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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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침묵은 당신의 선택이다. -

<소년이로>는 장면 소설 <홀>로 2017년 셜리 잭슨상을 받으며 한국적 서스펜스의 성취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편헤영 작가의 단편집이다. 작품집안에는 《뉴요커THE NEW YORKER》에 게재된 《식물 애호》와 현대문학상 수상작 《소년이로少年易老》를 담았다. 총 8편의 각가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관통하는 주제를 통해, 작품들의 면면을 들여다 본다. 작가는 "이 책에 우리들의 실패라는 제목을 붙어 두었다.우연에 미숙하고, 두려워서 모른 척하거나 오직 잃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바 있다.

표제작 '소년이로'는 주자의 문집에 수록된 시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의 앞부분을 따온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두려운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일과 어쩌면 일어낫을지도 모르는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유진과 소진의 이야기라면, '우리가 나란히'는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개미를 잡기 위해 옷을 벗는 나와 알콜 중독자가 친구의 이야기다. 장편소설 '홀'의 근거로 볼 수 있는 '식물애호'는 한순간의 사고로 무너진 오기의 삶을 서늘한 서스펜스로 그려내고 있다. '원더박스' '개의 밤' '잔디' '월요일의 한담' '다음 손님' 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종속된 삶의 무게가 던지는 무력함으로 전달된다. 작가는 "스스로의 환멸 때문에 "(p.129) 소영이 미뤄두었던 질문 " 그러니까 이것이 모두 누구의 잘못이냐고" (p.129) 항변하고 싶은 인간군상을 우리 앞에 그려낸다. 편헤영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그들이 가해자와 적어도 비슷한 , 아니면 가까운 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또 다시 알수 없는 방식으로 인생에 속아 넘어갔다는 기분이 들었고 이것이야말로 누구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p.131) 우연치 않은 사고를 당해 피해자가 된 수만이 있고 그를 바라보는 소영의 모습은 '잔디'에서는 가해자이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대신 " 그럴바에야 비굴하게 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p.185)인 남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런던의 한 뮤지엄에서 본 조형물처럼 "쓰레기를 뭉쳐두니 사람이 되었다"(p.191)는 '잔디'의 기억처럼, 편혜영 작품 속 인물들은 불시에 일어난 일에 무너지는 인간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할 수 있는가 돌아보게한다. "어떤 얼굴은 어둠 속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다."(p.191) 는 아내의 말은 보통의 삶 속에 감춰진 우리 자신의 잔혹한 일면일지 모른다. 아내인 나 자신조차 "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5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나를 툭 치고 가는 임시교사에게 분노를 느끼는 인간이 될 줄 몰랐다. " (p.190) '원더박스'의 수만또한 자신의 실수보다는 자신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한 김을 찾아 다닌다. "수만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나 무책임한 행동에 피해 입은 것만 생각하느라 거래 당시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제 실수는 잊어버렸다. 일부러 상관없는 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데 몰두하다 보면 명백히 다른 사람 탓이 되니까."(p.112)

'개의 밤'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처남의 폭행사건에 대한 탄원서를 받아야 하는 지명이 나온다. 그는 장모의 인맥덕분에 회사에서 팀장을 하고 , "해고자를 정하거나 유족과 사고 보상액을 하는 게 주된 업무"(p.148)이다. 지명은 처남의 사건에 대해 "처남 스스로 그렇게 했다. 감당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p.151)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고를 당한 장이 그 전날 마신 음주량을 계산하느라 바쁘다. " 내몰려뵈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왜 사람은 성격 차이나 정치적 견해, 나쁜 결과를 초래한 실수때문이 아니라 염치와 수치 때문에 화를 내게 되는지 말이다." (p.159) 지명이 결국 보상을 위해 동핸한 안에게 탄원서를 내밀면서 지명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찾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녹녹치 않음을 작가는 '우리가 나란히'에서 보여준다.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된 두 우지와 나의 모습으로. 소녀이로는 "소년은 늙는다:는 말이다. 늙은 소년의 삶을 어떻게 이어지는가? 아버지의 죽음과 무너지는 가정 속에서 유준과 소진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소년이로>에 수록된 단편 8편의 질문 일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는다고 우리를 벌하는 건 우리 자신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아내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그럼으로써 아내가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일에는 침묵하고 모든 것을 사죄함으로써 처남의 죄를 하찮게 만들어버렸음을 모른척했다. 아내에 따르면 모두의 인생에 죄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가 없었다."(p.155) 아내에게 처남의 죄를 말하는 대신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타운하우스를 유지하는 지명처럼, 우리는 침묵함으로써 매순간 죄에 대한 탄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는 당신의 침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질문한다. 지명의 아내가 하는 모임의 변호사처럼 " 모른 척 하거나 아내 편을 드는 건 모임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서이리라.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p.155) 어쩌면 작가의 진중한 질문은 당신의 삶은 그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를 묻고 있다.우리가 대면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를 성찰하게 한다. 작품 속의 인물 누구에게도 쉽게 이입하기 어렵게 만든 거리감은 작가의 교묘한 연출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작품 속 인물 누구도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에 진정으로 공명하지 않은 타자적 입장을 취한 것처럼 독자에게 냉정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독자를 관찰자로 등장시킨다.

작가가 풀어내는 구성은 각 작품의 사건보다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함으로써 사건이 아닌 사건에 응답하는 자세를 들여다 보게 한다. 한나 아레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받아야지 그의 행위가 야기한 타인의 고통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된다"(p.57)고 말했다. 아렌트의 말처럼 진정한 고통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인지로부터 시작한다는 엄중한 사유는 편혜영 작품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그것이 자신의 죄임을 알지 못하는 무능으로 비롯함인지 모른다. 작가는 이 작품들에 "아픈 사람들이 많은 소설이어서 실패라는 말을 나란히 두기 힘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패도 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실패는 알지 못한 , 침묵과 선택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소년은 늙지만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님을 작가는 역설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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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강북구 1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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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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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잃은 건 무엇일까

<애니가 돌아왔다>는 영국의 스티븐 킹으로 주목받는 C.J 튜더의 두번째 작품이다. 2018년 데뷔작 <초크맨> 은 "강렬란 도입부와 반전"을 선사하는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기게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아마존 상반디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고, 이 작품 <애니가 돌아왔다>는 ,<선데이 타임스> <데일리 메일>등의 언론을 통해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으로 불린다.

이 작품은 충격적인 사건 현장으로 시작된다. 경찰은 주택의 집안에서 발견한 사건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는 위쪽 벽에 대문자로 휘갈겨진 "내 아들이 아니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는 요소는 충분하다. 작가는 기존 스릴러나 범죄물에서 보여지는 상투적인 사건 현장을 프롤로그에 배치하여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는 "혹독하고 음울하며 시큰둥한" 더군다다 "폐쇄적이고 방문객을 불신하는 눈빛으로 대하는 "(p..18)안힐로 돌아가면서 전개된다. 주인공 조는 안힐아카데미에 교사로 취직하고자 서류 위조까지 하여 방문한다. 조가 서류를 위조하면서까지 찾으려 하는 것이 무언인지. 그것이 단순히 도박으로 인한 빚이 아닌지에 대한 흥미를 자아내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애니는 조의 여덟살 동생이었고 실종 된 지 48시간만에 돌아와 화제가 된다. 조는 25년전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메일과 사건을 접하고 돌아오게 되는데, 그것이 어떤 구원자적 자세보다는 자신의 "현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돌아왔다기 보다는 도박빚을 갚기 위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나쁜 일이 남긴 잔상은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믿는다. 그것들을 콘크리트에 찍힌 발자국처럼 우리의 현실이라는 천 위에 각인된다. 그 흔적의 원인은 오래전에 사라졌을지라도 남은 자국은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p.33~34) 조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애니의 실종과 죽음이었는지. 그로 인해 현재이 곤란인지를 물어보기도 전에 작가는 우리를 여러 인물들의 만남 (25년 전 친구- 스티븐, 닉, 마리, 크리스, 미스 그레이슨, 루스) 을 통해 과거에 한층 가까이다가간다.

안힐은 폐광을 가진 시골마을로 탄광이후 실직을 해서 늘 술에 절어사는 조의 아버지처럼, 작가도 어린 시절 광산노조파업이 일상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지는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주 소재로 사람들을 끌고가는 심연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폐광"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삶을 지하 갱도에 바친 이들의 죽음과 실직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가 묘사된다. "거기 남은 것은 고스란히 방치되고 버려졌다."(p.165)

작품에서 그려지는 현실에 작가는 냉소적인 자세를 취한다. "인생은 다정하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막판에는 그렇다. 우리 어깨에 부담을 더하고 발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우리가 아끼는 걸 찢어발리고 영혼을 후회로 단련시킨다. 인생에 승자는 없다. 결국은 잃는 것인 인생이다. 젊음,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고 사랑하는 것들. 나는 가끔 인간을 진정으로 나이 들게하는 것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아끼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소멸이라는 생각을 한다."(p.168) 한때 자신이 좋아했던 마리를 보면서, 한때 동네의 우두머리였던 스지금은 지방의회의원이 된 스티븐의 아내인 그녀를 통해 삶에 대한 통렬한 심정을 되이뇌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세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일어났던 영국의 광산노조파업으로 인한 가정의 분열, 학교에 만연하는 괴롭힘의 문제, 이 책의 장르를 결정하게 하는 오컬트적 요소까지 존재한다. 생게를 책임져야하는 부모를 대신하여 여동생 마리를 돌봐야 했던 조, 그리고 친구들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그들의 필요에 의해 친구로 지냈던 크리스와 조까지,조가 돌아와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가 어떻게 현재와 평행선상에서 복기되는지를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다.조의 현실과 과거의 교차는 독자를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되는 소재들, 장르문학이나 영화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인형, 과거, 폐광, 딱정벌레, 유골, 실종된 존재가 다시 돌아왔다는 설정은 상당히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소재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결국 작가의 문체나 스타일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C.J튜더는 안정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공포물과 스릴러의 묘한 결합, 그리고 우리가 알았던 것을 불시에 습격하는 듯한 반전은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날 폐광에 간 스티브와 닉, 조, 마리, 크리스 그들이 그곳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곳에 당도하기 전에 어쩌면 '악마'로 상징화되는 내면의 악이 실재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지 모른다. 마지막까지 그 악이 무엇인지 돌아온 애니인지. 아니면 그들을 만들어낸 공간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에서는 선악의 구원적인 메세지보다는 악과 선의 혼재를 통해 우리를 가리는 진실이 정녕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장르물도 결국 작가의 문장력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 그림자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냥 그림자인 적이 없다. 그림자는 어둠의 가장 깊숙한 부분이다. 그리고 어둠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 괴물들이 숨어 있다." (p.375)

장르물을 좋아하는 독자나 장르물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편안한 문체와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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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멋진 기록입니다.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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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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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metoo'의 행렬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거진 사회적인 이슈들은 여성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페미니즘> 책과 강연들은 우리와 근접거리로 다가왔다. 작년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이 던진 사회적 문제 의식은 조금은 성숙해진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분야를 장식하고 있다. 실제 대통령에게 전달된 책이라는 화제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책이 되었고 그 책이 던지는 진지한 질문은 우리가 올바른 젠더의식을 가지기 위한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82년생 김지영>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합니다.><나쁜페미니스트>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나요?><남자들은 나를 가르치려한다> 등의 저작을 통한 시각의 수정은 , 사회적 담론의 깊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지만, 우리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의 경구가 어느 개업하는 식당에 성공염원으로만 걸리지 않기를 바라게 한다.
<현남오빠에게는>는 총 7명의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표제작인 <현남오빠에게> 는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이후 작품은 다양한 작품 활동과 여성 작가의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이 보였다. 최은영, 김이설, 최종화, 손보미,구병모, 김성중
이책을 두고 읽기로 한 중에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으로 시작된 'metoo'운동은 -물론 물건너 미국 헐리우드의 성추행 사건의 고백으로 시작한 -이제까지 없었던 고무적인 일이기도 하다.
<현남오빠에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일상성이 주는 잔혹감과 미처 채 깨닫지 못한 현실의 공포감을 안겨준다. 슬프기만 하다기 보다는 나조차 젠더의식의 미약한 뿌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단편모임집이다.
이책을 읽으면 ' 새삼 '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만-문제 의식이 새롭지 않다는 뜻이다.-그렇다고 아직도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이기심,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이기심은 자신의 위치,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파생된 역할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인간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내가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느가를 묻는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 이라는 작품은 중년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다른 여성을 바라보는 자신의 정체성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작품이다.

당연히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니까, 학교에선 공부하고 , 어린건 아직 어리니까. 집안일은 집에 있는 나의 몫이라고 생각핬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식구를 위해 소비하는 나의 시간이 나의 가치라고 믿고 살았지만 소용없었다. 해도 표도 안나고, 안하면 더 표 나는게 집안 일이었다. 회사는 월급이라도 주고, 아리들은 성적표라도 받아오지. 나는 ? (p.81)-<경년 >중

김이설 작가는 경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한 여성의 바꾸니 삶을 조망한다. 아들의 입장일 수 밖에 없지만 아들과 남편을 바라보는 그들속에서 자신의 젠더를 회복하는 엄마인 나.  아들의 엄마였기 때문에 딸들을 잊는 모습에 피곤을 느끼는 것이 가혹하기도 하지만 , 그들이 늘어갈수록 희망인 있을 것이다.

나와 진아가 아주 다르게 살아가는 건 그저 아주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통념에 따라가지 않은 진아의 선택만 옳은 것이 아니듯, 내가 의심없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 것은 미숙하고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통념에 의문을 품지 않고 기혼 여성이 된 것을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진아의 삶을 흠모하고 싶지 않았다. (p.116)
네가 여자여서, 세상의 온갖 부당함과 불편함을 이제 어린 너와도 나워 갖게 된 것이 서글프기 때문이라는 걸 말할 수는 없었다.(p.119)-<경년> 중

김이설 작가의 <경년> 는 내 나이 또래의 누구나 경험하는 이야기를 섬뜩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아는 이야기로 두얼굴인 우리를 만나게 한다.
조남주 작가의 < 현남오빠에게>는 자신의 뜻대로 여성의 삶을 가두고 재단한 현남오빠로 구체화되는 세계와 일별을 고하는 작품이다. 이상하게 초등학교 선생님의 무슨 오래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생각이 난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자는 세명의 남자를 섬긴다. 아버지, 남편, 아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폭력과 불의에 복종하라는 의미와 진배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그말을 무슨 격언처럼 새겼던건지 모른다.
도대체 섬길 대상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것은 한함 오랜뒤였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세뇌는 나를 나로서가 아닌 누군가의 00,누군가의00으로 위치매김하는데도 거부감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남오빠에게>나는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하지만 청혼은 거절합니다. 저는 더 이상 '강현남의 여자'로 살지 않을거예요. 오빠는 그럴듯한 프로포즈가 없어서 제가 망설이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중략)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싶고 너랑 결혼하기 싫은 겁니다. 본격적으로 결혼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꺼림칙햇던 모든것이 분명해졌어.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던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엇던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엇더라. (중략)_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앗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p.38)-<현남오빠에게 > 중

통쾌함을 날린다. 그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수많은 그녀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쇼코의 미소>를 통해 등단한 최은영 작가의 단편< 당신의 평화> 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절 우스개 소리 "시어머니가 며느리 한테 딸처럼 살자고 하고 딸처럼 행동하면 친정에서 잘못배웠다"라고 말하는 현실을 옮겨놓은 것 같다. 최은영 작가는 며느리 선영보다는 정순ㅇ이 며느리로서의 고단한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맏딸 유진, 정순의 관계를 배치하여 남성적인 사회에서 일상에서 무너지는 여성연대의 비극성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미친놈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것을 떠들고 다녓을까?
역사적으로 폭력적이고 육식적인 남성의 세계에서 여성의 연대는 늘 존재해왔고 , 실제 현존하는 여러 부족 사이에서도 발견되었다.
정순이 자신의 시집살이를 선영을 통해 되풀이하려는 피해의식을 유진은 끊을 수 없는 굴레로 생각한다. 유진의 아버지와 준호의 남성적 시각의 차이는 여성인 정순을 더욱더 패배감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정순이 진정 '평화'를 얻는 것은 시집살이의 되물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찾는 것이라는 유진의 말은 우리모두에게 고부갈등이라는 명절의 희안한 기삿거리를 일거에 날릴 수 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가 말햇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엿을까.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 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그가' 현명함' 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p.51)
그집에서 유진의 미래는 그와 그의 식구들에 의해 다르게 설계되었다. 대학 교육을 받고, 여성학 수업을 들었으면서도 유진은 어쩐지 그의 식구들 앞에서 그의 식구들이 보기 좋은 모습으로 행동했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와의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그런 태도를 취했던 걸까. '자기 여자' 데려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햇던 그의 욕구를 ㅇ진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잇었다 우진이 애해할 수 없고 차마 돌아보기 싫엇던 사람은 그때의 유진 자신이었다. (p.61)-<당신의 평화> 중

"딸가진 집이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 부모님도 늘 하던 말이었는데, 어려운 살림살이에서도 우리를 키우셨던 부모님이 '왜' 죄인인지 의문은 들면서도 나도 거기에 맞춰 살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나도 타자를 통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나의 존재를 증명받으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유진이 선영을 자기 식으로 바라보는 정순과 거기를 두려는 이유도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전승되는 여성의 삶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열망인지도 모른다.

그 거리는 유진에게 어떤 안타까움을, 그리고 자유를 줬지만 언젠가 그만큼의 슬픔을 줄것이었다. 유진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떤 사랑도, 어떤 후회도 그 슬픔을 갚아 줄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나 이 순간 유진은 최선을 다해 이 익숙한 반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을 뿐이었다. 혼자가 되고 싶을뿐이었다. (p.73) -<당신의 평화 >중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우주개발의 희생물이 된 라이카(역사속의 개다) 와 화성으로 보내진 클론의 이야기이다. sf소설을 읽는 것같은 작품을 통해 클론과 라이카, 부서진 로봇을 통해 새롭게 복원된 모성 사회를 꿈꾸게 한다.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을 통해 여성의 잔혹한 수난사를 비유한다.  하르피아이는 실제 여성 수학자로 잔인한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고 하는 데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작가의 말은 역사속를 돌아보게 한다. '마녀 사냥'은 있지만, 상대적으로 남자인 마법사는 존경을 받지 않앗던가.  잔혹한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남성을 단죄하는 대회는 반대로 잔혹하게 여성을 난도질하는 현실의 재연일 것이다.

고작 그정도 연관짓기엔 억측이엇으며 표본또한 충분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ㅇ르 맴도는 단신 속의 말들...딸 같아서.... 평소 가족 대하듯이...오해가 잇는 듯....모함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했다면 성의껏 사과하를 전하며.... 그말들은 한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써써던 수마노은 우아한 말들과 맥락도 내용도 조금씩 다르나 본질적으로 유사한 의도를 품고 있었다... (p.231)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중

세상에 완벽한 예견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말처럼 오랜 관행이라 우리는 익숙하게 아는 것일까 .현재의 수많은 미투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이 하는 말들 아닌가. 이런 말들이 너무나 익숙한 것에 공포감을 느낀다.

네소스의 함정에 빠진 헤라클레스, 아폴론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마르시아스, 에루리디케를 영원히 잃고 여인들의 원한을 산 오르페우스, 도래할 새봄의 파종을 위해 제몸을 바치는 디오니소스까지 이런 저런 이유로 살가죽이 벗겨지거나 육신이 찢겨진 허구의 이야기 속 남자들은 하고많았으나 , 이 순간 어둠속으로 추락하는 표의 의식에 떠오른 것은 머리카락과 옷을 빼앗기고 귤껍데기와 사금파리로 살이 도려내어져 살해당한 수학자 히파티아, 실존했던 그녀였다 (p.240)-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나는 죽음으로 비로서 나를 완성한다'를 로망 가리의 말은 나에게 오랫동안 남았다.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계획한 적도 없지만 나는 여성으로 산다.
엄마로서의 삶을 나의 엄마를 통해 미리 봤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역할로는 더더욱 살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갈곳을 몰라 할때도 많다.
이 일곱편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여성이기 이전에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꿈꾼다.
여성학자 이민경은 
" 이 일곱편의 이야기들은 바로 거기서부터 이어진다. 컸던 혼란과 두려움보다는 작은 혼란과 두려움을 낳은 데로부터,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는데 지쳐 세상과 자신 중에 틀린 쪽이 자신이라고 생각할 뻔한 어떤 여성을 구해줄 것이다. 그 여성은 홀로 품고 잇던 마음이 호라자로 태연히 찍힌 것을 보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조금 거두어 볼 것이다. 이미 자신은 틀렷다는 마음을 먹은지 오래인 여성의 마음마저도 조금 돌려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이어 쓰고
거꾸로 쓰고
새로 쓰고
다시 쓴다면
아직은 낯설은 글들이 쌓이고 다져져 새로운 땅을 만들어 줄 것이다. "
고 이책을 소개한다
세상 어떤 누군가도 자신의 삶이 부정도지 않기를 ,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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