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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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유』, 김인환

인도 가에 핀 민들레를 옆에 두고 책의 사진을 찍어봤다. 책의 표지 덕분인지 자연의 색들이 잘 어우러졌다. 책의 디자인은 내용과도 알맞다고 생각했다. 묵직한 내용이 담겼지만, 편안한 책이다. 열 한편의 산문은 저마다 다른 주제의 인문학 수업을 담았다.
독서, 동학, 중세철학, 천사와 인간, 과학기술, 법, 황현산, 랭보 등의 주제로 김인환 교수는 잔잔히 생각을 짚어간다. 그의 수업을 천천히 따라가지만 엇나갈 때도 있었다. 짚어주시는 내용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그동안 많이 공부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이 수업들은 스물세 살 청년으로서, 그리고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생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욕망은 있음이 아니라 넘어서서 있음이고 욕망의 본질은 타자의 부름에 있다. 욕망은 모든 한계를 꿰뚫고 분열과 모순을 자체 내에 보존하는 끝없는 의욕이며 깊은 정열에 의하여 특별하게 충격된 심적 운동의 끊임없는 충실성이다.” p. 190 <랭보와 모던팝>

“천사에게는 관조가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경험이 중요하다. 지상의 시간은 무겁고 괴롭고 긴 경험의 시간이다. 힘겹게 얻어낸 단어 하나가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을 드러내준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언어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은 왜 고통스러운 삶을 어렵게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상에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p. 92 <릴케의 천사>

한때 학업에 매진하는 것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 모른 채 그저 남이 가는 길을 걷고만 있는 줄 알았고, 스스로 공부에 대한 강박을 버렸으면 했다. 내가 누구인지 답을 찾아 떠났지만, 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상황마다 내려지는 답은, 모든 상황에서 내 중심을 지켜줄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멸하는 눈으로 파괴되는 대상을 본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눈이 없다. 인간은 현재 이 순간에 그때그때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참이 미래시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는 진리의 결여라는 고통이 수반된다. 백만 년 후에도 인간은 제가 아는 것을 넘어서 참을 찾고 있을 것이다.” p.57, <자정의 성찰>

독서를 취미로 들이면서 나는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하면 나는 마음이 차분해졌다. 인간은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 학업에 지쳐 도망쳤으면서 왜 이 결론에 위안을 받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끝이 없을 수도 있는 과정인데 말이다. 스스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부족한 인간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오늘도 책을 펼쳐 든다.

#타인의자유 #김인환 #난다 #난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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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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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박연준, 난다

나에게 박연준 작가님의 『소란』은 내 안을 소란(騷亂)스럽게 하기도, 소란(巢卵)처럼 여유를 주기도 했다. 사랑을 읽을 땐, 글에 담긴 여유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뒤도 보지 않고 돌진하는 열렬함이 부러웠다. 이 산문집의 커버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열렬한 연인의 뒷모습이, 이 산문집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타오름을 두려워 않는 작가님 같았다. 글에는 사랑하는 대상들이 꼼꼼하고, 구구절절하게 담겼다.

언젠가 나는 재가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타올라서 더는 태워버릴 것도 없는 잿더미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넘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고,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처럼 감정이 없는 편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 그릇은 너무 작다. 끓어 넘치는 화, 쓰나미 같은 슬픔, 애증이란 모순적인 감정을 감당하기에는 말이다.

“알 수 없었다. 왜 이토록 슬픈지. 왜 슬픔은 나를 좋아해서 하필 내 위에서 요란하게 작두를 타고 싶어하는지, 아니 내가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슬픔이 나를 침범하도록, 기꺼이 침범해서 마음대로 농락하고 괴롭히도록 두었다. 반항할 힘이 없었고, 힘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슬픔이 활활 타오르는 죽은 나무 같았다.”
p.180 ,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 중

내 안의 소란은 언제쯤 잠재워지는가. 나는 작가님을 부러워했다. 소란을 잠재우신 것 같아서, 한껏 여유를 가진 것 같아서. 소란스러움이란 없는 분 같아서. 그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다시 또 소란스러울 사람은 있어도, 소란을 잠재워버린 사람은 없다. 소란은 계속될 뿐이다.

“어느 겨울밤, 비밀로 얼룩진 생각들을 한데 모아 죄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 알고 있었어요. ‘비밀’이란 도대체 버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코웃음 치며 다시 곁에 돌아와 앉더군요. 끈질기게 살아남더군요.”
p.59, 「나는 나를 어디에서 빨면 좋을까요?」 중

내다 버릴 수가 없는 각자의 사정은 던져 버려도 돌아오는 부메랑, 뻗어 나가도 돌아오는 메아리와 같다. 숙명과도 같은 슬픔을 마주하는 그녀, 윤동주의 시 팔복(八福)를 읽는 그녀.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되뇌이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봤다. 슬픔을 벗어나려 했던 작가님처럼, 나도 떠난 때가 있었지만 그곳엔 원하던 것은 없었다. 남는 건 허탈함 뿐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슬픔은 슬픔대로 즐겁다”는 산문의 제목처럼, 똑바로 마주하는 일뿐이다. 슬픔 안에서 기꺼이 헤엄치는 또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내 소란은 조금이나마 고요해졌다.
#소란 #박연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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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묻고 세계의 지성 100인이 답하다
윌 듀런트 지음, 신소희 옮김 / 유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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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윌 듀런트

언젠가 나는 엄마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냐고, 왜 살아가고 있냐고 말이다. 다행히 엄마는 헛소리한다며 타박하지 않았고, 우리 삼 남매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의 진지한 답이었지만, 키울 자식이랄게 없는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다.

가끔 통제할 수 없는 심연에 빠질 때, 자괴감은 끝없는 질문을 만들었고 그 끝엔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우울함을 잠시 벗어나도, 다시 돌아오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도망칠 수 없다면 똑바로 직시하고 답을 찾고 싶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아직 답을 찾이 못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권하고 싶다.

윌 듀런트에게 잘 차려입은 남자 한 명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그는 자살할 생각이라고 했다. 철학자인 듀런트가 자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 줄 수 없다면 말이다. 듀런트는 남자가 계속 살아야 할 근거를 제시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남자는 설득되지 않은 기색이 뚜렷한 채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듀런트는 세계 각계 100인의 셀럽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보낸 윌 듀런트, 윌 듀런트에게 답장을 보낸 사람들, 이 책을 출간하는데 힘쓴 분들께 감사하단 말부터 전하고 싶다. “이 같은 거대한 집단이 이처럼 심오한 질문에 일제히 답한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들의 답변 중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란 것엔 변함이 없다.

편지를 받은 100인 중에서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해왔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윌 듀런트의 편지를 받고서야 고민해본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아주 까칠한 답장을 보냈다. “젠장, 내가 어찌 알겠소? 그런 질문에 뭔 의미가 있단 말이오?”) 나머지 답장을 보낸 이들은 아주 성실한 답변을 줬다. 일상을 파고든 이 바늘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수 없이 좋은 답장이 많았다. 그러나 그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마지막 답장을 고르고 싶다. 감옥에서 종신형을 사는 죄수의 기고문이었다.

오늘 저녁 나는 감옥 마당에서 다른 죄수들 가운데 서 있습니다. 다들 고개를 쳐들고 우리 머리 위로 장엄하게 흘러가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비행선 로스앤젤레스호를 바라보고 있지요. 내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선사 시대의 생물체가 바다를 빠져나와 육지로 올라왔듯, 인간도 육지에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라고. 언젠가는 인간이 광대한 행성 간의 공간을 통과하여, 지금 우리가 선사 시대의 인간보다 더 높은 차원에 이르렀듯이 저 비행선만큼 드높은 또 다른 차원으로 올라설 수 있는 지식을 얻어 내지 못할 거라고 어느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책의 가장 마지막엔 또 다시 직면하는 윌 듀런트가 나온다. 자신에게 찾아온 그 남자에게 보내는 답장이 있었다. 그가 계속 살아야 하는 많은 근거를 들어 설득하고 있었다. 구구절절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봤다면 좋았을 편지의 구절은 아주 사소한 부분이었다.

결국 이 모든 조언이 얼마나 헛되고 속물적인 것인지 나 역시 잘 압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요. 하지만 오셔서 나와 한 시간만 함께해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에게 숲으로 난 오솔길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셔서 내가 얼마나 어수룩한 낙관주의자인지 말해 주십시오. 내 논리를 실컷 공격하고 이 중간계를 마음껏 저주하십시오. 나는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겠습니다(당신의 결론만 제외하고요). 그러고 나면 우리 함께 평화의 빵을 나누어 먹읍시다.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 속에 우리의 젊음을 되살리면서 말입니다.”

-

두고두고 읽을 고전이다. 1930년대의 사람들 시각이 90년이 지난 지금의 나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점은 안다. 그리고 윌 듀런트의 말처럼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들도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나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 나와 비슷한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살아갈 이유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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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고고학 - 로마 시대부터 소셜미디어 시대까지, 허위정보는 어떻게 여론을 흔들었나
최은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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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우리 엄마는 코로나-19 예방법이 담긴, 출처를 모를 장문의 긴 정보 글을 나에게 나르곤 했다. 코로나-19 예방 방법이 담긴 글이었는데, 드라이기로 옷을 쐬어 세균을 죽인다던가 혹은 숨을 10초 이상 참아보는 코로나-19의 자가 진단법 같은 글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현금을 소독하겠다며 전자레인지에 넣은 사람들의 기사를 읽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규모가 작은 수준의 ‘탈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선동과 분열을 목적으로 한 가짜뉴스가 판치고 있다. 가짜뉴스는 사람들을 더욱 두려워하고 분노하게 만든다. 이런 허위정보들은 “진짜 뉴스에 비해 턱없이 저렴하지만 그 유포자를 찾아내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거짓이 먹혀들었을 때 얻어지는 경제적·정치적 이익은 막대하다.”
「가짜뉴스의 고고학」은 가짜뉴스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준다. ‘허위정보와 프로파간다’, ‘가짜뉴스의 경제학’, ‘선거판을 흔드는 가짜뉴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등 총 아홉 장으로 구성되어, 아주 자세하게 가짜뉴스를 분석하고 있다.
“미디어의 역사는 허위정보 전파의 역사이기도 했다. 16세기 팸플릿의 시대부터 193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 1960년대 TV 뉴스 방송에서도 오보와 허위정보는 흘러나왔다. 완전한 사실만이 뉴스로 전달되던 시대는 한번도 없었다.”
무려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는데, 기술발전과 정보 축적의 이 시대에, 허위정보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놀랍지도 않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씁쓸하다. 넘치는 허위정보들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똑바로 직시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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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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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
“재화는 용기를 아홉 번 죽였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숨을 확실히 끊어놓았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주인공의 살인 장면이라니, 충격적인 첫 문단이었다. 다음 장까지 넘기고 나서야 진짜 살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한 사람을 상상으로나마 아홉 번 죽이는 일은 얼마나 그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게 했다. 재화는 용기를 “평생을 함께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는” 남자로 서술했다.
소설 내 재화가 쓴 아홉의 단편이 인상적이었다. 매번 다른 세계관에 재화와 용기가 다르게 나오지만, 언제나 결말은 한 방향이다. 용기가 죽는 것. 재화는 왜 소설에서 용기를 죽였을까. 아마 재화의 “달 밖은 창가에”라는 단심의 시조를 “닭 발은 창가에”라고 외워버릴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용기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날이 있었다. 용기는 그 말을 초콜릿 바를 받듯 가벼이 받았었다. 재화의 마음, 꺾인 부분에서는 잔 가루들이 날렸는데.
너는 모르지.
…그 순간에는 옛날 사람들처럼 고전적으로 진지했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럭비 선수는 전혀 그렇지 못했지.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재화를 보고 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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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얘기하고 사랑을 얘기할 때는 역시 진지해야 해, … 어디서 누구를 사랑하고 있든 간에 신중히 사랑을 말하길. 휘발성 없는 말들을 고르고 골라서, 서늘한 곳에서 숙성을 시킨 그다음에, 늑골과 연구개와 온갖 내밀한 부분들을 다 거쳐 말해야 한다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하지 말든가.
「덧니가 보고 싶어」,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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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에 실없이 웃으며 읽은 정세랑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요즘 너무 사랑하는 작가님이다. 재화의 단편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세랑 작가님의 세계관은 어디까지 나아가는 걸까. 정말 가늠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덧니가보고싶어 #정세랑 #난다 #난다출판사 #난다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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