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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김세희 <드림팀> - 균형 있는 삶을 위하여
2018년 소설가 50인이 선정한 올해의 소설은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과 김봉곤 작가의 <여름, 스피드>라는 책이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10-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고 <여름, 스피드>는 동성애자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렇듯 최근 한국 현대 소설을 주목해보면 여성, 동성애자 즉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박상영, 김봉곤, 최은영, 박민정이 소수자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작가들의 대표라고 생각한다. 왜 이러한 경향이 생겼을까. 최근 들어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인가? 여성인권신장에 모두가 뜻을 모으기 때문인가? 다양한 의문이 든다.
이런 작품과 작가들 속에서 내가 소개하려는 작품은 얼마 전 첫 소설집을 낸 김세희 작가의 <드림팀>이라는 작품이다. <가만한 나날>이라는 소설집 속에 담긴 <드림팀>은 워킹 맘의 인생을 보여준다. 직장 선배인 임은정은 후배로 들어온 선화에게 사회에서 당한 불합리와 부조리를 선화에게 전달하며 자존감을 빼앗는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같은 여성으로서 도와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지만 선화는 기분이 나쁘고 임은정이라는 사람 자체를 꺼리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임은정의 의도는 후배로 들어온 선화가 상처받을까봐, 자신처럼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낄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들어 놓는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날 조금 짧은 바지를 입었다고 꾸중을 내고 자신의 팀이 아닌 다른 팀원들에게는 무안할 정도로 까칠하게 대한다. 선화는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여성이라는 한계를 짓는 임은정은 그 한계를 선화에게 까지 주입시키며 한계를 정당화하려 한다. 임은정은 퇴사하려는 선화에게 다른 데 가면 더 힘들 거라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근데 자기도 알잖아, 한국 사회가 그렇잖아.”
그녀는 항상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했다. 또는 사회생활이 그렇잖아. 사람들 시선이 그렇잖아, 남자들이 다 그렇잖아, 한국 사회에서 아직 여자는…….
워킹 맘으로서의 삶을 내가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삶을 보았을 때 그 노고와 희생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다. 직장 내에서도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있고 가정 내에서도 역할이 있다. 두 가지 과업을 행할 때 사회는 여성에게만 잔혹한 잣대를 제시한다. 회사 내에서 육아휴직은 곧 퇴사를 뜻하기도 하며 주변의 눈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빠가 가사를 하고 엄마가 직장에 나가면 ‘어린 애 놔두고 일 나가는 냉혈한 여자’이라는 평을 받고 그 반대의 상황이면 ‘아내, 자식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는 남자’가 된다. 목표가 뚜렷하면 야망 있고 기센 여자가 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부담감과 불평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설 속 임은정은 그 부조리함을 회사에 사회에 토로하지 않는다. 거대 세력에 무력해진 개인은 또 다른 개인에게까지 무력함을 전가할 뿐이다. 소설에서 임은정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문제로 회사를 잠깐 비운 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야근을 하며 회사에 붙어 있으려 한다. 누군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시키지 않았지만 임은정은 스스로 채찍질하며 엄마로서의 임은정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워킹 맘의 삶은 회사에서도 치이고 가정에서도 치인다. 자신의 자리와 위치가 단단하게 고정 되어 있지 않고 주변에 의해 자꾸 흔들리며 휩쓸린다. 위태로운 혼자만의 싸움이 지속 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워킹 맘’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워킹 대디’라는 말은 없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아빠’가 기본 값으로 지정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칭하는 용어를 만들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언어가 주는 힘은 크다. ‘워킹 맘’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쓰다보면 여성들을 그 단어 안에 가둬두는 듯하다. 일을 하는 여성이라는 한계를 만들어 그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고 부조리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점점 대한민국에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늘어나고 있으며 비혼, 비출산을 신념으로 삼는 여성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은 여성에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이 준 것이다. 일은 일대로 육아는 육아대로 서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균형을 잡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라는 이유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자)’가 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의 직장, 가정 사이의 균형 있는 삶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