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남자는 없다 - 혐오사회에서 한국 남성성 질문하기 질문의 책 15
손희정 외 지음,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엮음 / 오월의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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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남(충)론을 진지하게 상대해 줘야 한다는 것 자체가 헬조선 최대의 비극 중 하나이고, 그만큼 이 앓은-소리가 정면위반하고 있는 방법론의 기본들도 도대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단 소위 ’보편성 허구’를 격파하려면 무엇보다 ’엄격하게 통제된 동일조건[1] 하에서!!’ 대조구와의 치밀하고 객관적인 비교연구가 있어야 하는 게 그 방법론 기초 중 최소기초인데 (’카더라’류의 유일한 ’몇’ 개인적 경험 전언--전문용어로는 ’소문’--들을 넘어) 학술적으로 유의미한 한남충 담론의 대조구는 애시당초에 아예 없거나 기껏해야 할리퀸문고에서나 본 상상물들 아닌가!!


그리고 이론적/인식론적 반인간주의에 대한 기초적 이해는 고사하고 어떻게 보편주체의식을 문제화할 때의 ’보편성’ 개념과 한남, 양남의 ’공통성/유사성’ 개념 하나조차도 제대로 구분을 못하고 헤매시는지...
마치 자신들에겐 어떠한 식민성도 사대주의도 없다는 듯한 완전한 나르시시즘적 ’예외성’ 상상을 통해 보편적 세계주체(되기)로 비약하는 그 뻔뻔한 허위의식이야말로 바로 그 문제의 보편성 ’참칭’행위의 전형이다. ’타인’의 식민성(만)을 비판하는 식민지 노예 기생충들--더구나 한남충을 비판하는 한남충( 특히 필진)들--이야말로 일찌기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께서 시전해 주시고 쿠르트 괴델과 버트런드 럿셀 등이 충분히 근본적으로 비판해 마지 않았던 그 자기포함명제계[2]를 붕괴시키는 예외적 보편주체되기 광대짓을 아직까지 반복해대고 있는 에피고넨 바보들에 다름아닐 뿐이다.

게다가 이 예외성 환상 때문에 식민성에 접근하는 관점조차도 자신들은 마치 조선총독부 부녀과 소속이라도 된다는 듯이 식민사관으로 흑역사 훑기만 고스란히 재현해대고 있을 뿐이고!!
양남들 뫼시고 헬조선 끝장내어 한남충들 개조하자??
그게 바로 이완용의 사상 본류다!!
그동안 갖은 모욕을 당하며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 매국노의 대부, 민족의 원수로만 매도되어온, 당신들의 진정한 정신적 뿌리이신 분 이름이니까 똑똑히 기억해두고 웬만하면 정신을 좀 똑바로 차려라.
엽전들→죠센징→Gooks→한남충론으로 형태만 변해왔을 뿐 (근대성과 식민성에 대한) 이 지긋지긋한 뿌리와 이파리들의 핵심적 공통점은 다름아닌 상황분석에서의 그 어이없는 丙申性에 있으니까!!
이런 현상들을 보면 100년 전 구한말 헬조선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말이 다시 한번 모골을 송연케 한다.

(정말 남성성 자체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처럼 느껴지거든 잔학무도한 폭력성의 화신인 제국주의 양남들의 무시무시한 잔혹사와 흑역사들도 같이 연구해서 차라리 ’남성성과 남성 homosociality의 세계체계’ 같은 거라도 이론화를 해보시든가. 그럼 최소한 근시안의 국지이론에 갇혀 애꿎은 식민지 남성성만 물고 늘어지며 갓양남 찬양론에 군불을 지펴주는 짓거리라도 멈출 수는 있을 테고 거룩한 뿌리이신 분으로부터 한 걸음, 단 반 발짝이라도 더 나아질 수도 있을 테니... . 또 덤으로 homosociality 이론이 얼마나 현실기반이 취약하고 허구적인 소설인지도 깨달을 수 있게 될 테고... .)



2.
더구나 이상은 그 방법론적 전제들을 그나마 인정해 줬을 때 가능한 대표적 비판들이고, 전제들 자체를 재검토하면 이 외에도 ’구조’라고는 깡그리 무시한 19세기 낭만적 제국주의 인종/인류학의 방법론적 인간주의 답습에다, ’한국’ ’남성’으로 모든 개체를 단순화, 일반화해 동시대 주체들 간의 대립과 갈등, 저항, 내전 등등으로 끊임없이 나타났던 무수히 다양한 대항 품행과 행위들은 모두 삭제시킨 채 전혀 연속성 없는 시대별 특정 집단들의 흑역사들을 전칭화한 단일 범주 하나에 모두 누적시키면서, 단순열거에만 그친 그 전칭범주의 개개 흑역사들이 어떻게 현재 개별 주체들의 심리와 행동에까지 보전되어 지금 문제들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기제’는 전혀 언급조차도 없다는 등등등의 비판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3.
이 외에도 계속 지적해 온 이런 책들의 또다른 반복되는 고질적 문제들 중 하나인 무책임하고 전혀 근거도 없는 인상비평들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대표적 일례로 한겨레신문에 실린 독자들의 비판 댓글들 중 하나만 관련기사 부분과 함께 인용한다.

기사 :
"([그런 남자는 없다] 중)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폐소공포증 시대의 남성성’이란 글에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에 나오는 이순신(최민식 분)이 “전형적인 영웅의 모습이 아닌 늙고 지친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데 주목한다. 그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풍파를 견뎌온 아버지만이 마지막으로 이 파국의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상상을 펼쳐 보인다”고 지적한다."


댓글 :
"...먼저 <명량>을 보자. 명량의 배경은 이순신이 파직되고 칠천량해전이 일어난 직후다. 당연히 쇠약한 중년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사실에 근거한 표현이란거다. 이를두고 격동의 세월과 아버지 운운하는 건 그냥 정신병적인 망상에 가깝다. 저자는 이순신과 함께한 수많은 민중들과 군사들은 눈에 담지도 않았나보다 전형적인 끼워 맞추기이다."

(원문보기:
http://m.hani.co.kr/arti/culture/book/810153.html
)





# 사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와 [그런 남자는 없다]는 제목을 바꿔 달고 있으며,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는 한남충론에 편승해보려는 출판사의 욕심으로 달게 된 제목으로 보일 만큼 그런 남자는 없다고 주장하는 논조도 제법되고 양론 사이에서 분열적/해리--일명 다중인격--적으로 동요하고 있는데 반해, 본서 [그런 남자는 없다]야말로 그럴싸한 변명을 제목으로 훔쳐 달고 위장한 채 독자들을 기만하면서 본격적으로 저질페미니즘 한남충론의 이론적 지반이 한번 되어보려 하고 있기에 이 책에 비판을 집중하는 것이며, 필진보다는 ’보편성 참칭’ 운운하면서 아직도 한남충론을 고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질페미 잔당들 및 그 주변 友중을 더 직접적으로 겨냥한다.



(저질 페미니즘을 ’전적으로’ 옹호해 주지 않으면 모두 안티페미니즘으로 매도하는 저능적 이분법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각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이 동일조건이란 저질페미들 사이에 데이트경험담이랍시고 떠도는 사실확인 전혀 안된 소문들, 그러나 대개는 할리퀸, 심지어 야동들의 한 장면을 베낀, 그나마도 서로 볼 꼴 못볼 꼴 다 보게 되는 장기연애담은 전무한 One-night-stand story들을 모든 걸 양보해서 사실로 가정한다 하더라도 그 동일한 한녀의 뼛속 깊은 식민성과 사대주의 때문에 동일장면에서 한남과 양남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이중적 행태를 보이기 일쑤이므로 유의미한 자료로 채택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엄밀한 학술적 동일조건이라는 사실조차 알 리가 없다.

[2] ¶ 특히 Kurt GOEDEL의 self-reference, self-representation system, recursive structure 개념과 이 system에서의 필연적 incompleteness, undecidability 이론 등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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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a 2017-11-20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소 불손한 어조에 불쾌하셨던 분들은 이 글을 쓰는 내내 도저히 진지해지기 어려웠기 때문임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