네 가족이다. 하지만, 박 사장네는 기택네 식구들의 노동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노예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내가 설명하니까 어렵게 들리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렇구나- 끄덕끄덕하며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진정한 기생충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궁금하면 한 번 읽어보시길!


2. <그래비티> 속 생에 대한 의지

사실 <그래비티>는 본 지 7년이 지난 영화라서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책의 설명을 통해 기억을 다시 소환하며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그래비티>에서 쇼펜하우어의 '체념'을 비판하며 생에의 의지의 손을 들어준다.

주인공 라이언은 딸을 잃은 슬픔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딸에 대한 기억을 붙들고 우주로 나간다. 작업 중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다른 우주비행사 맷을 만나고 또 다른 위험 속에서 맷을 잃게 된다. 그때, 맷이 말한다.

"라이언,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결국 라이언은 생의 의지를 다시 찾으면서야 비로소 딸을 놓아줄 수 있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생이 곧 고통인 것은 끊임없는 욕구가 집착 때문이라고 했다.

곧, 집착을 벗어난다는 건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집착을 놓는다는 것, 쉽지 않을 일이지만 놓지 않으면 지옥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지 않으면 인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3. <그녀> 속의 空

인공지능과의 연애를 보여주는 영화 <그녀>에서 저자는 놀랍게도 불교의 공空을 말한다.

비어있음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음뿐만 아니라 채워질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집착을 버리고 가능성을 가지려면 비워내야 하는데 비워내기의 시작은 무아無我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사만다는 공空에서 시작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확대되고 확장되어 간다. 전 부인에 대해 그리고 사만다에 대해 집착하던 테오도르는 결국 집착을 버리고 공空을 실천하면서 자유로워진다.

내 안에서 비워낸 '나'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해석을 보는 재미를 알 것이다.

철학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해석을 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철학을 살짝 바른 영화 얘기로 모임에서 지적 허영심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옷의 색이 바뀌었다는 것은 테오도르가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P283

중력이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고통 내지는 괴로움이라면, 우리는 매일같이 그 중력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 P159

집착은 버리거나 잊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이고, ‘놓아주는 것‘에는 우리의 주체적인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 P160

봉준호의 세계에서 엔딩은 언제나 뒷맛을 쓰게 남깁니다. 그의 세계에 내재된 반대자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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