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법
정준수 지음 / 플럼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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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장바구니에 담은 책이었다. 남미여행기....거기서 거기고 배낭여행 꽤나 한 사람이면 그래도 좀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솔직히 광고나 리뷰에 혹해서 샀다가 후회막심인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다 반값에만 팔아도 나는 중소기업 하나 차릴 수가 있다. 

아.................. 

읽고나니 참.............. 이거.....

빌브라이슨을 참 좋아하지만 다 재밌거나 다 알토란 같은 문장들이라거나 다 수준높은 글들이라곤 할 수 없다.  분명히.

그런데 이 책은 뺄 게 하나도 없다..... 알랭드보통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썼달까.....

저자는 전기공학을 전공한 일반인이라는데..........정말 여행작가니 하며 책내는 아무개들, 신춘문예 정도밖에 안되면서 글쓰네 하는 삼류글쟁이들은 접시물에 코박고 반성해야될 것 같다. 

몇개만 골라서 추천할만한 문단을 쓰기가 힘들 정도다. 너무 많다.  그리고 사실 문장보다도 분석과 사유가 더 빛나는 책이기도 하다. 잘난척하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콕 박히는 사유, 너무 호들감스렇거나 궁상맞지도 않으면서 공감가게 하는 이 글쓰기가 사실 흔한 게 아니다.

 

그래도 무릎을 탁 치게한 몇문장만 무작위로 추려본다면....... 

 

 

....이 지구상에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보다 우리를 부러워하는 나라가 훨씬 많다. 단지 한국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아주아주 많다.... 

(반면)여행지의 현지인들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부자나라지만, 다른 여행자들의 출신국가에 비교하면 한국은 "못사는 나라"가 맞다. .....바꿔말하자면, 세계여행을 할수 있는 나라 중 한국은 제일 못사는 나라인 셈이다. 

.....메신저에 등록된 친구의 수와 휴대전화 문자함의 메시지 수가 나의 인간관계를 평가해준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 하지만 옷장안에 걸린 옷은 많아도 항상 입는 옷만 입게되는 것처럼..... 

일상에서는 새로 알게된 사람 10명중 3명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면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10명 중 6명 정도가 맘에 드는 정도의 차이랄까.......... 같은 여행하는 입장이라면 실제로 만나본 적 없던 게이와도 친구가 될구 있고,머리벗겨진 아저씨와도 알랭드보통의 책을 가지고 남녀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울수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편안함과 물가의 공식(dXc=N) ) 

여행지에서 '쾌적함 혹은 안전함' 과 '물가나 비용'사이에는적절한 비례관계가 있어서..... 버스 여행중 내 배낭이 사라질 걱정을 덜어내신 대신, 여기 칠레에선 훨씬 더 비싼 물가를 감내해야하는 것이다. 

......d= 정신없음, 더러움의 지수  

      c=물가 

      N=일정한 상수 

따라서 인도는 D=100, C=1 , 노르웨이는 D=1, C=100 

 

.....여행자의 감상이란 아주 단순하고 편향되어 내신, 수능, 면접을 모두 잘해야 명문대에 갈 수있는 대입전형과는 달리 어느 조건에서 과락되지만 않으면, 대체로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법이다. 여행이 끝나고 바래진 흔적들만 남게 되면 포토샵처럼 고치고 덧칠되는 기억 속의 영상들. 같은 곳을 여행한 다른 사람의 멋진 사진이나 이야기를 보면서 내 기억도 닮아간다.... 

되도록 좋은 기억만 남기고 상처를 덜받기 위한 기억의 건강한 메카니즘.  행복을 위해 정확성을 희생하는 것이다. 

 

에이, 이런 조각만 읽어선 참맛을 느낄 수가 없다. 하여간 이 책은 남미에 대한 정보만 얻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읽어도 "양서'라고 느낄만한 책이다.  저자의 무리하거나 같잖은 욕심때문에 나온 어중이떠중이 여행기들에 질린 사람이라면 눈을 싹 정화시켜줄 것이다. 

아! 사진...이것도 만만치 않다. 일반인이 이정도 찍는 게 얼마나 흔하지는 나도 모르지만 사진 역시 신선했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눈썰미의 문제다.

....이 책을 안 사더라도 페이지 222, 223쪽- 발칙하게 근사하다-은 한번이라도 서점에서 펴볼 것을 권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내 환상은 이 사진 한장으로 생겼다.  

지금까지 숱한 남미여행기, 책을 봤지만 아무도 "오페라극장을 개조한 서점"-이런 걸 이렇게 콕 집어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는.

하여간 이 책은, 배낭여행을 갔다와 아직도 몸살을 앓고 잇는 대부분의 20-30대들에게 보내는 헌사와도 같다. 꼭 여행기란 틀을 원하지 않아도, 논리적이면서 분석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된 에세이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강추 한방 날린다. 

 이 저자의 다음 책을 보고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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