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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부메의 여름' 이라는 제목부터 확 눈길을 끄는 이 작품은, 1994년에 간행된 교고쿠 나츠히코의 데뷔작입니다. 책의 크기는 작지만 페이지수가 두툼하고, 표지가 너무 아름다워 한눈에 들어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네요. 표지를 보면 여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뒷모습인데, 그것을 자세히보면 한 마리 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그것을 발견하고 어찌나 놀랐던지.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드는 표지입니다.
미스터리를 좀 읽었다-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고쿠 나츠히코라 하면 일단 추리인가 호러에 가까운 요괴 소설인가 싶은 교고쿠도 시리즈와 그 시리즈에서 등하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이 유명합니다. 교고쿠도 시리즈는 지금까지 우부메의 여름 - 망량의 상자 - 광골의 꿈 - 철서의 우리 이렇게 네개가 한국에 번역되었습니다. 모두 두께와 내용이 만만찮은 소설이죠. 시리즈의 제목을 차근차근 보면 우부메, 망량, 광골, 철서 등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들은 모두 요괴의 이름으로,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제목과 요괴를 던져준 것 같지만 읽다보면 제목이 이래서 이렇게 된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으며 즐겁게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아까도 말했던 장광설을 넘고, 호러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기묘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독자만이 말이죠.
이 시리즈에서 화자는 찌질함과 우울함을 동시에 갖춘 세키구치라는 소설가이고, 그의 친구인 고서점상 교고쿠도가 탐정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과거의 장면을 볼 수 있는 제멋대로 탐정 에노키즈 레이지로와 단단해 보이는 외양을 지닌 기바 형사, 친척이라도 죽은 마냥 시무룩한 얼굴의 오빠와는 달리 씩씩하고 귀여운 교고쿠도의 여동생 아츠코까지 개성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교고쿠도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어차피 뒷맛이 안 좋을 거라며 사건에 연관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사건에 관여하여 탐정이자 붙은 요괴를 떼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교고쿠도가 사건을 해결하긴 하나 결국 사태는 벼랑끝으로 치닫는다고 해야할까요.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이 사건을 해결하긴 하나 결국 범인까지 자살로 몰고가는 사태를 보는 것 같은 미묘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잠시 제목의 우부메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면, 우부메는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여자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요괴라고 합니다. 그 모습은 허리 아래는 피로 물들어 있고, 그 목소리는 오바레우, 오바레우라고 운다네요. 기이한 모습을 한 요괴 우부메의 여름이라면,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요.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입니다.
1950년도 도쿄, 유서깊은 산부인과 가문의 한 남자가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다. 임신중이던 그의 부인은 그 후로 20개월 째 출산하지 못하는 기이한 상태가 이어지고, 우연히 이 일에 말려든 3류 소설가와 고서점 주인의 손에 의해 사건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데ㅡ.
책 뒤에 쓰여 있는 소개입니다. 정말 간단한 소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은 저것보다 몇 배는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줄기는 간단하나 엮이고 꼬인 게 많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일단 이 몇 줄만 읽어도 이 소설의 기묘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서깊은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구온지 가문의 두 자매 중 언니인 구온지 료코가 에노키즈의 탐정 사무소에 찾아와 의뢰를 하게 되는데, 우연히 거기서 그녀를 보게 된 세키구치는 그녀를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상하리만치 끌리게 되고, 사건에까지 뛰어듭니다. 위의 짧은 소개에 나와있듯 남편이 밀실에서 사라진 뒤 임신중이던 료코의 동생 교코는 20개월째 임신 상태에 있어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그녀의 남편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이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요?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야기를 전개하며 인물들의 묘한 관계, 오해, 결국 거기에서 파생된 사건을 교묘하게 들려줍니다. 충격적인 결말 또한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이 책이 왜 일본의 정통 미스터리계에 찬반양론의 대선풍을 불러 일으켰는지 결말을 읽고 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평가들에서 보이던 '궤변'이라거나 '말도 안되는 내용'이라는 말에도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따져가며 읽는다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을 정말 즐겁게 음미하며 읽는 건 불가능 할 것같습니다. 그저, 인물들을 따라가며 작가가 안배해놓은 대로 한 계단 한계단 밟아 나가 클라이막스까지 도달해보는 게 어떨까요?
시리즈 중에서도 이 우부메의 여름은,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일단 책의 계절이 장마가 끝나가는 여름으로, 고온다습함이 확 전해져오거든요. 우부메를 읽으며 그 끈적끈적한 공기와 미묘한 불쾌감이 여름과 닮았다고도 느꼈습니다. 거기에 호러 영화를 볼 때처럼 등골이 싸한 전개가 기다리고 있으니, 여름에 한 권 끼고 있기에는 최적의 소설이 아닐 수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